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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칼럼] 때는 2012년 9월, 미국 대통령선거의 민주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던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롯시의 타임워너케이블 경기장. 여러 명의 연사들이 단상에 올라,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현직 대통령이자 재선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고 있었다. 정강정책들 중 에너지 분야를 다루기 위한 연사가 연단에 올랐을 때,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그나마 그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해를 하는 소수에 불과 하였지만 말이다) 연사는 바로, 전세계에서 운용자산 기준으로 아홉 번째로 큰 헤지펀드인 파랄론(Farallon)의 창설자이자 회장인 톰 스테이어(Tom Steyer)이었던 것이다. 개인재산만 한화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전설적인 헤지펀드업계의 대가(大家)가 어찌하여 (부자들의 정당인) 공화당이 아니라 (그나마 좀 더 서민친화적인 정당인)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황당하게도 (금융 주제가 아닌) 에너지 주제의 연설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1957년생 닭띠로, 올해 서양나이로 57세가 되는 톰 스테이어가 누군지 알아야 그가 2012년 9월에 민주당 전당대회에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시계추를 앞으로 돌려서 1989년 가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가보도록 하자. 전편 5화에서 언급된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CIO인 데이빗 스웬슨(David Swensen)이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예일대학교 졸업생이 한다는 작은 헤지펀드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가 만나는 회사는 파랄론(Farallon)이라는 명칭의, 회사가 창립되고 채3년이 되지 않은 신생 헤지펀드였다. (파랄론이란 이름은,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의 이름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IO인 톰 스테이어는, 예일대학교 학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였고, 재학 중에 예일대학교 축구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활동적인 유태인 청년이었다. 스테이어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월가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M&A부서에서 1979년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몇 년 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은 후에는 1983년부터 3년간, (뒷날 골드만삭스의 CEO 및 연방 재무장관으로 차례로 일하게 되는) 로버트 루빈이 지휘하던 골드만삭스의 합병재정거래부서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다. 스테이어는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큰 회사에서 잡다한 통제를 받으며 일을 하는 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개척해 보고자 하는 창업정신이 보다 투철한 유형이었다. 루빈 밑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되자, 가차없이 뉴욕의 루빈 슬하를 떠나서 1986년 초,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지가 준 seed money 1천5백만 달러를 가지고,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졸업 동기인 친구 한 명과 헤지펀드 파랄론을 공동창업 하였다.
파랄론 초기 스테이어의 투자전략은, 골드만삭스의 루빈에게서 배운 그대로였다. 그가 집착하던 투자방식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둘 다 상장사인 A사가 B사를 인수하겠다고 공개매수를 선언한다. 공개매수 선언 당시 B사의 주가는 30달러였고, 공개매수 가격은 40달러로 책정되었다. 선언과 동시에, 양사의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B사의 주식이 곧바로 40달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인수합병이 최종적으로 완결될 지에 대해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개매수 선언 후 B사 주가의 가격이 37달러에 머물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스테이어는 선택을 해야 한다. B사 주식을 주당 37달러에 사서, 공개매수 성공시에 주당 3달러를 먹을 수도 있으나, 만일 어떤 변수에 의해 이 공개매수가 실패하면, 주당 37달러에 인수한 스테이어는 주당 7달러의 손해를 보게 된다. 결국 이 투자가 성공하려면, 수십 가지 측면에서 이 인수합병이 예정된 시한 안에 종료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도의 분석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 B사 주주들의 동향에 대한 분석, 반독점법 위반이 아닌지에 대한 감독당국의 결정에 대한 예상, 혹시 공개매수 한참 진행 중에, 더 높은 가격으로 인수하겠다는 제3의 투자자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분석 등등) 스테이어는 그러한 “고도의 분석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이어는, 뒷날 “사건중심(Event-Driven)전략”이라고 명명하게 된(스테이어가 이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새로운 전략을 창설하였다. 이 전략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가격을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떤 사건, 즉 갑자기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시장에 정착되어 있던 견해가 삽시간에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타깃으로 움직이는 전략이다. 공개매수가 걸리기 전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일단 공개매수가 걸려버리면, 모든 과거의 계산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합병 프리미엄의 규모, 프리미엄이 실현될 때까지의 소요기간, 적용할 할인율 등을 판단해야 한다. 합병과 유사하게 파산 사건이 발생해도, 과거의 기업 채권가치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뒤집힌다. 투자자의 과제는, 각 부실채권이 향후 창출할 것으로 예측되는 현금흐름을 새롭게 다시 분석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고, 스테이어의 이 고도의 분석능력을 데이빗 스웬슨이란 걸출한 LP투자가가 바로 알아 본 것이다. 뒷날 스웬슨은, 그의 투자전략을 들어보고는, 완전히 자기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음을 술회한다. 스웬슨은 면담을 마치고는 바로 예일대의 자금 3억 달러를 파랄론에 투자하게 된다. 이 투자를 받기 전까지 AUM이 겨우 1억5천만 달러 수준이었던 파랄론은 이제 AUM 4억5천만 달러를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스웬슨 같은 연기금투자가가 파랄론의 투자방식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Event-driven헤지펀드들은 일단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을 뿐 아니라, 의구심을 품은 연기금의 감독자들에게 보고하면서 까다로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연기금의 투자 실무자들 관점에서는 대단히 고맙게도, 그렇게 발생한 수익률의 이유를 해석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였다. 튜더 존스와 같은 류의 글로벌매크로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수익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콘트라티에프 파동”이나 “추세 돌파선”을 이야기할 것인데, 일반적인 연기금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본다면 이런 말들은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파랄론 같은 유형의 펀드들은 의문스러운 내용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복잡한 법규정을 해석하였고, 특정한 합병이 성사될 확률을 계산하였고, 특정한 후순위채권이 회사정리절차 진행 중에 특정법원, 특정판사에 의해 어떻게 취급될 것인지를 연구하였다. 이런 내용은 보통의 사람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가능하고, 설명이 가능한 법이다. 여기에 더하여, 연기금 투자가들은, 파랄론 같은 유형의 전략을 쓰는 펀드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다른 투자가들의 발이 묶여 있을 때에도 그들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기업이 파산하면 그 채권을 매도해야 하는 내부 투자지침을 보통 가지고 있으므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할인된 가격에 파랄론 및 그 전략의 모방자들에게 채권을 넘겨야 했다.
사실 스테이어가 초기에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그가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3억 달러를 받을 마침 그 시점에 발생한, 투자은행 드랙셀버넘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의 파산사건 때문이었다. 소위 말하는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시장을 만들어서 거의 10년 이상을 그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드렉셀이, 그만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의 투자가 오도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드렉셀이 파산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거대한 규모의 투기등급 채권이 시장에 떨이로 나왔으며, 스테이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러당 겨우 몇 센트 수준으로 이들 채권을 마구 사들인 것이다. 1993년까지 이 때 사들인 채권을 되팔면서 기록적인 연35%의 수익률을 달성하였고, 그 때문에 예일대학교 연기금의 3억달러는 불과 3년만에 6억달러로 돌아 온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 하나는, 파랄론이 레버리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파랄론 초기에는, 레버리지 안 쓰는 부분에 대해 동종업계 경쟁사들이 다들 정신 나간 짓이라고 비웃었으나, 1998년의 그 유명한 LTCM헤지펀드의 파산이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파랄론의 선견지명이 돋보이게 되었다. 이후 이벤트-드리븐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들에게는,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가급적 적게 쓰는 것이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어 버리게 된다. 1990년1월부터 1997년6월까지 총 78개월 동안, 파랄론은 단 한 달도 손실이 난 적이 없었으며, 그 결과 위험조정수익률인 샤프비율(Sharpe Ratio)이 주식시장 전반의 샤프비율보다 무려 3.5배나 높아서, 미국의 대다수 연기금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파랄론의 성공은, 이러한 미국 내 NPL투자에만 있지 않다. 이미 199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파랄론은 실질적으로 자기 펀드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 국경을 벗어나서 운용하고 있었고, 그 전설적인 대박 케이스 하나가 바로 2002년 3월의 인도네시아의 BCA은행 인수 건이다.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건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조차, 바이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Private Equity펀드가 아닌, 헤지펀드인 파랄론이 인도네시아의 은행을 인수했다고 하면 아연실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파랄론이 인도네시아 최대은행이었던 BCA(Bank Central Asia)의 매각전에 응찰하였던 2001년 11월의 시점이 중요하다. 수하르토 30년 철권통치가 막 끝난 상태였고, 동티모르 사건 등으로 해서 인도네시아의 이미지는 먹칠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다, 2001년의 그 불행한 9.11사태의 테러범들의 근거지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의 강경파 무슬림 지역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의 외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시절이었다. 수하르토의 정치적인 동지였던 림샤오룽이란 화교재벌이 소유했던 이 BCA는, 당시 수하트로 정권 축출 후 거대부실발생으로 국유화 되어 있었는데, 1천만명의 고객과 880개의 전국적인 지점망을 가진 명실공히 인도네시아 최대 부실은행이었다. 응찰에 나선 파랄론은 5억3천1백만 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스탠다드챠타드은행그룹을 제치고 낙찰 받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파랄론이란 이름 자체가 인도네시아에서는 너무나 생소한 나머지, 실제로 파랄론의 배후에 미국 CIA가 있다는 등 각종 루머가 양산되기도 하였으나, 이 투자는, 오직 이벤트-드리븐 전략을 쓰는, 그리고 NPL에 대해서는 세계 최정상급의 분석역량을 가진 헤지펀드만이 할 수 있는 투자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조세회피지역인 모리셔스에 법적주소를 둔 Farindo Investment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서 응찰했던 파랄론이 이 돈을 가지고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기 전년도인 2001년도에 인도네시아에 들어온 총 달러 투자 자금이 겨우 2억8천만달러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에 10억달러, 2003년에 40억달러가 들어오는 등, 파랄론 투자 이후에 시장이 급속도로 인도네시아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아시아 통화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31일에 한국에 와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손을 맞잡고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던 조지 소로스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파랄론이 BCA를 철저하게 뜯어고치고 제대로 된 은행으로 탈바꿈시킨 후인 2006년, 파랄론은 처음 산 가격 대비 무려 550%라는 대박을 터뜨리고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그러나, 외환은행을 팔고 떠난 론스타가 한국에서 두고두고 비난 받는 데 반하여,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재 그 누구도 파랄론을 욕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20002년의 파랄론의 투자는 인도네시아에는 “축복(blessing)”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 정서라는데, 그렇다면 이는 이벤트-드리븐 전략의 승리라고 해야 하지 않을지?
톰 스테이어는 1986년에 단돈 1천5백만 달러,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이 펀드를, 2012년 말 현재 단일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펀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직원 200명, 총 운용자산 215억달러, 한화 약 22조원의 대형 펀드로 키워놓고 사장직을 후계자인 영국인 앤드루 스포크스(Andrew Spokes)에게 넘기고 후선으로 은퇴한다. 그리고 나서는, 정치에 입문하여 현재 각종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바로 인근의 배후도시인 오클랜드의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하여,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은행이 하고 있는 업무와 유사한 성격의 소액대출 서비스를 하기 위한 지역개발은행(community development bank)까지 개인 돈으로 창설하여 운용하고 있다. (One Pacific Coast Bank라고 명명) 물론, 그러한 정치적 활동의 근저에는, 한화로 2조2천억에 달한다는 그의 개인재산이 든든한 뒷받침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유태인답게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자로, 앞에서 설명한 에너지 장관으로 발탁되지는 못하였으나 대신 나이가 80이 넘은 미 연방상원의 최고령 여성 의원인 캘리포니아 출신 다이앤 파인스타인(Diane Feinstein)이 은퇴할 경우, 그 상원의석을 노리고 뛰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는 물론 각종 자선 기부로 지금까지 이미 6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6천억원이 넘는 거금을 쾌척하였다. 돈을 버는 방식이나, 돈을 쓰는 방식이나 모두, 잘난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 편에서는, 로버트 루빈의 슬하에서 성장하여 지금은 각자 자기의 일가를 이룬, 이벤트-드리븐 헤지펀드 업계의 독수리 오형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
[약력]
- 1969년생. 연세대학교 법학과 및 동 대학원 법학석사 취득. 성균관대학교 법학박사 과정 수료.
- JP모건, BNP파리바, HSBC 등 글로벌IB에서 근무하였고, KDB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부장, 삼성증권 IB본부 이사를 거쳐 현재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으로 재직 중.
- 저서 및 역서로 "KKR스토리", "풀스골드", "헤지펀드열전", "헤지펀드의 진실; 펀드메니저의 고백", "사모펀드의 제왕", "포스너가 본 신자본주의의 위기"등 다수. 한국경제신문 등에 정기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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