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현우/임근호 기자 ]
소프트웨어(SW)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혁신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영국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오는 9월부터 초·중·고교 필수과목으로 ‘컴퓨터과학(CS)’을 넣는다. 발트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정하고 초·중·고교에서 SW 교육을 해 인재를 길러낸 덕에 빈국(貧國)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핀란드와 미국 등에선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미래 SW 인재 육성을 주도한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은 고교에서 이미 한국 대학의 컴퓨터공학 전공 수준의 교육을 하며 매년 수천명의 SW 전문가를 길러내고 있다.
英 “코딩 못하면 국가미래 없다”
영국 정부는 9월 새 학기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12년 교육과정에 컴퓨터과학을 정규과목으로 넣기로 결정했다. 국가 경쟁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12개 정규 과목 중 하나로 포함되는 컴퓨터과학은 영어 수학 과학 스포츠와 더불어 5개 필수 과목 중 하나로 지정됐다. 컴퓨터 교육이 단순히 코딩 기술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논리적 사고,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데이터 분석 등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길러주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영국의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최소한 하나의 컴퓨터 언어를, 중학교 졸업 때까지는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마이클 고브 영국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코딩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이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SW 교육으로 ‘창업국가’ 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94년부터 정규 고육과정에 SW 과목을 포함시켰다. 고교 과정에선 총 5단계(1단계에 90시간) CS 교육을 실시한다.
1~2단계는 컴퓨터의 기초, 프로그램과 논리 등으로 구성된다. 3단계는 간단한 프로그램 제작 등 실습이며 4~5단계는 데이터 처리, 사이버 보안 등 고급 과정이다. 물리 화학 등 다른 과학 선택과목도 5단계까지 수강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한 학년 10만여명 가운데 절반인 5만명가량이 CS를 3단계까지 배운다. 상위 15%는 5단계까지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에서만 SW를 자유롭게 다루는 인재를 매년 1만명 이상 배출한다는 얘기다.
징병국가인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군대에 간다. 남자는 3년, 여자는 1년10개월 복무한다. 이리스 바거리 이스라엘 교육부 과학교육R&D단장은 “고교에서 CS를 5단계까지 배운 학생은 대부분 8200 같은 ICT 특수부대로 가 배운 것을 실습한다”며 “군 복무 후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창업이나 취업할 수 있는 밑바탕이 CS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국운 걸고 SW 교육
에스토니아는 빈곤 탈출을 위해 SW 인재 육성에 집중한 나라다. 에스토니아 정보보안업체 가드타임의 구스타프 풀라 R&D본부장은 “SW 교육으로 육성한 인재가 정부와 기업이 만든 좋은 ICT 일자리에 들어가 산업을 키우고 다시 교육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학생들은 초·중·고 과정 수학, 과학 등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통합 교육을 필수적으로 받는다. 이와 별도로 고교에선 SW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선택과목 ‘정보학’을 학년당 1만2000여명(약 30%)이 수강한다.
에스토니아는 2015년부터 모든 초등학교 학생에게 컴퓨터 언어를 활용해 SW를 만들도록 하는 ‘코딩 교육’을 하기로 결정했다. 컴퓨터 활용 교육에서 SW 개발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프로게 티게르(proge tiiger·프로그램 호랑이)’로 불리는 이 사업의 핵심 목표는 ‘학생들에게 SW 교육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 수학적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수학·과학+ 코딩’ 추진하는 핀란드
‘앵그리버드’의 나라 핀란드는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SW 교육에 나선 것이 특징이다. ICT 서비스업체 레악토가 직원 자녀들에게 SW를 가르치기 위해 지난해 10월 시작한 프로그램 ‘코디콜루(코딩학교)’는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네다섯 살 아이들의 코딩 수업 장면을 블로그에 올리자 전국의 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빗발치듯 보낸 것이다. 추첨으로 4~8세 어린이 15명을 선발해 지난 1월20일 헬싱키 본사에서 개최한 첫 공식 ‘코디콜루’는 크리스타 키우루 핀란드 교육문화부 장관까지 참관할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다.
레악토는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용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코디콜루를 열 수 있도록 했다. 키우루 장관은 “교육 강국이자 혁신 리더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2016년 개정 교육과정에 통합 교과 형식으로 수학이나 과학에 SW 교육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 "아이들 경쟁력은 컴퓨터 코딩 능력이 좌우"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목표에만 치중하다간 오히려 자녀의 미래를 해칠 수 있어요.”
최근 미국 워싱턴 사무실에서 만난 캐머런 윌슨 코드닷오알지(code.org) 최고운영책임자(COO·사진)는 “앞으로는 컴퓨터 코딩 능력이 아이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좋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는 것만큼이나 코딩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대학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데 당장 필요한 국어 영어 수학만 강조하다보니 코딩 교육이 미국처럼 활성화되긴 어려울 수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윌슨 COO는 “수능 과목에 컴퓨터 코딩을 포함한다든지,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코딩 교육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드닷오알지는 전직 마이크로소프트(MS) 임원이자 엔젤투자자인 하디 파토비와 벤처기업가 알리 파토비 형제가 지난해 세운 비영리단체다. 지난해 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빌 게이츠 MS 창업자 등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컴퓨터 코딩을 가르치자는 ‘아워 오브 코드’ 캠페인을 진행해 2000만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는 “유명인이 대거 캠페인에 동참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실제로 미국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자기 자녀들이 코딩을 모르면 앞으로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깨달음”이었다고 말했다.
윌슨 COO는 “코딩 교육은 아이들을 똑똑하고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학에서 4차 방정식을 푸는 해법은 한 가지밖에 없지만 컴퓨터 코딩은 각자의 독특한 발상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길러주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코딩 교육의 장점을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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