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휴가다워야 할 대통령의 휴가

입력 2014-07-31 20:37   수정 2014-08-01 04:14

세월호에 갇힌 무능·무책임 정국
참된 휴식 속 深思遠慮 구상으로
정치·경제 대도약 리더십 보여주길

홍준형 <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



청와대에서 여름휴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휴가 메시지는 보는 사람을 착잡하게 한다. 대통령이 휴가도 마음 편히 못 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까 난감하다. 한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는 때에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대책과 경제살리기 등 산적한 국정 현안을 두고 마음 놓고 외부로 휴가도 가지 못하는 심경이 오죽했겠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휴가를 좀 미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야말로 직분상 누구보다 충분한 휴식이 절실한 공복 아닌가. 그나마 휴가기간에도 보고를 받고 장관 인사 등 이런저런 구상을 한다 하니 딱한 노릇이다. 그 ‘힘들고 길었던 시간’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대통령의 저녁과 잠자리가 어찌 편했겠는가. 휴가를 떠나기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다고 토로한 것을 두고 무슨 정치적 계산이나 수사로 치부하는 것은 옹졸한 일이다.

짧은 휴가 동안 대통령이 이런저런 보따리를 준비해서 풀어 놓으라고 주문할 생각은 없다. 휴가는 휴가답게 푹 쉬는 게 정석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정말 단 며칠, 남은 기간 동안에라도 푹 쉬고 오시기 바란다. 충분히 쉬어야 맑은 정신,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대범한 정치, 심사원려(深思遠慮)의 정책을 내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8월, 그리고 이미 잰 발걸음을 옮기는 9월, 올가을엔 제대로 된 대통령의 큰 정치, 리더십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세월호 참사 100일이 넘었는데도 공식적인 진상조사조차 시작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 유병언 씨와 그 추종자들을 잡는다며 두 달 이상 정부, 검찰과 경찰이 벌인 푸닥거리에 정신을 파는 동안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가버렸다. 시종일관 정치적 손익계산으로 ‘청와대 구하기’와 재·보선 영향 차단을 위해 일로매진(一路邁進)한 여당도 여당이지만, 유병언 일가의 수상한 종적을 화제 삼아 물 만난 고기들처럼 춤을 춰댄 언론과 평론가, 전문가들도 큰 몫을 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늘 뽑아주고 또 기다려 줄 수밖에 없었던 정부와 국회, 검찰과 경찰 모두가 얼키설키 휘돌아 군무를 펼치며 무능과 무책임의 악취를 풍기는 사이에 아직 속 시원한 진상규명조차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낸 것이다. 대한민국 도처에 여기서도 무책임, 저기서도 무능,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지도 않고 희망을 내려놓는다.

슬금슬금 이곳저곳에서 이제 세월호 정국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조심스런 의견들이 나온다. 차마 표현은 못하지만, 제발 이젠 좀 세월호 참사라는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속마음들이다. 이제 선체도 인양하고 후속대책도 시행해서 상황을 종료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물론 이렇게 세월만 보내다 결국 서서히 망각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와 두려움 때문에 조급해져서도 안 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것은 2014년 대한 국민 모두 만장일치의 화두다. 잊지 않는 길, 영원히 기억하며 되살리는 방법은 끊임없는 각성이다. 상황이 종료돼도 항상 깨어 나라와 사회의 일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억울한 희생자들이 다시 태어나도 좋을 만한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휴가도 맘 편히 못가는 대통령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남은 휴가기간 동안이나마 대통령이 몸과 마음을 푹 쉬고 돌아와 심기일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새 정치, 대범한 반전의 정치를 열어젖히는 꿈을 꾼다.

홍준형 <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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