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사] 新산업에 대한 기대가 만든 버블…Fed 개입, 禍만 키웠다

입력 2014-08-22 18:37   수정 2014-08-22 18:40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24) 닷컴 버블

새로운 산업에 대한
미래수요 예측은 매우 어려워
주식 과대평가 경우 많아

버블은 시장 조절 현상일 뿐
중앙은행이 개입한다해도
더 큰 위기의 씨앗만 잉태




닷컴 버블은 인터넷 버블 또는 IT 버블이라고도 한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주로 인터넷 관련기업의 주가가 폭등한 현상을 말한다. 기술 관련 기업의 주가지수를 나타내는 나스닥지수는 이 기간에 5배 넘게 폭등했다. 특히 2000년 3월 지수가 최고점을 찍기 전 6개월 동안 83%나 상승했다.

나스닥지수는 2000년 3월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1년 만에 반 토막이 났고 2년6개월 후에는 최고점의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주가 폭락으로 2004년까지 미국 닷컴기업의 52%가 파산했고 4조달러가 넘는 가치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현재까지도 나스닥지수는 2000년의 최고점에 훨씬 못 미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주가 폭락은 미국의 실물 부문에도 영향을 줘 미국의 실질 국민소득 증가율은 2000년 5%에서 2001년 0.3%, 2002년 2.45%로 하락했고 실업률은 2000년 3.97%에서 2001년 4.74%, 2003년 5.99%로 상승했다.

무엇이 주가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했는가에 대한 논의는 많다. 버블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미국의 생산성 향상이나 신경제의 도래를 들어 주가 상승을 합리화하는 주장이 많았다. 그리고 버블 이후에는 주로 일본의 저금리나 투기적 금융자본, 부적절한 통화정책 등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경제적 요인보다 투자자들의 비합리적 기대라는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주장도 등장했다.

닷컴 버블은 그런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겠지만 신산업의 등장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그 산업의 미래 수익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흔히 주식의 가치는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로 평가한다. 그래서 현재의 주가가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보다 높으면 주식이 과대평가된 것으로 여길 수 있으며 이를 흔히 버블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래 수익을 알 수 없다면 주가의 버블 여부를 알 수 없다. 투자자들이 장밋빛 전망에 기초해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하면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닷컴기업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것을 사전적(事前的) 의미에서 비합리적이라거나 버블이라고 여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보스 패스터·피에트로 베로네시, ‘1990년대 후반 나스닥 버블은 있었나’, 금융경제학저널 81, 2006)

실제 세계적 IT 기업인 구글도 상장 당시에는 수익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높아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금도 페이스북이 상장될 때 그랬듯이 IT 기업에 대한 버블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처럼 새로운 산업이나 사업모형이 등장하면 미래 수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가의 변동이 크게 나타난다.

그래서 잘못된 투자가 광범위하게 행해질 수 있고 이를 수정하는 조정 과정이 나타나 옥석이 가려진다. 구글 주가도 급등락을 거듭했다. 닷컴 버블이 절정이었던 2000년 3월10일 66.87달러에서 2002년 8월6일에는 13.74달러로 하락했지만 그 후 계속 상승해 2013년에는 1000달러를 넘어섰다.

이것은 닷컴기업의 생존율을 이전의 신산업과 비교하면 분명해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그 당시 닷컴기업의 5년 생존율은 50%에 근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브랜트 골드파브 외, ‘닷컴시대 기업의 신규진입이 너무 적었나?’, 금융경제학저널 86, 2007)

이것은 이전의 신산업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닷컴기업의 설립 후 5년간 평균 퇴출비율이 14%인 데 비해 자동차 산업이나 TV 등이 등장한 시기의 퇴출비율은 15%로, 다른 신산업에 비해 지나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버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버블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닷컴 버블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도 1994년부터 주식시장의 버블을 경계하며 투자자의 비이성적 과열을 우려했지만 이를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주택 버블이 진행되는 동안 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는 “주택 버블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버블을 수습하는 과정에 중앙은행이 잘못 개입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버블의 형성과 소멸은 시장이 스스로 잘못된 투자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조급하게 개입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 닷컴 버블 이후 미 Fed는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게 된다. 2000년 6.5%였던 미국 정부채권 금리가 2004년에는 1.6%까지 급격하게 하락한다. 이로 인해 주택 부문에 버블이 형성됐는데 이것이 2008년 금융위기의 씨앗이 된다. 결국 버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수습하는 방식이 잘못됐던 것이다.

경제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등장한다. 이런 기술과 산업에 대한 평가는 소비자나 투자자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이뤄진다. 가격은 이런 평가에 반응해 상승하거나 하락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급격한 가격 상승과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사전에 이런 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이것은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조정 과정에 잘못 개입하면 경제의 변동을 더욱 키우게 된다. 닷컴 버블은 중앙은행의 힘으로 버블 자체를 막을 수 없으며 잘못된 개입이 오히려 더 큰 버블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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