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독식 근절 vs 인재 枯死 '양날의 칼'
관료들 빈자리 정치인·학자 '우르르'
"능력·전문성 불문하고 진로 막나"
[ 김우섭 기자 ] #1. 지난달 구속된 한국선급 팀장 A씨(50). 그는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 6급 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한국선급 현장감사를 진행하면서 각종 비리와 문제점을 덮어줬다. A씨는 얼마 뒤 연봉 1억원을 받고 한국선급에 재취업했다. 취업을 대가로 현직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2. 정동창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정책관은 지난 3월 민간에서 새로운 꿈을 펼치기 위해 포스코 행을 결정했다. 퇴직 전 5년 동안 포스코와 관련 없는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도 통과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면서 채용은 취소됐다. 현재 그는 갈 곳이 없다.
‘관피아 개혁’은 양날의 칼이다. 민간과의 유착을 끊고 공무원들의 암묵적인 ‘자리 돌려 먹기’ 관행을 근절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국가가 힘들여 키운 인재들에게 제대로 기회도 주지 않고 고사시키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퇴직 후 공기업 공공기관 협회 산하단체 등을 전전하며 임기 3년짜리 임원(기관장) 자리를 몇 차례씩 챙기는 관행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만했다. 현직 관료들조차 ‘철밥통’처럼 자리를 움켜쥐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혀를 찰 정도였다.
그러나 전문성과 경쟁력이 있는 관료의 활용을 원천 봉쇄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오히려 공공부문에서 쌓은 능력을 민간에서 충분히 활용토록 하는 것이 국가 전체에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외교부 출신으로 지난해 8월 삼성전자 글로벌협력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김모 전 기획재정부 남북경제협력과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삼성은 특허권 분쟁을 비롯한 글로벌 리스크에 대응할 인재를 물색하던 중 러시아에서 시베리아~한반도 철도 연결 사업을, 우크라이나 근무 당시에는 한국 기업 제품의 반덤핑 제소 대응을 주도했던 전문성을 보고 영입을 결정했다. 현재 그에 대한 삼성 내부의 평가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료들의 ‘돌려먹기식 낙하산 인사’는 막아야 하지만 일률적인 잣대로 모든 관료를 ‘관피아’로 몰아가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을 들고 나온 타이밍과 내용도 다소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공직사회의 사기와 민관 인재풀 활용의 극대화 등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측면을 도외시한 채 여론에 떠밀려 무 자르듯 잘랐다는 얘기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발표한 취업제한 대상 기업에는 동네 치킨집과 주유소, 갈비집, 심지어는 정미소도 포함됐다. 현행 공직자 윤리법은 자본금 10억원 이상 또는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의 민간기업은 퇴직 후 2년간(개정안 통과 시 3년간) 옮겨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공무원이 제한 없이 재취업할 수 있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에도 관료 출신의 발길이 줄줄이 차단되자 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과 교수들이 그 빈자리에 몰려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공모가 진행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엔 여당 출신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랜드 사장에는 전직 국회의원이 열심히 뛰고 있고, 3배수로 좁혀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자리는 교수 출신이 선임되는 분위기다.
때문에 이들 정치인이나 교수 출신이 관료보다 실무능력이 뛰어나고 중립적이며 전문적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직 공무원들은 이 같은 양상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이런 식으로 몇 년 지나면 부작용이 나타날 테고, 공무원이 재조명받지 않겠느냐”며 “항구적으로 공무원들의 공공기관행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의 현직 장관 A씨도 최근 기자와 만나 “지금은 이른바 관피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워낙 커 엄두를 못 내지만 내년께는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현실적 문제들을 건의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아이고, 무슨 경을 치려고…”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제는 이처럼 경직적인 재취업 규제가 국가 전체의 인사체계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소한 개인 신상까지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여론 눈높이와 깐깐해진 인사청문회로 인해 장관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선순환적 인사가 거의 막혀 있는 상태에서 관료사회마저 세대교체 등을 위한 인사가 전면 마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취업 규제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공무원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제한해야지, 진입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재직 중 획득한 정보나 연구 결과를 민간에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며 “관피아 개혁은 그런 행위 규제를 중심으로 추진해야 획일적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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