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사] 돈 풀어 富 창출?…300년전 '미시시피 버블' 이 실패 증명

입력 2014-07-18 18:17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22) 미시시피 버블

도박사로 이름 날린 존 로
인도회사 주식 상장 → 은행 설립해 지폐 발행 → 정부부채 주식으로 전환하는
3단계 방식으로 부채 떠 넘겨

주가 40배 올랐던 인도회사
2년 후 200분의 1 토막
통화량 조절의 실패 증명




미시시피 버블은 흔히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미 미시시피 강변 루이지애나의 개발과 무역독점권을 통해 얻게 될 부에 대한 환상에서 빚어진 시장의 광기로 여겨지기도 하고(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잘못된 가정에 기초해 빚어진 실수로 보기도 한다.(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미시시피 버블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왕실의 섭정과 존 로라는 사람이 조직적으로 파산상태인 프랑스 국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태다.(벨드, ‘존 로의 시스템은 버블이었나?’)

존 로(1671~1729)는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1671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상속을 받아 런던에서 도박사로 명성을 떨쳤고, 1694년 결투로 연적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뇌물을 주고 유럽으로 탈출했다. 그 후 10년간 암스테르담 등 유럽을 떠돌며 은행업에 주목했다. 1703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그는 1705년 토지에 기초해 화폐를 발행하는 은행에 대한 계획을 스코틀랜드 의회에 제시했지만 거부됐다.

로는 친분을 쌓아둔 프랑스 오를레앙 공이 루이 14세 사후 루이 15세의 섭정이 되자 마침내 자신의 계획을 실험할 기회를 잡았다. 루이 14세는 72년간 통치하며 프랑스를 군사·정치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재정은 파탄상태였다. 1715년 프랑스 정부부채는 30억리브르에 달했는데, 당시 1년 재정수입은 1억6500만리브르에 불과했다. 정부부채 이자만 8600만리브르에 달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부채는 30년 사이 20배 이상 늘었고, 리브르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정부채무의 급증과 통화 조작으로 리브르의 가치가 불안해지자, 1709년 금과 은을 감추거나 해외로 유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북미 및 서인도제도와의 무역독점권을 확보한 로의 인도회사(미시시피회사) 주식도 거품이 부풀었다가 터졌다. 1718년 6월 공개 후 250리브르 전후였던 인도회사 주가는 이듬해 12월 1만리브르 가까이 치솟았으나 1721년 3월엔 50리브르까지 폭락했다. 주가 변동만 보면 사람들이 주가 상승에 편승해 돈을 벌고자 ‘묻지마’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건으로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시시피 버블은 주가변동만이 아니라 로의 계획을 들여다봐야 한다. 로의 계획은 회사의 주식 상장, 은행 설립을 통한 지폐 발행, 그 은행을 동원해 정부부채를 일종의 정부주식으로 전환하는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다시 말해 부실회사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채권자의 희생 아래 부실회사의 채무 걱정은 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의 계획은 파산 직전의 정부가 발행한 부실 채권을 정부와 다름없는 인도회사(국왕이 대주주)의 주식으로 교묘하게 전환했다. 이런 로의 계획은 루아얄은행(왕립은행)의 은행권과 인도회사 주식의 시장가치가 동반 급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결과 정부는 국채 부담에서 벗어났지만, 국채 투자자들의 손에는 10분의 1 가치로 줄어든 인도회사 주식만 남았다.(김우택, ‘미시시피 거품, 시장의 광기였나 정책의 실패였나?’) 결과적으로 국채투자자들과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정부 빚을 대신 갚아준 셈이다.

로의 계획은 최초의 전면적 불환지폐의 실험이기도 했는데 다음의 단계들을 거쳐 전개됐다. 첫 단계는 1716년 5월 파리에 설립된 민간은행이 2년 뒤 정부기구인 루아얄은행으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처음 로가 세운 민간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은 법정화폐가 아니었다. 은행권은 금화 단위로 표시됐고, 소지자가 원하면 금화로 교환됐다. 그러나 1718년 이 은행의 주식 전부를 왕이 소유하고, 로가 총재를 맡는 루아얄은행이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로는 은행을 통해 기존 상품화폐를 불환지폐로 대체하는 시도를 한다. 원하면 은행권을 금화로 교환해줬지만 그 비율이 고정돼 있지 않았고, 기존 금화를 배제시켜 은행권을 법정 지급수단으로 바꿔나갔다.

두 번째 단계는 또 다른 회사의 설립과 주식공모다. 원래 미시시피회사는 프랑스 식민지인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루이지애나를 개발하고, 무역독점권을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17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이듬해 여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 다른 무역독점권과 징세권을 사들였는데, 이런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주식공모를 통해 조달됐다.

세 번째 단계에서 인도회사는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모해 징세가 주업무가 됐다. 1719년 8월부터 프랑스 국채를 그 회사의 주식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절정기였던 1720년 1월, 로는 인도회사의 경영자이자 은행총재였으며, 루이 15세의 섭정 오를레앙 공의 완전한 신임을 얻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1719년 5월 500리브르였던 주가는 1720년 1월 9000리브르 이상으로 치솟았다.

곧이어 하락기가 찾아왔다. 로는 정부채권 소지자들이 인도회사의 주식을 사도록 하기 위해 주식 가격을 시장 가격 이상으로 고정하는 정책을 실시했으며, 주식을 시장가격 이상으로 사들이기 위해 루아얄 은행의 은행권을 대량 발행했다. 이렇게 되자 인플레이션이 문제로 등장했다. 이 점을 피하기 위해 로는 통화단위를 변경하고 통화와 금화의 교환비율을 변경시키려고 했지만, 1720년 5월 루아얄 은행권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구매력을 신뢰할 수 없는 은행권이 되고 만 것이다. 이후 6개월간 로는 은행권을 다시 매입하고 부채 전환 계획을 발표하는 등 회사의 파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무위로 끝나고 결국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로의 계획을 살펴보며 우리는 화폐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함을 재확인하게 된다.

김이석 <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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