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카카오 이어 네이버도 모바일 결제…'핀테크' 빅뱅

입력 2014-08-22 17:42   수정 2014-08-25 11:50

◆‘핀테크 혁명’과 금융 빅뱅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전통적인 금융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선 카카오톡이 조만간 모바일 송금과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2020년 모바일 결제가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완전 대체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IT와 금융이 결합한 ‘핀테크(Fintech)’는 IT는 물론 금융산업의 미래를 바꿀 전망이다.

- 8월 12일 한국경제신문

☞ 스마트폰을 이용해 단돈 1만원이라도 이체하려면 현재는 총 6단계를 거쳐야 한다. 신분을 입증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하고 비밀번호와 보안코드 등도 입력해야 한다. 입력 숫자만 최대 40여개다. 고객 예금 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런 불편은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IT와 금융을 결합한 이른바 ‘핀테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덕분이다.

‘카톡 뱅크’의 탄생

카카오톡은 이르면 다음달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를 시작한다. 카톡에서 돈을 받을 상대방을 선택한 뒤 액수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송금이 끝난다. ‘뱅크월렛 카카오’는 카카오톡이 국민, 우리 등 14개 은행과 함께 가상의 지갑을 만들어 카톡 이용자끼리 돈을 주고받도록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뱅크월렛 카카오’ 앱을 이용해 지인에게 돈을 송금하려 한다면 먼저 가입 시 연결된 본인의 은행계좌에서 ‘뱅크월렛 카카오(일종의 가상 지갑)’로 돈을 충전해 놔야 한다. 최대 충전 금액은 50만원이다. 그러면 이 앱에 저장된 돈을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송금할 수 있다. 카톡 친구 리스트에 있는 사람에게 하루 최대 50만원까지, 1인당 10만원까지 송금할 수 있다. 뱅크월렛 카카오로 받은 돈은 별도 계좌로 입금되고 직접 물건 구입도 가능하다. 수수료는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보다 훨씬 싼 건당 100원 정도로 예상된다.

네이버 라인도 이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두 회사의 국내 회원수를 합치면 약 7000만명. 은행으로선 송금과 지급결제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이들 모바일 메신저에 뺏길 가능성이 작지 않다. 더구나 IT업체들이 모바일 자금이체나 결제에 이어 몇몇 국가에서 이미 시작된 모바일 대출과 자산관리 시장까지 진출할 경우 은행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당장 카카오는 은행에 이어 신한, KB, 하나SK 등 국내 9개 신용카드사와 제휴, 기존 신용카드를 사용해 간편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오는 9월부터 제공할 예정이다. “은행의 최대 경쟁자는 카톡이나 네이버 같은 IT업체”, “은행업의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핀테크 혁명…앞서 뛰는 해외 업체

이런 금융산업의 변화를 단적으로 표현한 용어가 바로 ‘핀테크’다. 핀테크(Fintech)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로 모바일 결제, 송금, 개인자산관리, 크라우드 펀딩 등 금융 서비스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한다. IT의 발전, 특히 모바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본격 등장한 핀테크는 보다 편리하고 빠른 금융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핀테크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일부 국가와 IT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핀테크에 대한 글로벌 투자 규모는 최근 5년 새 3배 이상 성장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에 따르면 핀테크 벤처기업에 대한 해외 투자금액은 2008년 9억2000만달러에서 2013년 29억7000만달러로 늘었다. 특히 세계의 금융허브인 영국 런던은 핀테크의 중심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에선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이미 ‘알리페이(Alipay)’를 서비스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온라인 지갑에 미리 돈을 충전한 뒤 결제하는 선불 전자결제 서비스로 ‘뱅크월렛 카카오’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사용자가 8억명에 달한다. 한국처럼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고 결제할 때마다 결제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택시를 타거나 커피점을 이용할 때 현금이나 카드를 낼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에 담긴 알리페이 앱을 열어 결제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알리바바는 한 해 430만명이 넘는 국내 중국인 관광객의 지급결제 시장을 잡기 위해 한국 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이미 대한항공 등 국내 400여개사가 알리페이 결제를 도입했다.

미국 기업들도 발빠르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는 페이팔(Paypal) 서비스로 세계 1억4800만명의 가입자와 세계 온라인 쇼핑 결제액의 1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온라인 지급결제 서비스업체로 성장했다. 구글의 경우 메일 계정만 개설하면 가상결제 시스템인 ‘구글지갑’을 이용할 수 있다. 구글지갑은 이용자가 등록한 카드 또는 은행계좌와 연결돼 이메일 주소만으로 송금하도록 했다. 페이스북은 ‘구매 버튼’을 시험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애플도 오는 9월 ‘아이폰6’에 대금 결제가 가능한 전자지갑(iWallet)을 도입할 예정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금융은 이제 웨어러블 기기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힐 퍼거슨 페이팔 최고상품책임자(CPO)는 “웨어러블 기기의 핵심 콘텐츠는 헬스케어나 피트니스가 아닌 모바일 결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모바일 결제시장 진출

이처럼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은행, 신용카드사 등 전통적인 금융회사들도 앞다퉈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의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는 ‘클리어익스체인지(ClearXchange)’라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페이팔처럼 개인정보 입력 없이 이메일 주소나 휴대폰 번호 입력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마스터카드, 비자 등 신용카드 회사들도 모바일 결제 플랫폼을 선보였다.

프랑스의 BNP파리바은행은 지난해 ‘헬로뱅크’라는 모바일 전용은행을 개설, 모든 서비스를 모바일 환경에서 제공해 젊은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계좌번호 대신에 휴대폰 번호나 QR코드를 사용한다. 영국의 HSBC와 퍼스트 다이렉트(First Direct), 네이션와이드(Nationwide) 등의 은행들은 핀테크 기업인 잽(Zapp)과 제휴,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간편하게 모바일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스타벅스의 미국 내 매출에서 모바일 앱 결제 비중은 14%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세계 모바일 결제시장은 올해 3530억달러에서 2016년 617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걸음마 수준…이유는?

흔히들 ‘한국은 IT 강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IT 후진국이다. 핀테크만 해도 훌륭한 모바일 거래 인프라를 갖췄지만 관련 산업 성장은 중국에도 뒤처져 있다. 정부의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때문이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려면 한 번만 클릭하면 결제가 끝난다. 반면 한국은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각종 플러그인(인증 프로그램) 설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 모바일 결제 시장은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커졌지만 내실이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모바일 뱅킹 서비스 사용자는 4032만명(3월 기준)에 달한다. 스마트폰 이용자보다 많다. 그러나 모바일 뱅킹 하루 거래액은 1조6276억원으로 인터넷 뱅킹 거래액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이체나 결제보다는 단순히 예금조회 서비스로 사용하는 비중이 91%에 달한다.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는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이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변화가 더딘 실정”며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면 몰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빅 5’ 업체가 적지 않은 제조업과 달리 은행에선 왜 세계적 은행이 탄생하지 않을까?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주인 없는 은행 체제가 낳은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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