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건 소송으로 10억弗 챙겨
[ 이심기 기자 ] 벌처 펀드의 ‘공격’을 받은 나라는 아르헨티나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엔 중남미의 페루와 파나마가, 2000년대엔 아프리카의 콩고, 잠비아, 가나 등이 벌처 펀드의 ‘희생양’이 됐다. 모두 경제위기나 내전 중에 빌린 ‘급전’을 갚지 못해 부도 직전에 몰린 국가들이었다.
이번에 아르헨티나를 위기로 몰고 간 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1996년에는 페루의 부실채권을 액면가보다 훨씬 싼 1140만달러에 사들인 뒤 원금반환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채권기관 중 유일하게 채무조정에 응하지 않는 ‘벼랑끝 전술’을 펼친 끝에 페루 정부로부터 5800만달러를 챙기며 4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2006년에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도니걸 인터내셔널이라는 벌처 펀드는 잠비아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루마니아 정부가 1979년 제공한 이름뿐인 차관을 300만달러에 사들인 뒤 원금과 이자를 합해 5500만달러를 갚으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 도니걸이 이를 통해 잠비아 정부로부터 뜯어낸 돈은 투자금의 5배에 달하는 1500만달러에 달했다.
또 다른 미국의 벌처 펀드 FG헤미스피어는 2011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1억달러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FG헤미스피어가 소송을 위해 액면가 1억달러짜리 채권을 매입하는 데 쓴 비용은 330만달러에 불과했다. 채권 소유주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였다. 1970년 콩고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정부에 진 빚이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다. FG헤미스피어는 이 판결에 따라 콩고 정부로 들어가야 할 국제원조금을 가져갔다.
세계은행은 지금까지 벌처 펀드가 빈곤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25건의 소송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최소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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