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핑계로 험한일 도피 안해"
뒷좌석에 아이 태우고 순찰도
[ 윤희은 기자 ] “1995년이었어요. 은평경찰서에서 방범계장을 맡고 있을 때 2개월 된 딸을 포대기에 싸서 순찰차 뒷좌석에 태우고 근무한 적이 있었죠. 우연히 마주친 서장님이 강아지를 태운 줄 알고 지휘봉으로 뒤적이다가 딸 아이를 보고 얼마나 놀라셨는지 모릅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며 당황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17일 만난 김해경 송파경찰서장(55·사진)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20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좀 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도 육아를 핑계로 일을 게을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 서장은 지난 1월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이달 초엔 송파경찰서장에 부임하면서 여성 경무관으로는 처음 일선 경찰서장이 됐다.
이 같은 인사 배경에는 김 서장의 탄탄한 이력이 한몫했다. 첫 여경기동대장으로 일했던 1990년대 말 시위 현장에 투입돼 270여명의 여경을 지휘했다. 당시 임시 조직이던 여경기동대가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경찰은 2002년 여경기동대를 상설 조직으로 승격했다. 김 서장은 청와대에 파견돼 영부인을 경호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김 서장은 순경 때부터 남성의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그 결과가 ‘오늘’이 됐다고 했다. 1980년 순경으로 경찰에 몸담은 그는 1982년 경장 승진 시험에 응시했다. 순경으로 들어온 여경은 50세까지도 순경으로 남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김 서장은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굴하지 않았다”며 “대구·경북 지역에서 경장 승진시험을 보겠다고 신청한 여경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대구경찰청이 실시한 경장 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다.
김 서장은 경찰 부 부다. 현재섭 경기경찰청 외사과장(총경)이 남편이다. 경찰청 정보과에서 경위로 근무할 때 한 계급 위(경감)인 남편을 만났다. 김 서장 부부는 이후 첫 ‘부부 경찰서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월 김 서장이 남편보다 먼저 경무관이 됐다. 그는 “주변에서 남편에게 ‘집에 들어갈 때 경례하고 들어가느냐’며 농담을 한다고 들었다”며 “혹시라도 자존심 상할까 봐 요즘엔 더욱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운 ‘부부 경찰’ 생활의 고민은 언제나 육아문제였다.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글쓰기 과제를 받아 왔어요. 그런데 아이가 ‘대한민국 경찰들을 일찍 퇴근시키겠다’고 적었지 뭐예요. 가슴 아팠어요.” 김 서장은 그 뒤론 아이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며 부족한 대화를 보충했다.
김 서장은 ‘남자 경찰보다 세 배 이상 노력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신조를 지키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육아를 핑계로 험한 일에서 도피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남자 경찰들이 여경이라고 편의를 봐주는 것은 훗날 그들이 여경을 무시하는 이유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송파경찰서장이란 직책은 부담이 작지 않은 자리다. 송파구는 서울 25개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고, 제2롯데월드 건설로 교통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김 서장은 “신설한 경제범죄수사과와 기동순찰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게 당면한 목표”라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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