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훈 이사장·선승훈 원장·선경훈 치과병원장
독일병원 근무때 산재 못받는 파독광부 위해 항의하고
대전병원서 돈 없어 밤에 도망간 환자에게 쌀 갖다주라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환자 보호자에게 병원 일자리 내주신 분
"모든 이에게 언제나 제약없이 최선의 진료 제공하라"하셨죠
[ 김낙훈 / 이준혁 / 조미현 기자 ]
‘우리를 찾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한다.’
대전 선병원 설립자인 선호영 원장(1925~2004·정형외과 의학박사)의 흉상 밑에 적혀 있는 글귀다. 선친의 이런 뜻을 이어받아 대전 선병원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다섯 형제 가운데 둘째, 셋째, 넷째인 선두훈 이사장(57·코렌텍 대표)과 선승훈 의료원장(55·스웨덴 명예영사), 선경훈 치과병원장(51·루마니아 명예영사)이다.
서울에 사는 선 이사장은 매일 오전 4시반에 일어나 KTX를 타고 오전 6시쯤 대전 선병원에 도착한다. 선승훈 원장은 “형님은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빠짐없이 병원을 순회하고 아직도 수술을 직접 한다”고 말했다. 선 이사장은 미국 정형외과학회로부터 인공관절 부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오토 오프랑상’을 받을 만큼 의술을 인정받고 있다. 선 이사장은 코렌텍이라는 인공관절 제조업체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정형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임상 경험을 살려 인공 고관절을 국산화해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선승훈 원장은 의사가 아닌 기업 경영인이다. 미국 버클리대(경제학)를 거쳐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선친의 부름을 받아 씨티은행 자금부장을 그만두고 병원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요즘 선병원을 ‘친절한 병원’을 넘어 ‘진료의 질이 최고인 병원’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선경훈 원장은 “형(선승훈)은 어떤 때는 인천공항에서 짐도 풀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날 정도”라고 거들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선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2011년 870여명에서 지난해에는 3300명으로 3.8배로 늘었다.
선경훈 원장은 중부권에서 가장 큰 치과의료용 의자 100석(席) 규모의 선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역시 미국에서 치과의사 생활을 하다 선친의 부름을 받고 왔다. 요즘은 ‘디지털치과병원’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치아 치료를 하다 보면 본을 뜨고 씌우는 데 며칠에서 몇 주 정도 걸리기 일쑤인데 일부 치료는 1시간 이내에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가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은 당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넉넉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 이사장은 “어릴 적 서울 노량진 산 중턱에 살았는데 15평쯤 되는 국민후생주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선승훈 원장이 맞장구쳤다. “길이 가팔라 여러 번 넘어진 기억이 있어요.”
선친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의대에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났다. 선승훈 원장은 “아버지가 독일 유학을 마친 뒤 잠시 독일 보훔병원에서 일했는데 그때 부상한 한국인 광부들의 산재 등급이 낮아 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산재 담당 의사에게 ‘한국 사람은 사람이 아니냐’며 항의해 혜택을 받게 해주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파독 광부 출신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삼형제는 자랄 때 한창 티격태격할 수 있는 터울이다. 선두훈 이사장이 1957년생, 선승훈 원장이 1959년생, 선경훈 원장은 1963년생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도 심하게 다툰 기억이 없다”고 했다. 선경훈 원장은 “형들이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각자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게 집안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선승훈 원장도 “아버지가 저를 부를 때도 ‘승훈아!’ 하는 엄격한 투가 아니라 부드러운 음성으로 ‘승훈~~.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게 어떠니’ 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다”고 기억했다.
선친은 귀국 후 적십자병원 대전분원장을 맡았다. 국립병원 분원장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1966년 대전에서 정형외과를 개업했다. 이들 삼형제가 모두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선승훈 원장은 “당시는 어려웠던 시절이라 환자 중에는 입원비가 없어 야간에 도망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수금 담당 직원(당시 병원에 수금 담당이 있어서 퇴원 후 가정을 방문해 입원비를 받아가기도 했다)에게 집안 형편을 살피도록 한 뒤 쌀 반 가마니를 사다 주라고 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런 아버지의 성품을 이어받았는지 형님(선두훈 이사장)은 어려운 친구를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환자 보호자가 직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병원 내 적당한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 보라”고 인사과 직원에게 지시한 적도 있다.
“음악은 우리 형제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끈…악기 하나씩은 다 배워
학벌 좋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곁에 오래 남는 의사가 우리들이 찾는 명의”
병원 개업 후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선친은 아들들에게 악기 한 가지씩을 반드시 배우도록 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시킨 것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독일 유학 중 모임에 가면 의대생이건 의사건 누구나 악기를 들고 모차르트나 베토벤 음악을 합주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는 것이다. 선두훈 이사장은 바이올린, 선승훈 원장은 피아노, 선경훈 원장은 첼로를 배웠다. 지금은 바빠 함께 자리할 시간이 없지만 음악에 대한 관심만은 누구 못지 않다.
유성에 있는 선병원 국제검진센터 로비 중앙에 그랜드피아노가 있고 종종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것이나 병원 설립 기념일이 있는 7월에 해마다 대규모 음악회를 여는 것도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형제간 우애도 하모니가 필요한 음악 합주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들 집안은 예술가적 기질도 있다. 삼형제의 모친인 김인 여사(82)는 동양화가다. 작년에 별세한 이두식 화가(전 홍익대 미대 학장)는 사촌이다.
삼형제는 선병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명의’를 모시는 데 열성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명의는 학벌이 좋은 의사가 아니다. ‘환자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의사’ ‘자신이 필요한 환자에게 휴대폰 번호까지 알려주는 의사’ ‘한밤중에라도 달려오는 의사’를 말한다. 실력은 기본이다.
둘째, ‘환자는 치료 대상이 아닌, 인격체로 존중하며 사랑으로 대한다’는 자세다. 이를 진료 가이드라인에 명기해 놓고 있다. 한 마디로 압축한 게 바로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든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원훈이다. 비록 돈이 없어도, 일요일 새벽 2시에 찾아와도 정성껏 진료한다는 마음가짐이 여기에 녹아 있다.
셋째, 확실한 팀 플레이다. 선병원은 의사 간호사 지원팀 등 조직 자체가 방대한 데다 대당 수십억원짜리 암치료 장비 등 첨단 설비에 끝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삼형제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이해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선두훈 이사장은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무슨 일이든 끈기있게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며 “이런 끈기의 바탕 위에 ‘배려’ ‘열정’ ‘절제’의 미덕이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 청춘들에게 한마디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끈기가 있는 사람이 성공
이런 바탕에 배려·열정·절제의 미덕 있으면 금상첨화
■ 삼형제 프로필
둘째-선두훈 선병원 이사장
1957년생 1982년 가톨릭대 의과대 졸업 1982년 강남성모병원 정형외과 수련의 1991년 가톨릭대 정형외과학 석사 1994년 가톨릭대 정형외과학 박사 1995년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 교환교수 1997년 가톨릭대 정형외과 부교수 2000년 영훈의료재단 선병원 이사장(현) 2004년 코렌텍 대표(현) 2010년 美 고관절학회 최고 논문상(오토 오프랑상)
셋째-선승훈 선병원 의료원장
1959년생 1984년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조지타운대 경영학석사 1987년 씨티은행 입행(자금부장 역임) 1993년 선병원 의료원장(현) 1995년 미국 미네소타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 수료 1999년 인제대 병원경영학 박사 2000년 스웨덴 명예영사(현)
넷째-선경훈 선치과병원장
1963년생 1988년 미국 세인트존스대 화학과 졸업 199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치과대학 졸업 1996년 미국 뉴욕대 인공치아 이식 및 보철 전공 1997년 선치과병원장(현) 2008년 연세대 치과대학원 석사 2011년 연세대 치과대학원 박사 2012년 대한통합치과학회 이사(현) 2013년 루마니아 명예영사(현)
대전=김낙훈/이준혁/조미현 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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