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기내 난동 23건 달해
엄정 대응 '엄포'도 안먹혀
항공사 "안전 위협…강력 제재"
[ 이태명 기자 ] 지난달 13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A항공사 기내에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한 남성이 음료수 병에 몰래 가져온 술을 마시면서 옆자리 여성을 추행한 것. 이 남성은 이를 말리던 여승무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상처를 입은 여승무원은 20일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난해 4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른바 ‘라면상무’ 소동 이후에도 항공기 내 폭언·폭력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 항공업체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기내 폭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인계된 기내 난동 사건은 대한항공 18건, 아시아나항공 3건 등 21건에 달했다. 제주항공에서도 2건의 기내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기내 난동은 과도한 음주에서 비롯했다. 지난 3월 인천에서 호주 시드니로 가는 여객기에선 한 승객이 술을 마신 뒤 승무원들에게 ‘호텔에서 술 한잔 더 하자’고 수작을 걸었다. 이 승객은 그만두라고 말리던 다른 승무원을 폭행해 현지 경찰에 넘겨졌다. 같은 달 한 여객기에선 술에 취해 좌석 밑에서 자던 승객이 ‘제자리에 앉아달라’는 승무원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턱과 얼굴을 때렸다.
4월에는 푸껫행 여객기에서 한 남성이 면세점에서 구입한 보드카를 마신 채 승무원을 성희롱하는 사건도 있었다. 7월에는 기내식을 먹으며 위스키를 계속 요구하던 승객이 ‘그만 드시라’고 만류하던 승무원을 발로 차 상해를 입혔다.
현행 항공안전법은 기내에서 폭행·협박 등 난동을 부린 승객에 대해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작년 P기업 임원이 라면이 덜 익었다고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이른바 ‘라면상무’ 소동 이후 기내 폭력에 대해 항공사마다 엄중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기내 난동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항공사들의 얘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술 취해서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읍소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기내 난동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회사 이미지에도 좋지 않아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항공사들은 기내 난동을 없애려면 사법부의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에선 술을 더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승무원 팔을 때린 승객에게 징역 30일을 선고하고, 영국에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승객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며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기내 난동에 대해선 현장에서 즉각적이고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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