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사상 첫 간선제 총장을 뽑은 서울대가 시끄럽다. 이사회가 구성원 평가 1순위를 제치고 2순위 후보자를 총장으로 낙점해 후폭풍에 휩싸였다. 새 총장 취임이 1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대 캠퍼스에는 ‘불신임’ 분위기가 팽배하다.
몇 달간 치러진 이번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 평가와 교직원 종합평가에서 1위에 오른 후보는 오세정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이었다. 이사회의 선택은 2위를 차지한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였다.
서울대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은 연석회의를 꾸려 총장 선출 과정에 대한 이사회의 해명과 책임자 사퇴를 요구했다. 새 총장으로 선임된 성 교수 개인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비판 성격이 짙다. “구성원 의견을 모아도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가 반영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회의론이 들끓는 배경이다.
규정상 이사회 결정에 하자는 없다. 총장 선임 권한은 이사회에 갖고 있다. 총추위가 이사회에 올린 최종 후보 3명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는 내용도 정관에 명시됐다. 후보자들의 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이사회가 결정한다는 뜻이다. 서울대가 법인화 전환과 함께 ‘총장 간선제’를 택하면서 합의한 내용이다.
문제는 인식 차이다. 이사회와 평교수간 간극이 크다.
기존 국립대 총장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직접투표에 참여한 교직원 의사가 100% 반영됐다. 최다 득표자가 1순위 후보자로 추천돼 교육부 장관 제청과 대통령 임명을 거쳐 총장이 됐다. 2순위도 함께 추천되지만 1순위 후보자에게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1순위는 곧 당선’이었다. 직접 총장을 뽑은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이런 직선제 문화에 익숙한 서울대 교수들에게 이번 이사회 결정은 충격이었다. 교수들 대상 설문에서 드러난 ‘총장 선출의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여론엔 “내 손으로 뽑은 총장이 아니다” “교수들의 총의가 무시됐다” 등의 반발이 깔려 있다.
간선제 방식의 사립대 총장 선거를 살펴보면 이사회가 추천된 후보자의 순위를 뒤집어 선임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물론 일부 뒷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이사회 결정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파벌 심화 등 직선제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너십’을 인정하기 때문.
사실 간선제가 도입되고 이사회에 총장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됐을 때 잡음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규정을 따랐으니 문제없다는 쪽과 구성원 의사 반영이 더 중요하다는 쪽의 대립은 학내 분쟁의 빈번한 레퍼토리다.
지방의 한 국립대 교수는 “법인화는 됐지만 ‘국립’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대가 사립대식 의사결정구조와 유사한 이사회 체제와 부딪치는 부분이 있을 것” 이라며 “어색한 동거의 문제점이 총장 선출 과정에서 분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은 과도기 서울대의 정체성이다. 정해진 룰(rule)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나 대다수 구성원이 반발하는 ‘룰에 따른 결정’을 좇는 것 역시 공허하다. 법인화 추진을 유보 중인 국립대들도 모두 서울대를 지켜보고 있다.
‘규정’과 ‘민주주의’를 말하기에 앞서 서울대 오너십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인가, 교수들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분명한 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학내 사안에 중의(衆意)를 묻는다고 해서 포퓰리즘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대표 학부 서울대가 침묵이 아닌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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