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말벌 습격 사건

입력 2014-07-15 20:32   수정 2014-07-16 04:25

벌 중에서도 몸집이 큰 것을 말벌이라고 한다. ‘말’은 ‘큰’을 뜻하는 접두사다. 말벌 중에서는 장수말벌의 덩치가 가장 크다. 어른 새끼손가락만한데 그만큼 힘이 세고 독성도 강하다. 벌초하다 벌에 쏘여 죽는 사고의 주범은 대부분 이 놈이다. 독 속의 만다라톡신이라는 신경마비물질이 치명상을 입힌다. 꿀벌의 집을 자주 습격해 양봉 농가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새와 사마귀, 거미까지 공격한다.

천적도 있다. 개미핥기와 오소리, 곰, 때까치, 직박구리 앞에서는 꼼짝 못 한다. 특이한 건 먹잇감인 꿀벌이 가끔 역공을 펼친다는 점이다. 꿀벌 수십마리가 장수말벌을 에워싸고 날개근육을 진동시켜서 섭씨 46도까지 열을 올린다. 이를 봉구열(蜂球熱)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데워서 죽이는 것이다. 장수말벌의 치사온도는 44~46도다. 꿀벌은 50도까지 견딘다. 하지만 이런 전술은 야외에서 활동하는 재래꿀벌이나 쓰지 집에서 키우는 양봉꿀벌은 흉내도 못 낸다.

말벌의 침은 주사바늘처럼 여러 번 찔렀다 뺄 수 있다. 한번 쏘고 죽는 꿀벌과 다르다. 독침은 원래 알을 낳는 산란관이었으나 생존법칙에 따라 공격용 무기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니 암컷에게만 침이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말벌의 종류는 30여종. 이 중 도심에 출몰하는 것은 장수말벌보다 작은 쌍살벌과 땅벌, 등검은말벌 등이다. 처마나 벽 등에 집을 짓는 털보말벌도 ‘도시 거주자’다. 엊그제 집 안 청소를 하던 60대 여성이 말벌 공격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말벌 주의보는 보통 추석 성묘가 낀 9월에 발령된다. 그런데 올해는 두 달이나 빨라졌다. 봄 고온현상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데다 장마철에 비가 내리지 않아 번식이 왕성했기 때문이다.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자 신경도 예민해졌다. 지난 일요일 울산에서 밭일하던 70대 후반 여성이 말벌에 쏘여 숨졌다. 설악산에서도 등산객이 소방헬기로 긴급 이송됐다. 이날 하루에만 말벌집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이 800건 이상 몰렸다.

말벌 테러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향수나 화장품을 피하고 청량음료와 과일 등 단 음식을 곁에 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밝고 화려한 옷무늬도 꽃처럼 보이므로 피하라고 한다. 실수로 벌집을 건드렸을 때는 뛰지 말고 제자리에서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해야 안전하다. 물론 ‘봉변(蜂變)’(원래 한자는 逢變)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어디서나 눈 크게 뜨고 발 밑도 조심조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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