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한 18개社 새 주인 못찾아 5년 이상 보유
연기금 등 투자손실 불가피…기업도 부실수렁
[ 좌동욱/정영효/고경봉 기자 ] ▶마켓인사이트 7월9일 오후 5시5분
2007년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달군 기업 중 하나는 씨앤앰이다. 케이블TV 업체인 이 회사 인수를 두고 사모펀드 간에 뜨거운 경쟁이 붙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가격을 높이던 MBK파트너스와 맥쿼리PE는 공동 인수를 결정했다. 매입가격은 2조750억원. 시장에서 예상되던 가격 1조원의 두 배를 줬다. “남한테 주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혼자 인수하긴 가격이 부담스러워 경쟁자끼리 손을 잡은 거래”(A사모펀드 대표)다.
◆두 배에 달한 경영권 프리미엄
씨앤앰의 현재 가입자당 기업가치는 50만원을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업체이면서 규모가 훨씬 큰 CJ헬로비전 가치도 50만원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6년 전 씨앤앰이 거래될 때 산정한 가입자당 기업가치는 100만원이 넘었다. 장밋빛으로 포장된 케이블TV 산업 전망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2009년부터 통신사들이 주도하는 인터넷 TV(IPTV)가 확산되면서 케이블TV 산업은 오히려 하향세를 보였다. 결국 MBK파트너스나 맥쿼리PE는 거품이 낀 씨앤앰을 안고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보고펀드의 애물단지가 된 LG실트론도 마찬가지다. 실트론은 매각 직전 2년간 순이익이 매년 두 배 이상 증가하던 ‘우량매물’이었다. 2007년 순이익만 1679억원에 달했을 정도. 보고펀드-KTB PE 컨소시엄이 스카이레이크-산업은행 컨소시엄과 치열한 경쟁 끝에 지분 49%를 7076억원에 사들인 것도 이런 성장성 때문이다. 스카이레이크 측은 보고펀드에 우선협상권을 내준 뒤에도 1000억원 이상의 ‘웃돈’을 추가로 제시할 만큼 ‘아쉬움’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작년 실트론은 166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잘나가던’ 태양광 사업이 부진했던 탓이다. 보고펀드가 투자할 당시엔 예상치 못한 변수다. 당시 보고펀드와 경쟁했던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인수전 탈락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6조원의 중고매물 대기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통상 8~12년에 이르는 펀드 약정 기간 내 투자한 돈을 회수해 국민연금 같은 펀드 투자자(LP)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매각 협상과 청산 등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통상 투자한 뒤 5년이 지나면 매각 절차에 착수한다. 현재 국내 M&A시장에 나와 있는 사모펀드의 매물은 대부분 1~2년 이상 매물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들이다. 애초 구입 가격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하나둘 ‘중고 매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악성 매물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사모펀드들의 연평균 신규자금 모집액(약정액)은 7조3000억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투자 회수 금액은 연평균 2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사모펀드에 투입되는 자금에 비해 자금을 회수하는 속도가 더디다는 의미다.
◆PEF 투자 위축 우려
투자금 회수 실패 사례가 늘어나면서 PEF 업계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이선규 새마을금고중앙회 자금운용본부장(최고투자책임자)은 “글로벌 저금리 상황에서 사모펀드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안심하고 돈을 맡길 운용사를 찾기가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매각 불발은 투자기업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위니아만도는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사업부 매각, 배당 등으로 돈을 빼내 갔다. 회사 매출이 2000년 7750억원에서 2013년 4127억원으로, 영업이익은 811억원에서 168억원으로 줄었다.
사모펀드 투자가 위축되면서 산업 구조조정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사모펀드의 한 관계자는 “매각이 장기화되면 장기투자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한 단기 실적 개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져 기업의 지속성장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좌동욱/정영효/고경봉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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