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장님은 '作名王'

입력 2014-08-08 20:49  

인사이드 스토리


[ 강진규 기자 ]
‘입친구’. 농심이 지난 4월 내놓은 새 감자 스낵의 이름이다. 외래어가 적당히 섞인 세련된 제품명이 주를 이루는 과자 시장 트렌드와 맞지 않을뿐더러 촌스럽다는 평까지 듣는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신춘호 농심 회장(82)이다.

감자 스낵인 만큼 ‘포테이토’ 등을 브랜드에 넣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신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새우깡이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노랫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에 착안했다. 입이 심심할 때 항상 곁에서 찾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자는 뜻으로 입친구로 지었다.

기업체 오너 경영인 중에는 제품명이나 광고 문구 등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작명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오너 작명왕’ 중 한 사람인 농심 신 회장은 창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제품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막내딸이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부인인 윤경씨가 네 살 때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새우깡’ 이름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지은 제품명은 수사적 기교를 배제하고 제품의 핵심 특징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辛)라면’은 ‘매운 라면’이라는 제품 콘셉트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름이다. ‘안성탕면’은 ‘안성공장에서 만드는 안성맞춤 라면’이라는 의미다. 2005년 나왔던 감자칩 ‘자연지향 땅칩’은 제품 이름에서부터 신선한 생감자를 재료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항암 효과가 있다는 강글리오시드 성분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커피 제품명을 ‘강글리오’로 지었을 정도다.

농심 마케팅팀의 한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이 다른 것을 추천해도 결국엔 신 회장이 만든 이름으로 결정하게 된다”며 “제품명이 최신 트렌드와 동떨어져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히트상품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 회장(59)은 ‘사람이 미래다’를 주제로 한 그룹 광고 시리즈의 문구를 직접 쓴 것으로 유명하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질 점도 많다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등의 카피는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박 회장은 이 광고 시리즈로 2012년 한국광고PR실학회가 주관한 ‘한국의 광고PR인’ 시상식에서 ‘올해의 카피라이터상’을 받았다. 그의 장남인 박서원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도 국내 광고인으로는 처음으로 2년 연속 세계 메이저 광고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어 부자간에 ‘광고인 DNA’를 입증하고 있다.

제약업계에도 ‘작명가 회장님’들이 많다.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87)은 2005년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연인의, 결혼의’라는 뜻의 라틴어인 ‘자이지우스(zygius)’와 ‘해결사’라는 뜻의 ‘데노도(denodo)’를 결합한 이름이지만 ‘잘 되나’ ‘자 이제 되나’ 등을 연상시켜 히트했다. 강 회장은 이전에도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에서 봤던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Bacchus) 동상을 보고 드링크제 ‘박카스’의 이름을 짓는 등 제품명 개발에 적극 관여해왔다.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80)은 간장약 ‘우루사’와 소화제 ‘베아제’ 등의 이름을 지었다. 남종현 그래미 회장(70)이 작명한 ‘여명808’은 808번의 실험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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