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 직원 메일 받으면 바로 답장쓰는 '光速 경영'…넥슨 황금기 되찾으려 '인큐베이션실' 만들어

입력 2014-07-29 23:39  

CEO 오피스

덩치 커진 넥슨을 개혁하라
복잡한 조직체계 4개로 통폐합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 불러

슈퍼 컴퓨터급 두뇌
11년전 추진한 업무도 기억
평일에도 게임 즐기는 '게임광'



[ 임근호 기자 ] 지난 5월 경기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14’. 서른일곱의 젊은 최고경영자(CEO)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47)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넥슨은 인수합병만 하고 새로운 게임 개발은 안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최근 10년간 인수합병으로 외형성장을 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지금도 PC 게임만 4~5개, 모바일 게임은 20개 이상 개발하고 있는데 과연 넥슨이 개발을 안 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올 3월 넥슨코리아의 새 CEO로 선임된 박 대표는 국내 1위 게임회사 넥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1994년 설립돼 20년이 지나는 동안 연 매출은 1조5000억원, 직원은 3500명에 달하면서 조직이 비대해졌다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넥슨이 게임 개발보다는 돈 버는 것에 더 치중한다며 ‘돈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 대표는 “넥슨이 급격한 외형성장을 이루면서 옛날의 넥슨다움이 사라진 게 사실”이라며 “남들이 하지 않았던 시도, 재밌고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회사로 넥슨을 다시 바꿔 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11년 동안 쭉 넥슨에서만 일해 온 그는 넥슨을 잘 알면서도, 연공서열에 때묻지 않은 젊음을 갖추고 있어 넥슨 내부 개혁에 최적의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다.

‘지원님’이라 불리는 37세 CEO

넥슨 직원들은 박 대표를 ‘지원님’이라고 부른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대표 전무 부장 과장 등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만 붙여 부르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 집무실도 없앴다. 박 대표의 책상은 현재 평사원 옆에 놓여 있다. 집무실은 직원 회의실로 바꿔 버렸다. 그가 먼저 나서자 다른 임원들도 책상을 밖으로 꺼냈다. 넥슨 직원들은 “높은 분들이 옆에 있는 게 처음엔 껄끄러웠다”며 “익숙해지고 나서는 보다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워낙 평범하게 다니다 보니 박 대표를 몰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는 매일 사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먹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과 저녁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옛날 넥슨에서는 다 그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2003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일본 법인으로 건너가기 전인 2005년까지가 넥슨의 황금기였다”며 “그때는 나쁘게 말하면 방임적이라고 할 만큼 회사 분위기가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직급 대신 형 동생이라 부르기도 하고, 게임을 만들다 실패해도 이를 탓하기보다 다른 시도를 계속 할 수 있게 복돋아주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그는 ‘넥슨다움’을 되찾자는 목표를 내걸고 과감한 조직 개편에 나섰다. 먼저 복잡한 조직 체계를 기능별로 단순화했다. 게임마다 사업마다 나눠져 있던 조직은 ‘신규개발’ ‘라이브’ ‘국내사업’ ‘해외사업’ 4개 본부로 통폐합했다. 그만큼 의사결정 단계가 짧아졌다. ‘원 프로젝트, 원 리더’라는 원칙 아래 개발 프로젝트 팀장은 실장, 부장 등의 보고체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정상원 신규개발총괄 부사장과 소통할 수 있다.

현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프로젝트 팀장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하는가 하면,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선 하는 일 없이 잉여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인큐베이션실’이란 독특한 조직도 만들었다.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마음껏 게임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내부 심사를 통과하면 정식 프로젝트로 발전하지만, 꼭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박 대표는 이런 변화에 대해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하는 게임 회사는 개인의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며 “넥슨 구성원들이 스스로 재밌고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도록 시스템과 조직을 뒷받침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꼼꼼함과 빠른 판단력이 장점

그는 넥슨에 근무한 11년 중 7년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 ‘해외통’이다. 넥슨의 일본 상장을 도왔고 2012년부터는 일본 법인은 물론 넥슨유럽과 넥슨아메리카 이사를 겸직하며 엔씨소프트 투자, 일본 모바일 게임사 글룹스 인수 등 넥슨의 글로벌 사업을 이끌었다. 미국 게임사 EA, 밸브 등과 협력 관계를 맺은 것도 그였다.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며 이제는 글로벌 게임 기업으로 성장한 넥슨을 경영하기에 좋은 경험을 쌓은 셈이다.

한편으론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게 그가 넥슨코리아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됐다. “2003~2005년 한국에 있을 때 겪었던 넥슨은 매우 창의적인 DNA를 갖고 있던 회사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며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 넥슨코리아를 맡게 됐을 때 우리가 잘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와 함께 일해 본 직원들은 ‘꼼꼼함’과 ‘빠른 판단력’을 그의 장점으로 꼽는다. 지난 11년간 만난 사람들과 진행한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진행한 일은 물론 관계있는 모든 사안들까지 꿰고 있어, 굳이 실무 부서에서 내용을 재확인하지 않더라도 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 넥슨 관계자는 “특히 이메일을 받자마자 바로 회신하는 스타일이라 초반 몇 달은 신임 대표의 업무진행 속도에 직원들이 당황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2003년 같이 술마시던 친구가 “넥슨이라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가보지 않을래?”라는 말 한마디에 넥슨에 들어오긴 했지만 게임에 대한 애정은 상당하다. 바쁜 와중에도 하루 평균 한두 시간 게임을 즐기며, 주말에는 네댓 시간 정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박지원 대표 프로필

△1977 년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2000년) △넥슨코리아 입사(2003년) △넥슨(일본) 경영기획팀(2006년) △넥슨(일본) 경영기획실장(2009년) △넥슨(일본) 운영본부장 겸 등기이사(2010년) △그룹 글로벌사업총괄(2012년) △넥슨코리아 대표이사(2014년 3월~)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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