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국민에게 1년 전 2013년 7월 7일은 잊을 수 없는 날로 기록됐습니다. 1877년 시작된 ‘메이저 중의 메이저’로 불리는 제 135회 윔블던 테니스 대회 (더 챔피언십)의 하이라이트인 남자 단식에서 자국의 앤디 머리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출신이 이 부문에서 우승한 것은 1936년 프레디 페리 이후 77년 만에 처음이었지요. 앤디 머리는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세르비아 출신 노박 조코비치의 개인 통산 7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좌절시킨 결과였고요.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지난해까지 76년 동안 자국 출신의 우승자 무배출로 인해 달갑잖은 ‘윔블던 징크스’라고 불리며 글로벌 경제학계에서 통용되는 ‘윔블던 효과 Wimbledon Effect’ 탄생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윔블던 효과는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주객전도 主客轉倒 현상, 또는 객들의 잔치로 풀이할 수 있는데요.
윔블던 대회에서 영국인 우승자의 대가 끊기고 50년 세월이 흐른 1986년. 얼마 전 타계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는 영국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 붙였습니다.
그 결과, 영국의 증권 금융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했습니다. 대신 미국과 유럽의 자본이 절반 이상의 영국 금융회사들을 차지하는 현상이 발생했고요. 그 때 경제학자들은 대처 정책추진 결과와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남자 단식이 매우 닮았다며 “잔치 잔치 벌였네. 외국인을 위한 잔치 벌였네”라며 윔블던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윔블던 효과가 우리에게도 실감나게 다가온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가 지적됩니다.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미국 등 선진국 자금이 한국 등 아시아를 헤집고 다니며 초토화한 적이 있었지요. 이 때 국부유출이니 기업 경영권 위협 등이 큰 이슈로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경제계에서는 그러나 ‘객들의 잔치’로 풀이하지만 한편으론 개방을 뜻하는 윔블던효과에 대해 꼭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영국은 비록 우승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윔블던 대회를 통해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회관람을 위해 전 세계로 부터 몰려든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과 광고비, TV 중계료 등을 챙긴다는 게 들립니다. 대처의 금융시장 개방 정책에 힘입어 영국 런던은 미국 월스트리트와 더불어 국제 금융의 메카로 부상했고 국부의 3분의 1이 금융에서 창출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지요.
‘축구 종주국’ 영국이 자신 안방에서 깔아놓은 위대한 멍석 (윔블던 테니스대회) 위에서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면서 유래한 ‘윔블던효과’가 축구 월드컵으로 급속 이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특히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린 이번 2014년 대회는 ‘월드컵의 윔블던 효과’가 심화한 상징적 대회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실 그동안 열린 월드컵에선 ‘X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50점을 따고 들어 간다’는 속어에 따라 이번 대회 전까지 19번 중 7차례나 개최국이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제16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 프랑스 우승를 비롯해 제11회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 아르헨티나, 제10회 1974년 서독 월드컵 = 서독, 제8회 1966년 영국 월드컵 =영국, 제2회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 이탈리아, 제1회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 우루과이 우승이 그것인데요.
때문에 과거 ‘개최국=우승’이란 등식이 월드컵에서 큰 징크스 중 하나로 꼽혔지요. 그러나 이 등식은 16년 전, 제 16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해 사라진 뒤 독일이 우승컵을 안은 이번 브라질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으로 실종사태를 빚고 있습니다.
제20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 독일, 제19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스페인, 제18회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제17회 2002년 한일월드컵 = 브라질 우승이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월드컵은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려 전 세계 축구팬들로부터 ‘개최국=우승’ 등식의 부활이 매우 크게 기대됐습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그러지 못했지요. 되레 월드컵의 윔블던 효과만 심화했다는 분석입니다.
31개국을 안방으로 부른 브라질은 준결승에서 독일에 1 대 7로 대패한데 이어 3, 4 위 결정전에서도 네덜란드에 세골이나 먹고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브라질은 무려 12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들여 비단으로 짠 새 멍석 (경기장)을 깔아 놓고도 객들의 잔치를 구경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자칫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윔블던효과’에서 긍정적 측면으로 불리는 ‘경제적 부가가치의 창출’에서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소릴 들을 판이기도 합니다.
‘개최국 = 우승 실종 사태’인 월드컵의 윔블던효과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할 전망입니다. 예정된 제 21회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제22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개최국의 우승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의 윔블던효과 상징 사례론 유럽국가의 아메리카 신대륙 원정 무(無)우승 징크스가 산산조각 났다는 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동안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브라질이 이를 깬 기록이 있으나 (제6회 1958년 스웨덴 월드컵 = 브라질 우승) 아메리카 신대륙 월드컵에서 유럽팀 도전의 역사는 ‘7轉 (넘어질 전)’에 머물렀습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우승을 ‘7轉8起 (일어날 기)’라고 일컫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월드컵에서 윔블던효과가 급부상하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운동인 축구의 과학화’가 지목됩니다. 과학화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 知彼知己’에서 비롯한다는 해석입니다. 지피지기는 모든 일을 분석하고 맞춤형으로 대응한다는 얘기지요. 대한민국 축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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