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래퍼 "세금 적은 곳에 기업·사람 몰려…경제 활성화로 稅收 더 늘어"

입력 2014-07-28 21:16   수정 2014-07-29 03:58

석학 인터뷰
감세정책 이론적 근거 '래퍼곡선' 제시…아서 래퍼 前 시카고대 교수

개인소득세 없는 美 9개州, 경제성적 월등히 좋아
낮은 세율·넓은 세원이 稅政 기본…'탈세구멍' 막으면 稅收 안줄어



[ 워싱턴=장진모 기자 ]
“미국에서 개인소득세가 없는 9개 주(州)와 개인소득세율이 가장 높은 9개 주의 지난 10년간 인구·고용·생산·개인소득 증가율을 비교해보니 예외 없이 소득세가 없는 9개 주가 월등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조세정책에서 중요한 이론으로 활용되고 있는 ‘래퍼곡선’의 창시자인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현 래퍼연구소 소장·사진)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지난 10년간 미국 50개 주의 경제 성장은 세금정책에서 운명이 갈렸다”며 “세율이 낮은 곳으로 사람과 기업이 몰리면서 해당 주는 세수도 늘고 공공복지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래퍼 전 교수는 지난달 미국 주 정부의 세금정책이 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주 정부의 경제성장 원인’이라는 저서를 스티븐 무어 헤리티지재단 수석이코노미스트와 공동으로 출간했다.

▷책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세금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50개 주 정부의 세금 정책에 따라 각 주의 인구 고용 노동력 총생산 세수 소득 등 경제 지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통계적으로 검증했습니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경제에 해롭다’는 나의 주장이 증명됐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1960년 이후에 주 소득세를 도입한 곳이 11곳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인디애나 미시간 네브래스카 일리노이 메인 펜실베이니아 로드아일랜드 오하이오 뉴저지 코네티컷입니다. 11개 주의 소득세 도입 5년 전과 2012년의 인구와 총생산(전체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 변화를 살펴보니 한 곳도 예외없이 다른 39개 주에 비해 감소했습니다.”(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31개 주가 1960년 이전에 소득세를 이미 부과했으며 1960년 이후 지금까지 나머지 19개 주 가운데 11곳이 소득세를 도입했다. 알래스카는 그 사이에 소득세를 폐지했다)

▷소득세를 도입한 주의 경제가 나빠졌다는 것입니까.

“미국 평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화됐다는 뜻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1개 주 가운데 세수가 다른 주에 비해 늘어난 주가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실이 때로는 허구보다 이상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이건 ‘피케티’가 아니라 ‘리얼리티’ 입니다.(웃음)”(래퍼 교수는 부자 증세를 통해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의 저서 ‘21세기자본론’이 통계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본인의 책은 그런 오류가 없다는 점을 농담조로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경제가 나빠진 주가 어딘가요.

“1975년까지 주 정부의 개인소득세가 없었던 뉴저지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그런데 1976년 소득세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소득세에 이어 재산세와 판매세까지 부과하자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경제가 기울었습니다. 세수도 감소해 2010년에는 재정적자가 100억달러를 넘었습니다. ”

▷개인소득세가 없는 주의 성적표는 어떤가요.

“개인소득세가 없는 9개 주와 캘리포니아(13.3%) 뉴욕(12.7%) 뉴저지(9.97%) 등 소득세율 상위 9개 주의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지표를 비교해보면 인구·고용·개인소득 증가율에서 전자가 후자를 압도했습니다. 총생산 증가율도 전자가 62.0%로 후자(46.4%)를 웃돌았습니다.”(소득세가 없는 주는 플로리다 네바다 사우스다코타 텍사스 워싱턴 와이오밍 뉴햄프셔 테네시 알래스카다)

▷최근 ‘텍사스가 뜨고 캘리포니아가 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 역시 세금정책이 배경인가요.

“그렇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소득세율과 자본이득세율이 가장 높은 반면 텍사스는 소득세와 자본이득세가 없습니다. 10년 전 텍사스는 미국 총생산의 7.4%를 차지했는데 이제는 9.0%로 늘어났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그 비중이 13.1%에서 12.9%로 줄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텍사스 인구 증가율은 20.1%로 미국 4위인데 반해 캘리포니아는 9.1%로 24위에 불과합니다. 미국 평균 9.3%보다 낮습니다.”

▷세율에 따라 미국 인구가 대이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1955~1960년 동부와 중서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대거 이동했습니다. 1995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 플로리다 등으로 인구이동이 시작됐고 이런 흐름이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나도 2007년 정든 캘리포니아를 떠나 테네시 내슈빌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은 소득세와 자본이득세, 재산세가 제로(0)입니다.”

▷세율이 낮으면 세수 부족 위험은 없습니까.

“낮은 세율은 항상 폭넓은 세수기반과 짝을 이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각종 탈세 구멍(tax loophole)을 막고 소득 및 새액 공제, 세금혜택 조항을 줄이면 세율을 낮추더라도 세수가 위축되지 않습니다.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이 조세정책의 기본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기업들의 세금회피 목적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경제 애국심’ 논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익 극대화, 특히 주주이익 최대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만약 본사 해외 이전으로 세금을 합법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봅니다. 문제는 기업의 애국심 부족이 아니라 미국의 높은 세율 탓입니다. 법인세(35%)가 선진국 최고 수준이지만 법인세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합니다. 기업들이 해외 이전 등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는 데다 뛰어난 변호사와 회계사, 로비스트, 정치인 등을 ‘고용’해 세금을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세의 허점을 차단하고 세율을 낮추면 기업들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 새 경제팀에 한마디
“규제 풀고…자유무역 확대하고…그 다음엔 시장서 한 발 물러나라”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하기로 한 방침에 대해 “정부가 기업의 경영 행위에 왜곡을 불러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이익잉여금을 유보금으로 쌓든, 배당하든, 투자하든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면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하고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 침체된 내수가 살아날 것이라는 게 한국 새 경제팀의 생각이라고 설명하자 래퍼 전 교수는 “단기적이고 인위적인 성과를 위해 장기적인 번영의 토대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래퍼 전 교수는 또 저성장 국면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한국 경제가 다시 과거와 같은 고성장 궤도에 들어서려면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화가치 안정, 자유무역, 규제완화, 낮은 세율, 정부지출 억제 등 다섯 가지를 성공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정부가 이 같은 시장경제의 토대를 닦은 후에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래퍼 전 교수는 한국의 법인세율 22%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직접적인 즉답 대신 “세율은 낮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세수는 각종 탈세 구멍(tax loophole)을 없애면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여러 주(州)정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재정수입을 확대하려고 세금을 인상하면 경제가 어려워져 세수기반이 약화되고 재정이 나빠진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세금을 올리면 경제가 더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아서 래퍼는…
美 레이건 행정부의 세금인하 이끌어

아서 래퍼 전 교수(73)는 자신이 창안한 ‘래퍼곡선(그림)’을 통해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세금 인하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래퍼곡선은 일정 수준의 세율까지는 정부의 조세수입이 늘어나지만 세율이 적정 수준(최적조세율)을 넘으면 경제 주체들의 경제활동 의욕이 줄어 조세수입도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적정 수준 이상에선 세율 인상이 세금수입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만큼 오히려 세율을 낮춤으로써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게 래퍼곡선의 핵심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였던 래퍼와 알게 됐고, 어느 날 점심식사 자리에서 래퍼가 냅킨에 중간 부분이 위쪽으로 볼록한 곡선을 그리자 관심있게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래퍼 전 교수는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1970년대 후반 시카고대 교수 시절 래퍼곡선을 놓고 학자들과 논쟁을 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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