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원자 A3용지 1~2장 쓸 때
7~8장 답안 작성해 '눈도장'
'토론식 학습'임선영 씨
필기시험, 회계사 1차시험 수준
계산기 필요한 복잡한 문제는 없어
[ 공태윤 기자 ]
“신협, 단위 농·수협, 새마을금고, 우체국은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는 금융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계셔야 합니다.”
지난해 예금보험공사 신입사원이 된 온태호 씨(30·전북대 행정학과 졸)는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닌 금융회사가 어디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함께 인터뷰에 나온 입사동기 임선영 씨(26·경북대 경영학과 졸)도 “이 문제는 예보 필기시험의 단골 메뉴”라며 “예보 지원자라면 틀리면 안 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홍보실 관계자는 “이들 금융회사는 별도의 예금보험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을 때 예금을 보장해 금융안정성을 돕는 곳이 바로 예보다. 1996년 설립된 예보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 굵직한 금융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했다. 파산한 금융회사를 정리하는 것뿐 아니라 ‘불행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금융회사의 경영 리스크 분석도 한다. 무엇보다 파산 금융회사의 소액 예금자에게는 1인당 최고 5000만원(원금에 소정의 이자를 합한 금액)까지 예금을 보장하고 있다.
예보는 금융회사 정리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하다보니 경영·경제·법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인재를 뽑는다. 온씨는 “면접장에 함께 들어간 지원자 세 명이 모두 행정고시 준비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5년간 행시를 준비하다 진로를 바꾼 케이스다. 임씨는 회계사 자격증 보유자였다. 예보 홍보팀 관계자는 “합격자의 상당수는 고시 준비생이거나 전문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최근에는 해외대학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지원자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예보는 지난 11일 정규직 전환형 인턴채용 원서접수를 마감하고, 오는 26일 필기시험을 치를 예정이다. 예보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지방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아니다. 임씨는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는 덕분에 예보의 미혼 직원들은 결혼시장에서 상한가”라고 소개했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있는 예보 본사에서 최근 이들 신입사원을 만났다. 온씨는 인사부 급여후생팀, 임씨는 리스크관리1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상 문제 집중 연습한 보람 있었죠”
온씨의 예보 입사 준비기간은 단 5개월이었다. 그는 “필기가 당락을 좌우하기에 고시처럼 어렵게 공부하려 노력했다”며 “쉬운 문제보다 행시 기출문제나 논술형 모의고사 등 스스로 힘든 방식의 공부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온씨의 ‘고난도 시험공부 전략’은 적중했다. 지난해 경제 분야 논술형 문제는 ‘현물보조, 현금보조, 가격보조의 소비자 후생이 가장 극대화되는 점을 설명하라’였다. 5년간 행시를 준비했던 그는 예상 논술문제 15개를 선정해 실전처럼 답안 작성 연습을 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보통 A3 용지 1~2장 분량의 답안을 작성했지만 그는 7~8장의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온씨는 “채점하는 분들이 교수님이라고 생각해 글씨와 그래프를 큼지막하게 그렸다”고 소개했다. 김종훈 홍보실 차장은 면접용 팁으로 “저축은행 정리와 자금 회수, 우리금융지주 매각, 금융회사 차등 보험료 등이 최근 예보의 핫이슈”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행시 1차 불합격 소식을 접한 온씨의 충격은 컸다. 20대의 거의 절반을 고시에 불태웠기에 아쉬움도 많았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며 “이 정도 열심히 공부했다면 다른 길도 충분히 열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록 가슴은 아팠지만 이튿날부터 다시 고시생처럼 예보 입사를 준비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5개월간 집중한 끝에 그는 지난해 12월23일 당당히 예보에 입사하게 됐다.
온씨는 5년간의 고시생활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웠다고 말했다. “가치 있는 것은 그만큼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보 입사가 결코 쉽지 않지만 힘든 만큼 노력해서 들어온다면 그 기쁨도 클 것이라 확신합니다. 고난과 역경만큼 내면의 성장과 경력도 쌓이는 것 같아요.”
“토론면접 대비해 최신 이슈 체크를”
임씨에게 2013년은 최고의 해였다. 지난해 8월엔 3년간 공부했던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11월엔 예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대학 고시반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 회계사 합격 비결이었다고 소개했다. “아침 저녁 출석체크하면서 절대적인 공부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고시반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회계사 합격자의 대부분은 ‘나홀로족’이 아닌 ‘함께 공부족’이었죠.”
회계사 시험은 예보 입사에도 도움이 됐다. 경영 분야에 지원한 임씨는 “예보 필기시험 과목은 회계사 시험과 비슷했고 난이도는 회계사 1차 시험 수준이었다”고 소개했다. 예보 필기에선 계산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렵고 복잡한 계산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진위형 필기시험은 평소 경제신문을 통해 경제상식을 익히고 회사 홈페이지에서 예보에 대한 상식문제를 준비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예보 입사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장에 갔다. 그는 “토론면접 때 준비된 지원자들을 보면서 주눅이 들 정도였다”며 “솔직하고 자신감 있게 나를 표현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면접 주제에 대해선 평소 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최신 이슈를 체크할 것을 당부했다. 임씨는 ‘기초연금 지급’ 문제가 찬반토론 주제로 나왔다고 소개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임씨는 현재 서울 마포에 있는 예보 합숙소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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