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리포트] '금융개혁' 칼 빼든 오바마…대놓고 反旗 든 월가

입력 2014-08-03 21:08   수정 2014-08-04 03:45

오바마 "조세회피, 기업 탈영병"
美 기업 국적포기 어렵게 법안제정 착수 등 밀어붙여

선거판 뒤집으려는 금융사
11월 美 중간선거 앞두고 정치헌금 공화당에 집중
민주당 이기면 '인버전' 타격…금융사 자문료 수입 잃어



[ 뉴욕=이심기 기자 ] 15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적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의 창업자 켄 그리핀은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80만달러를 공화당에 정치헌금으로 기부했다. 이 돈은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와 박빙의 경합을 벌이고 있는 5개주 공화당 후보에 집중됐다.

아르헨티나를 13년 만에 국가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헤지펀드 엘리엇을 이끄는 폴 싱어를 비롯 5개 대형 헤지펀드 창업자들도 이번 선거에서 상원 주도권을 공화당으로 돌리기 위해 ‘실탄’을 쏘기로 했다.

폴슨앤코의 존 폴슨, 매버릭 캐피털의 리 에인슬리, AQR의 클리프 아스네스 등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거물들이 모두 폴 싱어가 주도하는 ‘다수의 미국을 위한 친구’라는 이름의 공화당 기금위원회에 동참했다. 이들이 낸 58만달러의 정치헌금은 아칸소, 몬태나, 알래스카주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에게 집중될 예정이다. 이곳은 모두 이번 중간선거에서 미 상원의 주도권을 공화, 민주 어느 쪽이 갖게 될지를 결정짓는 최고 경합지역이다.


오바마에 등 돌린 월스트리트

헤지펀드뿐만 아니다. 월스트리트의 대형 상업은행과 투자은행(IB)들도 공화당에 거액을 베팅하고 있다. CNBC가 2013년부터 2014년4월까지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낸 정치후원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를 포함, 정치후원금을 가장 많이 낸 상위 30개 금융회사 중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간체이스 등 22곳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곳 중 민주당을 지지한 곳은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소로스 펀드 등 2곳에 불과했다. 30곳을 통틀어서는 4곳이었으며 나머지는 두 정당에 똑같은 금액을 후원했다.

공화당 편중 현상은 후원금 액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비영리 정치헌금 연구기관인 CRS에 따르면 최근까지 월가 금융회사들이 중간선거를 위해 낸 정치헌금은 2억2460만달러로 2010년 1억7015만달러와 비교해 32% 늘었다. 정당별 배분금액을 보면 2010년에는 절반이 넘는 53%를 민주당이 가져간 반면 공화당은 46%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는 비율이 대폭 역전돼 62%를 공화당이 차지하면서 38%에 그친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다. 금액으로 놓고 보면 2010년 7826만달러에서 올해는 1억3925만달러로 배 가까이 늘었다.

월스트리트가 그동안 공화, 민주 양쪽 모두에 ‘보험’을 드는 관례를 깨고 공화당에 지원 사격을 집중하는 이유는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헤지펀드는 물론 투자은행, 대형 상업은행들의 경우 이번 선거 결과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공포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바마 금융개혁 저지가 목표

실제 미 대기업의 조세 회피가 선거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이를 돕는 월스트리트가 오바마 대통령(사진)의 정치적 타깃이 되고 있다. 해외의 경쟁 기업을 인수한 뒤 본사를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등 유럽으로 옮기는 이른바 ‘인버전(inversion·자리바꿈)’ 전략을 월가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NYT)는 톰슨로이터의 집계를 인용, 월가 투자은행들이 최근 3년간 미국 기업들에 인버전을 자문하며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만 1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골드만삭스가 2011년 이후 10건의 자문료로 2억26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을 비롯 JP모간체이스도 1억8440만달러(7건)를 챙겼다. 모건스탠리가 9770만달러(8건), 씨티그룹이 7170만달러(6건)로 뒤를 이었다. NYT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천억달러의 국민 세금이 구제금융으로 투입된 월스트리트 은행 중 법인 국적을 해외로 옮기려는 기업 고객을 거절한 곳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기업의 조세회피를 ‘기업 탈영병’에 비유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또 미국 기업의 국적 포기를 어렵게 하는 법안 제정에 착수하는 한편 칼 레빈 미시간주 민주당 상원의원을 통해 조사에 착수하도록 지시했다.

월가를 대표하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이에 대해 “인버전은 값싼 물건을 사기 위해 월마트에 가는 것과 같다”며 “기업들도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헤지펀드들도 인버전 기업에 수십억달러를 베팅하고 있다. 인수합병(M&A) 성공시 세제혜택으로 기업 실적과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는 점을 활용한 투자전략이다.

공화당 상원 장악 여부가 관건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월스트리트가 중간선거를 통해 노리는 최대 목표는 민주당의 상원 장악이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강력한 금융규제안을 담은 ‘도드-프랭크법’ 제정 작업을 주도한 리처드 셀비 민주당 의원(앨라배마) 등 강경론자가 미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지적했다. 셀비 의원 외에도 월스트리트를 공공연히 비판하며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 기준을 대폭 강화한 셰럿 브라운 의원(오하이오)도 민주당의 ‘반(反)월가 정서’를 대변하는 거물들이다.

월스트리트는 이들을 대신해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에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는 마이크 크라포 공화당 상원의원(아이다호)이 위원장에 당선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총 100석의 상원 중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1석이라도 많이 차지해 다수당 지위를 확보할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판세로는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기 위해 필요한 의석은 6석이다. CBS와 NYT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될 확률은 60%로 지난번 조사(54%)보다 소폭 올랐다. 문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박빙의 접전을 펼치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

미시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은 최근 공화당 우세지역으로 돌아선 반면 콜로라도, 알래스카 등은 민주당 후보가 앞서고 있다. NYT는 이들 지역 외에 아칸소, 아이오와, 켄터키, 루이지애나 등을 포함, 모두 9곳이 최대 접전지역이라고 분석한 뒤 공화당이 상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이 중 5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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