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종로 금은방 배회하던 男…절도범인 줄 알았더니 '金파라치'

입력 2014-07-19 09:00  

신고포상금 1000개 시대…파파라치의 세계

세수 확보되고 규범도 확립
차명계좌 신고 포상금
2013년 1억850만원 지급돼…추징 세액은 1159억원 달해

영세 자영업자 "다 죽겠네"
약사가 잠깐 자리 비운 틈 타 직원에게 약 받는 장면 촬영
영상 교묘히 편집해 신고도



[ 홍선표 기자 ] 지난 4월 서울 종로경찰서 형사과에 한 금은방 업주의 신고가 접수됐다. 60대 남성이 두 달 전 금은방 여러 곳을 돌며 개당 100g(약 26돈)짜리 남성용 금목걸이 8개를 4000만원에 팔고 갔는데, 디자인이 모두 비슷한 데다 최근 세공된 제품이라 훔친 물건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수소문 끝에 금목걸이를 판매한 김모씨(62)를 찾은 형사들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자신을 금은방을 대상으로 한 ‘금(金)파라치’로 소개하며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금은방을 신고해 국세청에서 포상금 받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시계 및 귀금속 소매업’이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업종에 추가되면서 30만원 이상(7월부터는 10만원 이상으로 강화)의 귀금속을 거래할 때는 무조건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한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되면 업체엔 거래액의 50%에 달하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신고한 사람에겐 포상금(거래액의 20%·건당 한도 100만원, 연간 500만원)이 지급된다. 김씨는 대부분의 금은방이 부가가치세를 피하려고 현금영수증 없이 금을 거래하는 ‘뒷금’ 관행을 이용해 포상금을 타내는 금파라치였다.

예를 들면 한 금은방에서 100만원어치 금제품을 구매한 뒤 인근 가게에 97만~99만원 정도를 받고 파는 식이다. 1만~3만원을 손해보는 것 같지만 현금영수증 미발행을 신고하면 포상금 20만원을 챙길 수 있어 한 번의 거래로 17만~19만원의 수입이 생긴다.

18일 정부와 파파라치(포상금 신고자)업계에 따르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신고포상금 제도는 1000여개에 달한다. 그 종류도 담배꽁초와 쓰레기 무단투기 같은 경범죄부터 현금영수증 미발행, 부정 선거, 보험 사기, 첨단기술 유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파라치 전문학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수강생을 모집해 노하우를 알려주는 전문학원도 성업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로선 단속 인력을 늘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다 과태료 부과로 세수까지 확충할 수 있어 신고포상금 제도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일각에선 각종 파파라치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들만 과태료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경기 여파로 파파라치 학원 붐벼

“화면이 어두워져도 여기 OK 버튼을 눌러 녹화하면 돼요.”

16일 오전 9시30분,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파파라치 학원. 사무실 한쪽 테이블에선 학원에서 방금 몰래카메라를 구입한 수강생에게 줌과 녹화 기능을 가르치는 1 대 1 교육이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담을 위해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50~60대 남성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오전과 오후 특강을 합치면 많을 때는 하루 30여명이 학원을 다녀간다”며 “16년 동안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불경기 때문인지 수강생이 이렇게 많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파파라치의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그동안 학원 수강생 수와 신고포상금 지급 실적 등을 근거로 전국에서 3000여명의 ‘전문꾼’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파파라치의 절반 이상은 60대 이상이며, 50대는 30% 수준이다. 여성 비율도 40%에 달한다.

문성옥 리얼픽션 원장은 “부부가 함께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면 단속 대상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어 부부 파파라치 비중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파파라치 학원은 전국적으로 20여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고포상금제도와 포상금 신청 방법에 대한 이론과 현장 실습, 장비 구입 및 작동법 등을 2~3일 과정으로 가르친다. 일부 학원에선 신문·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월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학원에선 연간 수억원의 수입을 올린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광고에 대해 업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간조사업(사립탐정)과 파파라치 교육을 함께 진행하는 탑건의 박용운 원장은 “첨단기술 유출 적발과 같은 억대 포상금이 걸린 사건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대부분 쓰레기 무단 투기, 일회용품 사용 신고 정도로 수입을 올린다”고 말했다.

몇몇 학원은 ‘무료교육’으로 홍보한 뒤 수강생들에게 몰래카메라를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부산지역 파파라치학원인 오토스파이 관계자는 “일부 학원에선 시중에서 28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카메라를 100만원 가까운 가격에 바가지를 씌워 수강생들에게 판다”고 전했다.

○신고 포상금제는 저비용 고효율?

정부와 지자체가 신고포상금제를 확대하는 이유는 각종 법, 질서 확립과 과태료 부과를 통한 세수확보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다. 특히 현금영수증 미발행과 차명계좌를 활용한 탈세를 적발해야 하는 조세 분야에서 신고포상금 제도가 상당한 성과를 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도입된 차명계좌 신고포상금제를 통해 지급된 포상금은 1억85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추징한 세금은 포상금의 600배인 1159억원이나 됐다. 이는 지난해 국세청에 접수된 차명계좌 관련 8795건 중 1000여건을 우선 분석한 결과인 만큼 앞으로 추징액은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문성옥 원장은 “성형외과, 인테리어업체, 결혼식장, 가구점 등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현금으로 낼 테니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면 일부 업체에서는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알려준다”며 “이는 세(稅)파라치가 돈을 버는 주된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세파라치를 활용한 탈세 예방 효과가 크다고 보고, 차명계좌 한 건(1000만원 이상 추징 시)당 50만원인 포상금을 1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감독원도 신용카드사의 회원 불법 모집을 근절하기 위해 ‘카파라치(카드+파파라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금감원은 신용카드 연회비의 10%가 넘는 경품을 제공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달 신고 포상금을 2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5배나 올렸다. 그러자 한 달 평균 11건이던 신고가 6월엔 67건으로 늘었다.


○팜파라치와 전쟁 나선 약국들

공익 제보라는 순기능에도 신고를 당하는 입장에선 파파라치들은 ‘눈엣가시’다. 일부에선 파파라치들이 포상금을 노리고 녹화한 영상을 교묘히 편집해 신고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팜파라치(파머시+파파라치)’와의 전쟁에 나선 약국들이 대표적이다. 약사법에 따르면 감기약, 두통약과 같은 일반의약품도 약사들만 판매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 받는데, 팜파라치는 법원이 선고한 벌금액의 10% 한도에서 지급되는 포상금을 노리고 활동한다.

약사들은 팜파라치들이 이 규정을 교묘히 악용한다고 주장한다. 약국을 찾은 손님과 상담을 끝낸 약사가 직원에게 ‘약을 건네주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팜파라치들은 직원이 약을 건네주는 장면만을 영상에 담아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사들은 팜파라치들이 신고 대상으로 삼은 약국이 약사의 지시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반박 자료로 제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CCTV 기록이 자동으로 지워지는 1~2개월 뒤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지난해 11월 팜파라치로부터 무더기 신고를 당한 영등포 지역에선 해당 약국들이 팜파라치를 무고죄로 고소해 현재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유정사 영등포구약사회장은 “약국은 대부분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는데, 약사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노려 직원에게 일반의약품을 사간 뒤 신고하기도 한다”며 “약사가 옆에 있었는데도 교묘하게 영상을 편집해 신고하는 행태는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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