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7%대 고속성장에도 임금인상은 지지부진
[ 강영연 기자 ]
29년간 훈 센 총리의 독재를 견뎌온 캄보디아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층과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등 경제개혁을 요구하고 제1야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1년간 장외투쟁을 벌였다. 결국 훈 센 총리가 야당 끌어안기에 나섰다. 지난 22일 여야 간 전격 합의로 캄보디아 정국은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지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이 변화를 요구하면서 훈 센 장기집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재자, 야당과 손잡다
발단은 지난해 7월 총선이었다. 총선을 10여일 앞두고 국왕의 사면령을 받은 삼 랭시 캄보디아구국당(CNRP) 대표가 캄보디아로 돌아오면서 선거판이 흔들렸다. 전체 의석 123석 중 여당은 과반인 6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지난 총선보다 22석이나 줄어들었다. 55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킨 삼 랭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선거인명부상 유권자 중 15%에 해당하는 약 120만명의 명단이 허위로 기재됐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CNRP는 9월 국왕이 주재한 국회 등원식도 거부한 채 1년 넘게 장외투쟁을 계속해왔다.
야당의 투쟁은 젊은 층과 노동자 계층의 공감을 얻어냈고 지난 1년간 캄보디아에서는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됐다. 결국 훈 센 총리가 합의에 나섰다. 부정선거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다음 선거 전까지 개혁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 위원 9명 중 여야가 각각 4명을 지명하고 1명은 합의로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 위원장도 여야가 나누기로 했다. 시위 과정에서 구속된 야당의원 8명도 석방하기로 했다. 삼 랭시 대표는 “타협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독재 끝날까
훈 센 총리의 변화는 커져가는 국민의 불만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2001년 토지법이 개정되면서 농민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캄보디아 국민의 80%는 농촌에 살고 있을 정도로 농민 비중이 높다.
개정된 법은 농민이 경작하고 있는 토지에 대해 5년 이상 아무런 분쟁이 없으면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농민은 대부분 권력자에게 토지를 뺏겼다. 국제 환경감시단체 글로벌위트니스는 토지법이 개정된 뒤 45%의 땅이 권력자에게 넘어갔다고 발표했다.
젊은이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지난 10년간 연간 7%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임금 인상은 더뎠다. 의류공장 노동자의 월급은 80달러(약 8만원) 남짓. 전 세계 의류기업이 모여들고 있지만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적다는 불만이 쌓였다. 여기에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정보를 나누고 조직화하는 것이 쉬워졌다고 FT는 전했다.
1970년대 후반 ‘킬링 필드’로 불리는 크메르루즈 정권의 대학살을 경험한 세대는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치적 혼란과 내전이 초래될 것을 두려워하지만 젊은 층은 이와 다르다는 것도 반발이 커지는 이유다.
정권 교체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수리아 수베이 유엔 캄보디아 인권특사는 “훈 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캄보디아는 변하고 있다”며 “독재가 유지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브래드 아담스 아시아 담당국장은 “훈 센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선거 결과에 승복해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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