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예산 쏟아붓고도
국민 10명 중 7명 사용 안해
정부는 "정착됐다" 딴소리
[ 강경민/홍선표 기자 ] “도로명주소 안 적으셔도 됩니다. 지번주소로 적으세요.” 15일 오전 서울 옥인동 종로보건소. 치료를 받기 위해 인적사항을 적는 신청서 주소란엔 도로명주소가 아닌 옛 지번주소를 적는 공간만 있었다. 보건소 관계자는 “도로명주소를 쓰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지번주소를 적는 예전 신청서 양식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역 인근 우체국. 우편물을 부치는 창구 한쪽에 주소를 찾아볼 수 있는 우편번호부 책자가 비치돼 있었다. 책자엔 도로명주소가 아닌 옛 지번주소만 기재돼 있었다. 우체국 직원은 “아직까지 도로명주소가 기재된 우편번호부가 제작되지 않았다”며 “옛 주소를 그대로 쓰면 된다”고 말했다.
도로명주소가 올해 1월1일부터 전면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명주소가 국민들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공공기관 전용 주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96년 이후 정부가 도로명주소 도입을 준비하면서 들인 돈만 4000억원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 우편물의 도로명주소 평균 사용률은 34.1%다.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17.7%)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 10명 중 3명가량만 도로명주소를 쓸 정도로 사용률은 낮다. 정부는 2011년 7월부터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도로명주소를 쓰도록 시행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통신, 카드사 등 민간 기업에도 도로명주소를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거꾸로 일반 국민이 보내는 우편물의 도로명주소 사용률은 극히 낮다는 얘기다.
구청 및 경찰서 등 일선 현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혜화경찰서 민원실 관계자는 “민원인 중 자기 집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알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며 “직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주소를 변환해서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도 “하루에 찾아오는 수십 명의 민원인 중 신청서에 도로명주소를 적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한 구청 관계자는 “옛 주소를 그대로 써도 불편함이 전혀 없는데 국민들이 굳이 새 주소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도로명주소 전면 시행에 따른 국민들의 불편은 거의 없지만 새 주소가 실생활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1996년 이후 17년 동안 40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도로명주소를 정착시키지 못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전면 시행 이후 도로명주소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국민들도 새 주소의 편리성을 알면 금방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및 내비게이션 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주소 검색이 쉬워지면서 도로명주소가 실생활에선 사용되지 않고 공공기관에서만 쓰는 전용 주소로 전락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강경민/홍선표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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