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야? 홈쇼핑이야?"…쇼미더트랜드, '동지현 효과'로 '활짝'

입력 2014-07-25 10:51  

# '물광' 화장을 한 여자와 나이가 제법 들어보이는 남자가 격하게 고개를 젖혔다 숙이며 피아노 연주에 몰입했다. 인기 드라마 '밀회'를 패러디한 개그콘서트의 '물회' 얘기가 아니다. 지난 12일 방송된 '쇼미더트렌드'에서는 동지현 쇼핑호스트와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각각 김희애와 늙은 유아인에 빙의된 듯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방청석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방송 중 시청자들의 카카오톡을 통한 메신저 참여가 7000건을 넘어서면서 동지현 쇼핑호스트와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사전에 약속한 미션을 수행한 것이다.

# "염순희 씨, 이건 사야겠다" 생소한 이름에 순간 당황했다. '누구지? 잘 모르는 유명인인가?' 라고 순간 멈칫했던 동지현 쇼핑호스트와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는 "누구에요?"라고 물었다. 이에 공동진행을 맡고 있는 방송인 김새롬 씨는 "우리 엄마입니다"라며 "이거 77 사이즈 있대. 77 있어. 이거 사, 엄마"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이에 질세라 김씨도 "우리 손애자씨. 우리 엄마, 사이즈 77"이라고 덧붙이더니 동지현 쇼핑호스트도 "각자 자기 엄마 이름 대기에요? 정준선 여사님...사이즈 77이에요"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물건은 안 팔고 흰소리만 하는 듯하더니 이내 "잠깐만 77은 검정색만 된대요. 여사님들 다른 색상 77은 다 나가고 검정 색상만 남았대요"라고 사뿐히 본업으로 돌아왔다.


홈쇼핑이 예능을 품었다. 상품을 설명을 하다 말고 농담을 하고 사연도 소개한다. '마감임박'이니 '주문량 폭주'라니 하는 독촉성 자막도 없다. 얼마나 빨리 많이 파는데 집중했던 기존 방송과는 DNA가 달라졌다.

25일 홈쇼핑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등 황금시간대에 기존과 다른 '쇼핑버라이어티'(쇼핑+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그 중에서도 GS홈쇼핑의 간판 프로그램 '쇼미더트랜드'는 이미 5년차에 접어든 맏형격 프로그램이다.

지난 18일 GS샵 본사에 만난 강남일 쇼미더트랜드 담당 PD는 "이제는 소비자들이 딱딱한 설명말고 생동감 있고 색다른 것을 원한다"며 "보는 즐거움과 시청자와의 교감을 고려해 예능과 결합한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PD가 이끌고 있는 쇼미더트랜드는 기존 홈쇼핑의 전형을 가장 먼저 깨트린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힌다. 매주 토요일 밤 10시40분부터 140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매 방송마다 실시간 참여자가 수 천 명에 달한다.

6개 홈쇼핑 채널의 모든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다. 홈쇼핑 업계 최초로 평균시청률 1% 돌파를 욕심내고 있다. 동시간대 점유율은 지난달 28일과 지난 5일 2회 연속 1%를 넘었다.

실제로 쇼핑호스트 동지현 씨가 투입된 지난달 14일 첫 방송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하더니 지난 5일 방송에서는 자체 최고 시청률 0.53%를 기록했다. GS샵 평균 시청률의 17배를 넘어선 수치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실시간 참여 역시 첫 방송에 4000개를 넘기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지난 5일 방송에서는 7784개로 다시 신기록을 세웠다.

강 PD는 "국내에서 홈쇼핑 방송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났고 방송 채널도 2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면서 "똑같은 상품, 비슷한 포맷으로 방송하는데 식상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쇼미더트랜드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상품과 방송 포맷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프로그램이라고 해당 제작진들은 강조했다.

강혜련 패션의류팀 상품기획자(MD)는 "초기 홈쇼핑 방송에서는 패션·잡화가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로도 최신 유행에 맞는 상품도 많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내가 고른 상품이 아니더라도 동종업계 종사자라는 이유로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쇼미더트랜드 패션·잡화 상품들은 스스로가 홈쇼핑 MD라는 직업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질이 개선됐다"며 "한번 팔면 끝인 상품,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상품이 아닌 '내 자식'이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상품을 선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다른 방송을 위해서 투입되는 인력과 장비도 배 이상 늘렸다. 강PD를 포함해 총 3명의 PD가 제작에 참여하고 방송 카메라도 7대나 사용한다. 일반 홈쇼핑 방송에서는 카메라가 3~4대 정도 쓰인다.

강 PD는 "예능 요소를 많이 넣고 있지만 핵심은 소비자들과 같이 호흡하고 교감하려는 시도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는 부분"이라며 "메신저나 게시판을 통해 받은 내용을 모아서 따져보기도 하고 진행자들에게 새로운 임무(미션)을 주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실시간 메신저뿐 아니라 쇼미더트랜드에는 100명의 방청객도 있다. 100명의 방청객은 파워블로거, 모델 등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로 소비자들 대신 직접 상품을 착용해보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 이 역시 생동감 있는 의견을 가감없이 보여줘야겠다는 강 PD의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100명이나 되는 방청객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에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일반 소비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방송 참여 문의도 쏟아졌다. 쇼미더트랜드 제작진은 일반 소비자를 포함한 방청객단도 꾸릴 계획이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이 같은 형식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강 PD는 국내 최고의 진행자 덕분이라고 주저없이 답했다. '완판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쇼핑호스트 동씨와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씨 그리고 방송인 김새롬이 현재 쇼미더트랜드를 이끌고 있는 진행자들이다.

강 PD는 "채널 이동이 빠른 홈쇼핑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둘 수 있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베테랑 진행자들"이라며 "친구들과 수다들 떠는 듯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일부러 방송을 찾아보는 고정 팬층도 생기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쇼미더트랜드를 이끌고 있는 동씨는 '완판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14년차 베테랑 쇼핑호스트다. 지난 5월 GS샵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는 정갈한 외모와 차분한 말솜씨 때문에 케이블TV와 라디오 등 각종 방송에서도 인기 섭외 대상이다. 연예인 대상 스피치 강연이나 대기업 임원들의 스타일 컨설던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방송에 대해 묻자 강 PD는 "홈쇼핑 업계 15년차인 종사자로 볼 때 이제 상품만 파는 방송은 서서히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좋은 상품에 더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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