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시장좌파 정서 불식시키고
비용 큰 공기관 대통령이 폐지해야
박기성 <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kpark@sungshin.ac.kr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장장 일곱 시간에 걸쳐 규제개혁에 대해 소위 ‘끝장토론’을 개최했는데 그 후속 회의가 아직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과연 규제개혁이 될 수 있을까. 이런 토론 한 번으로 끝장나는 규제라면 문제가 될 것도 없을 것이다.
중앙 및 지방정부 공무원(의원), 그리고 공기업 직원인 준공무원의 주된 업무는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지침, 지도 등을 통해 규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 구성원에게 유리하거나 조직의 영역을 넓히는 규제를 많이 만들수록 승진에 유리하므로 경쟁적으로 규제를 만들거나 기존의 규제를 더욱 강화한다. 이런 공무원이 버티고 있는 한 규제개혁은 불가능하다. 공무원의 주된 업무가 규제의 제조·유지·강화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 부처를 포함한 각 공공기관을 존치할 경우의 비용과 편익을 추정해 편익보다 비용이 큰 공공기관은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경제 사회 문화적 비용·편익 이외에 정치적 이해득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공공기관을 유지한다. 한 번 설립된 공공기관이 폐지된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문을 닫는 경우에도 다른 기관과 통폐합되는 것이지 그 업무나 기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규제개혁은 이렇듯 태생적으로 끈질긴 (준)공무원과의 싸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개혁 태풍은 되풀이되고, 이들은 납작 엎드려 이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정권이 중후반기로 가면 바람은 잠잠해지고 이들은 그때를 틈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다시금 규제의 제조·유지·강화에 전념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을 그대로 존치하고 규제개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규제개혁은 공공기관의 폐지, 즉 공공부문 축소로만 가능하다. 시카고학파가 규제개혁보다 공공부문 축소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각 공공기관에 대해 비용·편익분석을 해 폐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 장관이나 기관장이 할 수 있을까. 이들이 폐지를 주도하면 피해를 본 해당기관의 (준)공무원이나 노동조합은 평생 그 장관이나 기관장을 괴롭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다른 애국심을 가진 장관이나 기관장만이 공공기관을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애국심에만 맡길 수는 없다. 다행이 한국은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다. 대통령만이 책임지고 공공기관 폐지를 주도하고 그 공과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규제를 암덩어리로 봤다면 자신이 각 공공기관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해 편익보다 비용이 큰 공공기관을 책임지고 폐지해야 한다.
안보로 대표되는 정치체제와 시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체제의 두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정도에 따라 좌(左)와 우(右)로 나눌 수 있다. 정치체제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우며 인민민주주의가 좌다. 경제체제에서는 자유시장경제가 우고 계획경제가 좌다. 경제체제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시장우파’는 국내에서 극히 소수며 대부분의 우파는 정치체제로서의 인민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안보우파’다. 즉, 우리 국민 대부분은 북한에 반대하는 안보우파면서 시장보다는 정부의 온정적 정책에 기대는 ‘시장좌파’다. 규제개혁이 안되고 공공부문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시장좌파적 정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안보우파’면서 동시에 ‘시장우파’고, 공공부문 축소가 시장경제 활성화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박기성 <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kpark@sungsh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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