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음식은 무엇보다 ‘뻘’ 맛이다. 남도의 바다에는 갯벌이 있는데 뻘 1㎝가 쌓이려면 200년이 걸린다. 수만 년 쌓인 뻘밭에서 배어나는 남도의 맛이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남도 음식에는 흔히 ‘개미’가 있다고 하는데 개미는 깊이 숙성된 맛을 뜻한다.
영혼을 만드는 원료, 남도의 맛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조르바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했다. 먹고 마시면서 대화는 생기를 더해 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 있다”고 갈파했다. 원래 깊이 사랑하면 먹거나 먹히는 것이다. 그래야 네 살과 피가 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내 피와 살이 네 살과 피가 된다. 그렇게 사랑은 먹고 먹힘으로써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 목숨 죽어야 한 목숨 태어나는 생애의 들판. 너른 곡창지대와 갯벌로 인해 남도의 맛은 오랜 세월 숙성됐다.
새로운 남도 맛의 본향, 통영
요즈음 새로운 남도 맛의 본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 경남 통영이다. 남도란 경기 이남 지역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남도 음식’ 하면 전라도 음식으로 통용됐다. 경상도 음식은 맛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 때문에 통영의 맛도 별반 주목받지 못했다.
통영이 남도 음식의 대표주자로 새삼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필자가 《통영은 맛있다》란 책을 낸 뒤부터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통영 음식에 대해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그들도 통영에 와서 제대로 된 음식들을 먹어보고 간 뒤에는 적극적인 동조자가 된다. 목포나 광주에서 온 이들도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경상도인 통영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뭘까? 경상도 땅에 있지만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영의 역사는 1604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새로 건설되면서 시작됐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도의 수군들이 모여서 통제영을 구성했고, 12공방에서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8도의 장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곧이어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몰려들어 민가를 형성했다. 통영은 출발부터 전국적이었던 것이다. 통영은 경상 감사가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사가 다스리는 특별자치 구역이었다.
육로보다 수로 교통이 더 편리했던 당시에 통영은 뱃길을 통해 전국 각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그것이 300년을 이어졌다. 통영이 경상도가 아니라는 근거다. 통영 음식 또한 전라, 충청, 경상 3도는 물론 전국의 맛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맛으로 탄생했다.
통영은 또한 서남해안의 모든 해산물이 모이는 집산지다. 통영 음식이 맛있는 이유다. 통영은 늘 제철 해산물 요리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풍요의 땅이다. 제철 해산물 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통영의 대표적 음식문화는 ‘다찌’다. 다찌 집에서는 언제든 제철 생선회와 10여 가지가 넘는 해산물 요리를 한상에서 맛볼 수 있다. 다찌 집에 대해서는 호불호(好不好)가 갈리지만 현지 주민들이 가는 곳을 물어 가면 실패가 없다. 여름 통영에서는 갯장어(하모) 회와 통영 해녀들이 잡아오는 성게도 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