[박윤진 기자] 아버지처럼 살지 말자는 것을 모토로 부자들에 의해, 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을 알아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으며 그토록 원하던 검사가 된 강도윤. 세상이 마침내 열린다 싶었던 그날, 아버지가 여동생을 죽였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 가족을 파괴해버린 골든크로스라는 집단과 고독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몇 줄 요약만으로도 지옥 같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드라마 ‘골든크로스’는 극악무도한 악인열전이 오뉴월에 찬 서리가 내리는 서늘함을 느끼게 했다.
보기에 어려운 드라마는 역시 연기하기에도 힘이 드는 법이다. 순간, 좋아서 하는 연기이고 배우니까 참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 ‘좋아서 하는 짓’도 때론 힘들고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눈물도 많이 흘렸고, 핏발이 붉게 선 눈빛으로 시청자들의 안구까지 건조하게 만든 주인공 김강우와의 첫 마주침에 “힘들었겠다”는 위로가 나온다. 그러자 “후회 없다”는 반응이다. ‘골든크로스’는 마음이 불편해질 각오를 하고 봐야 할 드라마였고 그렇게 연기해야할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것은 안 비쳐졌으면 좋겠어요”라며 덤덤히 말한다.
“혹사만 당하면서 싫은 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님, 조명팀, 배우팀 등 모든 팀이 하나가 돼서 매 순간 퀄리티를 따져요.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서로 좋아하는 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노력들이 혹사, 열악한 현장이라는 것에 빗대어 강조될 땐 기분이 안 좋죠”
이어 김강우는 “저는 영화와 드라마를 비교적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고 있잖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드라마 촬영 현장의 모습들을 떠올리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불만을 토로하는 혹은 열악하다 말하는 그 현장에 대해 ‘과연 그랬던 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라고 설명한다.
“주연배우들은 개런티를 받고 그 안에는 고생의 대가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담배 필 여유조차 누릴 수 없었던 스태프 입장에서는 힘 빠질 소리죠”
인터뷰를 위해 마주하고 첫 소감으로 들었던 “많이 힘들었던 것은 안 비쳐졌으면 좋겠다”라는 말. 그 배우의 진심이 뭉클하게 와닿는 순간이다.
“함께 출연한 배우, 스태프들 모두 너무나도 열심히 했어요. 그들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어요”
드라마 속 김강우의 복수는 장쾌했다. 극중 강도윤은 중반부 이후 테리영으로 변신, 극에 불을 지피는 장작처럼 타올랐고 마지막 시청률이 10.1%였으니 적어도 그만큼의 시청자들이 김강우가 그리는 통쾌한 복수를 지켜본 거다.
김강우는 이 작품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연기를 선뵀고, 쉽지 않은캐릭터를 연기하는 맛을 알았다. 그리고 5.7%로 시작한 드라마는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교적 홀가분한 마무리를 했다. 복수극이고, 무겁고 진지하게 흐를 수밖에 없었던 만큼 러브라인의 비중이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약했던 것은 아쉬웠다. 사실 드라마라는 게 시청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니던가.
통속적인 복수극으로 흘러버렸다는 평에 대해 김강우는 “로맨스를 좀 더 부여 했다면 극의 밸런스가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통 복수극이라는 소재로 드라마를 쓴다면 유현미 작가님만큼 쓸 수 있는 분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시청률부터 댓글까지 소소한 것들에 영향을 받는 작가들도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그런 시대에 탐욕을 추적하고 고발코자 했던 다소 답답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초지일관으로 잘 끌고 왔다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문제다.
이에 대해 김강우는 “드라마에서 다루기 힘든 이야기를 한 거죠. 작가님의 전작을 아는 회사 식구들이 그래서 이번 시놉시스를 보고 걱정을 했을 거예요”라며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20부를 달리는 긴 호흡동안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배우들 힘 안 빠지게 잘 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해요. 마무리가 잘 됐고 ‘골든크로스’로 하여금 다른 작가들에게 가능성과 용기를 준 본보기가 될 것”같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선 훌륭한 메소드 연기자였지만 작품이 끝나고서는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부작용 겪고 있을 수도 있었겠다. 애처가로 소문난 그가 남편이자, 아빠 김강우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인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힘든 게 뭐냐면 아빠 김강우로 돌아오는 거 였어요. 드라마에 몰입할 때는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떼고 살아요. 촬영 마치고 집에 들어가도 아이들 자는 얼굴만 보고 말도 잘 안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일상으로 스미는 호흡이 조금 오래 걸리죠. 캐릭터를 못 잊어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고요”
서른일곱. 이제 더 이상 연기변신을 하기에 많은 나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서른아홉 살의 송승헌도 ‘인간중독’에 출연했으니까. 워낙 연기 욕심이 많은 배우니 혹시 모를 파격변신을 꿈꾸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자 “다음 작품은 멜로를 하고 싶다”는 솔깃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도 그렇고 나이가 더 들어 50대가 되었을 때도 멜로 연기에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픈 김강우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언급하며 “배 안 나오 게 몸을 잘 관리해서 진한 멜로를 찍는다고 했을 때 주책이란 소리만큼은 면하고 싶네요”라며 머쓱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정보석과 조지 클루니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때까지 잘 관리해서 섹시하게 나이들었으면 좋겠어요”
김강우는 매사 뜨겁게 끓어오르는 존재이기 보다는 차분함으로 어필하는 매력이 미덕인 배우다. 그런 그는 당장의 목표나 평가를 원치 않는다. 인터뷰 말미에 이야기한 “중년에도 멜로가 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 또한 그렇다. 김강우 배우의 완성형은 정말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켜보며 기다려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섹시하게 나이 든 김강우의 멜로 연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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