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에서 나오면 두부 먹어야"…뉴저지 한인타운 한국식당 찾아
[ 이심기 기자 ] 친딸을 방화·살해한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해온 이한탁 씨(79·사진)가 25년 만인 22일(현지시간) 석방됐다.
지난 19일 보석이 승인된 이씨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하우츠데일에 있는 주립교도소에서 해리스버그의 연방법원 중부지방법원으로 옮겨 마틴 칼슨 판사 주재로 열린 보석 심리에서 최종 보석 석방을 허락받았다. 이씨는 1989년 구속 이후 처음 교도소를 벗어났다.
이날 보석 허가 이후 법원 건물을 나온 이씨는 소감문을 낭독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하고 향후 각오를 밝혔다.
그는 “죄도 없는 저를 25년1개월이나 감옥에서 살게 했다. 세상천지 어느 곳을 뒤져봐도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토로한 뒤 “지금까지 도와준 한인 동포, 구명위원회, 변호사 등에게 보답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더욱 알차고 보람되게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이씨는 손경탁 구명위원회 위원장 등과 함께 뉴저지로 이동, 가정을 꾸린 둘째딸 가족과 함께 한인타운에 있는 북창동순두부 식당을 찾았다. “감방에서 나오면 두부부터 먹어야 한다”는 이씨의 말에 선택한 식당이었다. 그는 “25년 동안 얼마나 한국 음식을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음식 모두가 어쩌면 이렇게 맛있냐”며 그릇을 비웠다.
그는 저녁을 먹고 뉴욕 플러싱의 보금자리로 갔다.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름직한 기차길 옆의 작은 아파트였다. 이곳에서 여동생 이한경 씨 등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25년 만에 처음 자유인이 돼 첫 밤을 보낸 이씨는 이튿날 아침식사를 하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산책도 즐겼다. 플러싱의 한 병원에서 기본적인 검진을 했지만 다음주 하루를 택해 정밀검진을 받기로 했다.
1978년 미국으로 이민해 퀸즈에서 의류업을 하던 이씨의 기나긴 감옥살이는 1989년 7월29일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의 한 교회 수양관 화재에서 비롯됐다. 이씨는 우울증을 앓던 딸을 이곳에 맡기려고 했으나 그날 새벽 딸을 앗아간 화재의 방화 용의자로 지목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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