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영화 속 주인공을 이색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시네마’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영화 영사기사였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와 감동도 상당했지만 그뿐만 아니라 좀처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사기사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해 주었다. 이처럼 이색 직업에 관심이 많은 토르나토레 감독의 새 영화인 ‘베스트 오퍼’가 새로 개봉했는데, 이번에 그가 주목한 직업은 다름 아닌 ‘경매사’였다.
경매는 우리 인류가 가장 오래 전부터 가격을 부과했던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표준화한 제품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판매할 수 없었던 시절, 가격을 부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경매였던 것이다. 그것은 경매의 특성에 기인한다. 경매란 제품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해당 제품에 부여하는 가치가 그때마다 달라질 때 주로 사용된다.
경매 이외의 다양한 가격 결정 방법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품목들을 보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농산물, 수산물, 삼림 채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품목은 같은 농산물이라 하더라도 산지가 어디인지 심지어 어느 농장에서 재배했는지에 따라 맛과 향, 당도 등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가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같은 농장에서 재배한 농작물이라 하더라도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표준화되지 않은 제품의 경우에는 해당 제품의 가격을 원활히 부과하기 위해 경매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는 다른 이유에서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품목들이 있다. 이는 경매가 유효한 또 다른 이유에 기인하는데 바로 구매자와 판매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불일치할 때다. 예를 들어 물건은 하나인데, 이 물건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다수일 경우 이 중 누구에게 어떠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경매를 이용하기도 한다. 골동품, 미술품이 경매로 거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공인 자격 ‘경매사’
이처럼 경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요한 가격 부과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때문에 경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진행하는 것은 해당 제품의 가격 결정뿐만 아니라 원활한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 경매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국가에서 경매사의 자질과 역량을 평가해 국가공인 자격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공인 자격이 부여되는 경매사는 청과, 수산, 축산, 화훼, 약용, 양곡 등 6개 분야의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경매사들이다. 이들 분야의 경매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1차 시험은 필기시험으로 유통상식과 경매실무, 그리고 도매시장 관련 법규 및 해당 상품에 대한 지식 등이 출제된다. 2차 시험은 실기시험으로 모의경매를 진행하는 과정을 평가해 이를 통해 최종 경매사를 선발한다. 그렇다고 모의경매라 하여 실제 농수산물을 두고 경매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며, PC 화면에 제시된 상황을 바탕으로 경매를 수행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최종 합격자는 1차 시험의 경우에는 매 과목 100점을 만점으로 매 과목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한 자를 합격자로 결정하며, 2차 시험은 100점 만점에 평균 70점 이상 득점한 자를 합격자로 결정한다.
오름 경매 vs 내림 경매
특히 2차 시험인 모의경매는 평가 항목이 경매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성량과 호창 등과 같은 부분도 평가 대상이다. 이는 경매 참여자에게 명확하게 지금 경매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함인데, 이처럼 목소리와 발성 등을 평가하는 것은 이들 품목의 경매는 공개 구두경매(open auction)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개 구두경매란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누가 어떠한 조건으로 경매에 응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공개 구두경매는 다시 영국식 경매(English aution)와 네덜란드식 경매(Dutch auction)로 구분할 수 있다. 영국식 경매는 오름 경매 방식(open ascending auction)으로 우리가 가장 흔히 경매라 일컬는 방식으로 낮은 가격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구매자로 결정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산물 경매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국내 수산물 경매는 높은 가격부터 시작해 가격을 점점 낮추면서 가장 먼저 응찰한 사람을 구매자로 결정하는 방식인 네덜란드식 경매를 사용한다. 이를 흔히 내림 경매 방식(open descending auction)이라 부른다.
국내에서 경매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공인 자격증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분야의 경매사들은 별도의 국가공인 자격을 취득했기보다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매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품 내지 골동품 경매사로 활동하는 경우에는 관련 분야의 전공자로서 해외에서 경매 관련 분야를 추가로 공부했거나 오랫동안 관련 업무를 수행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경매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 분야를 국가에서 엄격히 관리하지 않는 것은 중요도가 낮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해당 경매사를 직접 국가에서 관리하기에는 너무 소수의 분야이기 때문인 것이 더 적합한 이유다.
일례로 국내 미술품의 경우에는 양대 미술품 경매사 중 하나인 K옥션은 1년에 10회 이내로 경매가 열리며, 한 번 경매 시 보통 120~150점 정도가 거래된다고 한다. 이런 거래 규모는 거의 매일 수백, 수천건의 경매를 수행해야 하는 농수산물 경매와는 그 규모 면에서 현격히 적다 할 것이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이들 분야는 국가 공인화해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입찰 가격 비공개 ‘밀봉 경매’
특정 분야 경매는 몇 년 만에 한 번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대규모 건설공사 수주, 주파수 수주 등의 경매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 경매는 별도의 전문 경매사가 있기보다는 해당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경매 업무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 경매는 앞서 소개한 일련의 공개 구두경매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를 밀봉 입찰경매라 부른다.
밀봉 입찰경매(sealed bid auction)란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경매와 달리 경매 참여자 간에 서로 어떠한 가격에 응찰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에는 종이에 입찰가를 적어내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전자적인 방법을 통해 입찰 가격을 제출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밀봉 입찰경매는 다시 낙찰자가 지급하는 금액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먼저 낙찰자가 자신이 적어 낸 최고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은 최고가 밀봉 경매(sealed-bid first-price auction)라 부른다. 이와는 달리 차가 밀봉 경매(sealed-bid second-price auction)는 낙찰자가 입찰한 가격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처럼 경매는 수천년 전부터 활용돼 온 가장 오래된 거래 방식 중 하나이며,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아마 경매는 앞으로도 우리 인류가 가격을 결정하는 유의미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우리가 경매사란 직업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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