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해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앞날

입력 2014-07-29 07:55   수정 2014-07-29 17:41


[최송희 기자] 1998년 여수. IMF의 곤궁은 바다까지 흘러든다. 한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았던 ‘전진호’는 텅 빈 그물만 가지고 초라하게 귀선하기를 반복한다.

뱃사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던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하나 둘 공사장으로 떠나버리고, 이제 여수에 남은 것은 낡은 ‘전진호’와 선장 철주(김윤석),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는 선원들뿐이다.

“뱃사람은 바다에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결국 철주는 밀항까지 결심한다. 선원들의 밥까지 굶겨서는 안 된다는 철주는 선장이자, 그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의 단독적인 결정에 선원들은 출항부터 삐걱거리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중국인들을 싣고 온 배에서 동식(박유천)은 홍매(한예리)라는 조선족 여인을 만난다. 순박하고 마음씨 좋은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 홍매를 구하고, 그에 대한 연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전진호’의 탑승자 모두를 뒤흔들 만큼 거대한 해무이기도 하다.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해무 같은 영화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일어난 실수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처럼 크기를 불려가며, 그 앞의 인간들은 해무를 마주한 것처럼 너무도 나약하고 무력하다.

여섯 명의 배우가 만들어낸 여섯 명의 군상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우리의 모습 같다. ‘전진호’에 숨어사는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김상호), 돈을 중요시 하는 롤러수 경구(유승목), 언제 어디서든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창욱(이희준),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까지.

순진하진 않더라도 순수한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보내온 시간과 서로에 대한 끈끈함은 결국 해무 같은 거대한 공포 앞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각자의 입장은 너무도 분명하고, 그것은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불신을 기반으로 착실하게 무너져 간다.


심성보 감독의 물음은 꽤나 깊고 진지하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 그것을 진지하고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던 태도는 시종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

그래서 ‘해무’는 하나의 거대한 상징이다. 안개 너머, 즉 밀항 이후에 대한 미래는 어디에도 없다. 가족 같았던 선원은 조각났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원망은 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피를 키웠다.

‘해무’는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커다란 줄기와 흥미로운 전개를 뒤로 하더라도 영화적인 재미 또한 상당한 작품이다. 영화화되며 더 높아진 리얼리티나 각 캐릭터들의 심리묘사는 거칠지만 강하고 질긴 힘을 가졌다.

흥미로운 것은 ‘전진호’라는 공간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이다. 영화 초반 ‘전진호’는 아늑하면서도 따듯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하지만 극 중반부터 기관실 및 어창 등 좁고 음습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또한 홍매와 동식이 살인 현장을 목격한 뒤 사랑을 나누는 장면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제까지 ‘해무’의 방식처럼 어딘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며 죽음과 섹스, 라면 등 생과 사의 이미지와 동식의 책임감이 극명하게 설명된다. 특히 한예리, 박유천 두 배우의 연기와 심성보 감독의 시선 등이 인상 깊은 장면이다.

침몰하는 전진호와 그를 지키려는 철주, 속을 알 수 없는 선원들과 밀항자들이 맞닥뜨린 해무. 극명하고 사실적인 캐릭터들과 이를 ‘진짜’ 뱃사람처럼 표현해낸 배우들의 연기, 보기만 해도 강한 비린내가 풍길 것 같은 장면들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내달 13일 개봉.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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