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 편견 깬 최 회장, 세계로 금융무대 넓힌다
OK저축은행 대표이단의 승부사
90년대 초 나고야서 한정식집
얕잡아보던 한식불고기 메뉴, 세련된 매장서 판 '역발상' 대박
인연은 끝까지
러시앤캐시 출범땐 6개월간 매일
직원들과 릴레이 회식으로 소통…파업때 퇴사한 직원들 생계지원도
[ 이지훈 기자 ]
지난 2일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아프로서비스그룹 본사는 임직원들의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금융위원회가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예나래와 예주저축은행 인수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실로 ‘9전10기’였다. 2007년부터 열 번째 저축은행 인수에 도전한 끝에 얻은 성공이었다. 대부업계 1위인 러시앤캐시를 자회사로 둔 아프로서비스그룹을 이끌어온 최윤 회장의 뚝심이 마침내 빛을 본 순간이었다. 최 회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국에서 금융업을 일궈온 지난 10여년을 돌이키며 한동안 감회에 젖었다.
‘정통’과 ‘이단’ 사이
‘이단에서 정통으로, 정통에서 이단으로.’ 금융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최 회장의 좌우명이다. 일본 나고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재일동포로서 성공하는 길은 장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부터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막노동으로 돈을 모은 이유다.
1990년대 초반엔 ‘신라관’이란 한정식집을 차려 성공을 거뒀다. 일본인들이 은근히 얕잡아보던 ‘야키니쿠’(내장 등을 섞은 한국식 불고기)를 허름한 식당이 아닌 세련된 매장에서 판 ‘역발상’이 맞아 떨어졌다. 선동열 기아타이거즈 감독도 나고야 주니치드래곤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 신라관 단골이었다고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 전역에 60여개의 분점을 냈을 정도로 성공을 거듭했다.
최 회장은 안주하지 않았다. 좌우명대로 다시 이단의 길을 선택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뛰어든 사업은 당시 국내에서 흔치 않았던 대부업이었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과 불법 사채업 시장 사이의 블루오션을 찾아낸 것이다.
최 회장은 2002년 원캐싱을 설립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4년 일본 대부업체 A&O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이 무렵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이후 연 10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알짜회사가 됐다. 이달 초엔 저축은행 인수를 확정지으면서 다시 한번 금융권을 놀라게 했다. 최 회장을 두고 금융권의 ‘연구 대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최 회장은 새로 출범한 OK저축은행의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책임경영 의지를 나타냈다.
‘정통’으로 진입한 그는 또 ‘이단’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중국 시장 진출이다. 올해 중국 톈진과 선전에 이어 충칭에 3호 법인인 ‘중경아부로소액대출유한공사’를 열었다. 올초 톈진과 선전 법인의 흑자 전환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베이징과 상하이 등으로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뿐만 아니다. 카자흐스탄과 폴란드, 동남아시아 등에 추가로 해외 법인 설립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선 저축은행 인수를 계기로 카드 및 증권업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인재 욕심과 소통의 ‘힘’
최 회장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주변 사람들은 인재에 대한 욕심을 꼽는다. 그는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한다. 금융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재를 확보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진관 전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부행장과 인연을 맺은 일화는 유명하다. 최 회장은 당시 제일은행 도쿄지점장이던 김 전 부행장과 도쿄에서 골프를 같이했다. 라운드 도중 김 전 부행장이 친 공이 최 회장의 눈에 맞고 말았다.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었던 최 회장은 눈을 뜨자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 전 부행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내대장부가 눈 하나 없으면 어떻습니까. 그것보다는 오늘 일을 통해 김 지점장님과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건’을 계기로 최 회장과 친분을 쌓게 된 김 전 부행장은 최 회장이 한국에서 사업하는 데 든든한 후견자 역할을 했다. 나중엔 ‘뉴데이즈’라는 광고회사의 부회장을 맡아, 러시앤캐시의 ‘무과장 시리즈’ 광고 등을 만들어내 최 회장의 성공을 도왔다.
최 회장은 단순히 사람 욕심만 내는 게 아니다. 회사 임직원들과의 소통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러시앤캐시 출범 당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릴레이 회식’이었다. 6개월간 매일 저녁 직원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진정성에 바탕을 둔 소통 노력은 효과를 발휘해 러시앤캐시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2004년 5개월에 걸친 러시앤캐시 노동조합의 파업 사태 때 보여준 최 회장의 진심도 임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당시 노조의 파업 후 많은 직원들이 퇴사했는데, 최 회장은 이들이 부실채권 정리 회사를 설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2009년에는 100억원의 사재를 털어 우리사주조합 창립 자금을 대기도 했다. 당시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그룹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주인의식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이게 그의 소통 방식이었다.
안목은 길게, 투자는 과감하게
최 회장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는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장기적 안목이 꼽힌다. 필요한 곳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통 큰 리더십’도 그의 장점이다.
최 회장은 그동안 대부업의 특성상 양질의 고객을 선별해 빨리 대출해 줘야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선 자체 신용평가시스템 구축이 절실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2006년 30억원을 투자해 미국 최대 신용정보평가회사인 파이코의 신용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대부업체임에도 안정적인 연체율을 유지하며 많은 이익을 올린 배경이 됐다. 최 회장은 늘 “대부업에선 대출을 많이 하는 것보다 어떤 고객에게 대출하느냐가 성패를 결정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배구단 인수 과정은 그의 과감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러시앤캐시는 작년 드림식스 배구단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우리카드에 밀려 실패했다. 오랜 기간 인수를 준비했던 직원들이 허탈감에 눈물까지 흘렸다. 이를 본 최 회장은 직접 배구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했다. 배구협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작년 4월 신생팀 창단 승인을 받아냈고 결국 ‘러시앤캐시 베스피드 배구단’을 출범시켰다. 과감한 뚝심의 리더십으로 ‘그룹 이미지 제고’와 ‘직원들의 애사심 고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편견이 오히려 힘, “나는 문제 없어”
아프로서비스그룹이 최근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실패가 반복됐다. ‘일본계’라는 꼬리표와 ‘대부업자’라는 족쇄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한국에서 고금리 대부업으로 돈을 벌어 저축은행을 인수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편견은 그에게 족쇄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한 힘이 됐다. 최 회장은 “재일동포 3세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한 엄연한 한국인”이라며 “아프로서비스그룹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노래방 애창곡인 ‘나는 문제 없어’의 노랫말처럼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넘어지지 않고 길을 가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 최윤 회장 약력
△1963년 일본 나고야 출생 △나고야학원대학교 경제학과 졸업(1987) △한식당 ‘신라관’ 나고야점 개점(1989) △원캐싱 대표(2002)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 대표(2004)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2007) △대한하키협회 명예회장(2012) △러시앤캐시 베스피드배구단 구단주(2013)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2014~) △OK저축은행 대표(2014~)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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