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는 7월10일부터 ‘신(新)중견기업 열전’을 게재합니다. 최근 10여년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사세(社勢)를 키운 기업들의 성장 스토리와 향후 전략에 대해 집중 분석하는 시리즈입니다. KG, 다우키움, 삼라마이더스, 이래, 패션그룹형지 등 M&A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기업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 중견기업의 재무적인 건강상태도 점검, ‘재계의 허리’를 넘어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체력을 갖췄는 지에 대해서도 짚어봅니다. 매주 1개 기업을 대상으로 2~3회에 걸쳐 자세히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부산 청년 최병오(62)가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은 건 1979년이었다. 방수페인트 사업 실패를 딛고 일어설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다. 손 위 동서의 제과점을 운영하며 ‘장사 노하우’를 터득한 그가 “내 사업을 하겠다”고 독립한 건 1982년. 아이템은 ‘옷 장사’였고, 장소는 동대문 바다상가였다. 그렇게 3.3㎡(1평)짜리 매장에서 시작한 최병오의 도전은 30여년이 흐른 지금 여성복 남성복 학생복 아웃도어를 아우르는 연매출 1조원(판매가 기준) 규모의 종합 패션그룹으로 꽃을 피웠다. 최 회장이 그리고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3년간 우성I&C, 에리트베이직, 캐리스노트(법인명 에모다), 바우하우스 등을 인수했는데도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새로운 사냥감을 찾고 있다.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패션그룹형지의 ‘몸집’은 커졌다. 하지만 풍성했던 ‘곳간’은 비어가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 “형지가 지금 내실을 다져놓지 않으면 ‘무리한 외형 확장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패션업계에서 패션그룹형지는 ‘변칙 파이터’로 불린다. 일반 패션업체들이 구사해온 전략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일궈냈기 때문이다.싱가포르산(産) 남성복 전문 브랜드인 크로커다일을 들여와 여성복으로 승부한 것이나, 크로커다일 매장을 백화점 및 중심상권이 아닌 변두리상권 위주로 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형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최병오 회장이 있었다. 최 회장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역발상’과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연매출 100억원짜리 중소 패션회사(2000년 판매가 기준)를 13년만에 1조원대로 키웠다. 형지를 만들고, 이만큼 키워낸 ‘단 한명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최 회장은 ‘형지의 모든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최 회장이 가진 형지 계열사 지분율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최 회장은 그룹의 중심축인 패션그룹형지 지분을 100% 갖고 있다. 알짜 비상장회사인 샤트렌과 형지리테일도 가족과 함께 100% 소유하고 있다. 2012년 인수한 우성I&C의 최대주주도 최 회장(47.13%)이다. 에리트베이직의 경우 그가 최대주주인 우성I&C(19.20%)와 패션그룹형지(12.21%)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 패션그룹형지의 역삼동 본사와 조만간 착공에 들어가는 부산 바우하우스 2호점 부지도 최 회장 개인 소유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 “패션그룹 형지를 이해하려면 최 회장의 삶의 궤적과 업무 스타일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부 대신 장사로 승부하겠다”
최 회장은 부산 하단동에서 6남1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횟가루 공장이 잘 된 덕분에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잣집 귀한 아들’이 ‘공부와 담을 쌓은 말썽꾸러기’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자 가세는 급속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최 회장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친구들과 몰려다녔고,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꿈인 마도로스가 되기 위해 부산해양고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결국 문교부가 아닌 체신부 인가 학교(부산고등기술학교 전자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고교졸업장을 따내기 위해 별도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전수학교(일종의 직업학교)’ 같은 비정규 고교에 들어갔지만, 그나마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최 회장의 ‘사업 인생’은 고교 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제대로 된 고교 졸업장조차 없다보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입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방황하던 최 회장에게 길을 터준 이는 막내 삼촌이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페인트 대리점을 운영하던 막내 삼촌이 1970년대 초 갓 고교를 졸업한 최 회장에게 “가게 일을 좀 거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파는 건 그와 궁합이 맞았다. 사업은 순항했다. 이듬해 막내 삼촌이 세상을 떠나자 대리점을 아예 인수해버렸다. 하지만 페인트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방수페인트 수요가 늘자 최 회장도 방수페인트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특허를 취득하는 데 실패하면서 빚만 지게 됐다. 1979년 페인트 사업을 접은 그는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성공과 부도…재기 발판은 ‘폴로’와 ‘악어’
동대문에서 원단가게를 운영하던 손위 동서의 주선으로 동대문에 입성한 최 회장의 첫 사업 아이템은 여성 바지 제조 및 도매판매였다. 최 회장의 차별화 포인트는 두가지였다. 당시로는 드물게 동대문 옷에 ‘크라운’이란 브랜드를 붙였다.
또 다른 차이점은 ‘찾아가는 서비스’였다.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동대문 도매상들은 찾아오는 소매상만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새벽 4시께 출근해 점심 전까지 일을 마친 뒤 바지를 30~40개씩 어깨에 걸치고 전국 대형 공판장을 훑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았던 크라운 바지는 히트를 쳤다.
승승장구하던 최 회장의 기세는 불혹의 나이에 다시 한차례 꺾인다. 돈을 빌려간 지인들이 제때 입금을 하지 않은 탓에 그가 발행한 어음이 부도처리된 것. 161㎡(49평)짜리 아파트와 자가용을 팔아 빚을 갚았다. 69㎡(21평) 월세로 옮기면서 자녀 과외마저 끊어야 했다. 마흔살 최병오에게 남은 건 현금 4000만원과 ‘옷 만드는 재주’뿐이었다.
‘재기작’은 남성복 브랜드 ‘비버리힐스 폴로클럽’이었다. 최 회장은 2000만원을 주고 1년짜리 여성복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비버리힐스 폴로클럽은 유명 캐주얼 브랜드인 ‘폴로 랄프로렌’과 무관한 브랜드였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폴로 랄프로렌의 ‘사촌’ 뻘로 받아들였다. 최 회장의 은행계좌엔 1년만에 수억원이 쌓였다.
하지만 본사는 여러 이유를 들어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 다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헤매야 하는 신세. 이즈음 ‘악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 들어온 ‘크로커다일 맨’을 보고,“저 브랜드로 여성복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 당시 크로커다일은 남성복 브랜드였다. 최 회장은 그 길로 크로커다일 상표권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 본사와 협상을 통해 여성복 라이선스를 따냈다.
1996년 첫 선을 보인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아줌마’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백화점 브랜드에 못지않은 디자인과 품질의 옷을 재래시장보다 조금 비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간 크로커다일 레이디를 키우는데 전념했던 최 회장은 2006년부터 브랜드 다변화 전략에 나서 샤트렌(2006년) 올리비아하슬러(2007년) 라젤로(2008년) 아날도바시니(2009년) 와일드로즈, CMT(2010년) 등 매년 1개 이상 신규 브랜드를 내놓았다.
◆잇따른 M&A…매출 1조 패션왕국 건설
지 난 2011년까지 패션그룹형지의 성장 전략은 오로지 ‘국내 판매 확대’ 하나였다. 크로커다일 레이디, 샤트렌 등 산하 브랜드 판매를 늘려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필요하면 새로운 브랜드를 직접 만들거나 해외 브랜드를 들여오는 게 전부였다.
‘내부 성장’만 고집했던 패션그룹형지가 ‘외부 M&A’로 성장전략의 방향을 튼 건 2012년부터였다. 그룹의 외형이 매장수 1400여개에 연매출 7000억원 규모로 불어나자 내부 성장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첫 번째 타깃은 우성I&C였다. 최 회장은 2012년 4월 아들 준호씨(30) 및 딸 혜원씨(34)와 함께 개인 돈을 들여 우성I&C 오너인 이종우 대표 등 대주주 지분 40.93%를 120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우성I&C의 유상증자 및 에모다와의 합병으로 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60.76%로 상승했다) 당시 그룹 내부에서 우성I&C 인수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자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인수하는 길을 택했다. 와이셔츠 브랜드인 ‘예작’과 남성정장 브랜드인 ‘본’과 ‘본지플로어’ 등을 보유한 우성I&C는 인수 직전인 2011년에 매출 629억원을 올렸지만, 55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적자회사였다.
우성I&C 인수는 여러 측면에서 패션그룹형지의 성장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딜이었다. 여성복에만 집중했던 패션그룹형지가 남성복을 비롯한 종합패션업체로 확장하는 시발점이 된데다 처음으로 상장기업(코스닥시장)을 계열사로 두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형지는 우성I&C 인수 직후인 2012년 8월 아웃도어(노스케이프) 부문에 뛰어들었고, 작년 9월에는 에리트베이직을 인수하며 학생복 분야에도 진출했다. 학생복 넘버1 브랜드인 에리트베이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작년 5월에는 서울 장안동에 있는 복합쇼핑몰 바우하우스(사진)를 777억원에 매입하며 유통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울러 제조공장을 확보하기 위해 작년 7월 베트남에 있는 의류생산공장(C&M)도 사들였다.
‘전 공’인 여성복 부문을 강화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작년 7월 백화점에서 주로 판매하는 중고가 여성복 브랜드 ‘캐리스노트’를 보유한 에모다를 143억원에 인수한 것. 크로커다일 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 하슬러 등 가두점이 중심인 기존 브랜드보다 고급으로 인정받는 여성복 브랜드를 손에 넣은 것이다. 형지는 최근 에모다를 우성I&C와 합병시켰다. 또 지난 5월에는 프랑스 골프웨어 브랜드인 ‘까스텔바작’의 국내 상표권을 인수, 골프웨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강수호 패션그룹형지 최고재무책임자(CFO·상무)는 “2017년까지 그룹 매출규모를 3조원 규모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신규 브랜드를 선보이는 동시에 추가적인 M&A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오동혁 기자 ohyeah@hankyung.com
[한경스타워즈] 증권사를 대표하는 상위권 수익률의 합이 110%돌파!! 그 비결은?
[한경닷컴 스탁론] 최저금리 3.5% 대출기간 6개월 금리 이벤트!
[한경컨센서스]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를 한 곳에서 확인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