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불꽃 못 잡는 불꽃감지기…시민들은 火 난다

입력 2014-08-30 09:00   수정 2014-09-01 10:03

재정난 시달리는 소방업체

법정관리 신청 5개월새 3곳
제품 품질 보장받기 어려워 인증 못 받는 기업 63%

불량품 만들어도 검증 힘들어

소방산업기술원에서 제품 검사…인력부족으로 전수조사 불가능
검증 후 불량 바꿔치기 유통…사후관리 않는 허점 노려



[ 김태호/오형주 기자 ] 국가 주요시설에 설치된 불량 불꽃감지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1일 경기 성남에 있는 불꽃감지기 제조업체 K사를 압수 수색했다. K사는 주요 국가시설에 불량 불꽃감지기를 설치한 혐의(소방시설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압수 수색 과정에서 이 회사가 생산한 불꽃감지기 531점을 수거했다. 소방방재청이 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수거한 제품 가운데 수출용을 제외한 455개를 검사한 결과 332개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K사가 제조한 불량 불꽃감지기는 숭례문,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는 물론 연세대 김포공항 등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에 하나 이들 시설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경찰은 이 업체를 수사 중이고 소방방재청은 다른 업체 생산 제품에도 이 같은 불량 제품이 있는지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K사는 현재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리한 가격경쟁에서 비롯된 업체의 잘못된 관행과 허술한 장비검사 체계가 빚어낸 예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소방시설 관련 업체 간 무리한 가격경쟁이 불량 소방시설 제품 양산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관련 업체들의 수익성이 나빠진 데다 저가수주 경쟁이 만연하면서 소방 제품의 품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방 제품을 검증하는 소방산업기술원의 허술한 관리체계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소방산업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민간의 경쟁과 더불어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방업체 50%가 자금난

경기 화성에 위치한 소방차 생산업체 A사. 이 회사는 2011년 전체 사업의 20%를 차지했던 옥내소화전 등 소방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제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해당 사업 분야의 영업적자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게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A사는 소방 제품 사업을 접은 뒤 소방차 산업에 집중한 결과 지난해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규모가 있는 A사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세업체들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노인요양병원, 골프장 등에 소방시설 공사를 벌여온 H사는 수주 실적이 줄어 자금난을 겪다 최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4월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한 소방시설 관련 업체는 H사를 포함해 세 곳이나 된다.

소방산업기술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소방업체 중 53%가 영세업체로 분류됐다. 벤처기업 및 ISO 인증을 받은 기업도 극히 드물다. 생산 제품에 대해 어떠한 인증도 받지 않은 업체는 무려 6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업체들의 자금난은 이들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회사가 사업을 접거나 파산한 이후에는 해당 제품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수리받거나 보상받을 방법이 없어 소방안전에도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소방시설업체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서 주로 하도급으로 공사를 따내다 보니 저가수주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국내 대부분 업체가 가격경쟁에 내몰려 품질을 제대로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품검증 체계도 미흡 … 감시 인력 부족

업체가 불량 제품을 생산해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검증 시스템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모든 소방 제품에 대해 소방산업기술원이 검사를 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으로 전수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영세 업체가 원가 절감을 위해 불량 제품 생산에 나서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방용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용품은 출고 이전 제품 검사 과정에서 일부 샘플을 골라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소방산업기술원의 인력부족으로 납품 직전단계에서 충분한 검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불량 불꽃감지기를 생산해 유통한 K사도 소방산업기술원을 속이고 국가 주요시설에 해당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K사는 불꽃감지기에 들어가는 회로기판을 정상적으로 설치해 품질 검사에 통과한 다음 그 후 납품한 제품에는 저가의 불량 회로기판을 바꿔 다는 수법을 동원했다.

과거에도 소화기 분말을 바꿔치기해 소방산업기술원의 눈을 속인 뒤 대량으로 불량 소화기를 유통한 사건이 있었지만, 기술원이 제품의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허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소방방재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부터 사후관리를 위한 수집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후 수집검사 역시 연 1회 정도에 불과해 불량 시설물과 제품을 적발하기 쉽지 않다.

소방방재청은 현재 K사의 사례처럼 소방산업기술원을 속여 검사를 통과한 뒤 시중에 유통된 제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소방산업 투자 시급 … 윤리의식 높여야

전문가들은 소방용품과 시설은 국민 안전과 직결돼 있는 만큼 소방산업에 대한 일정 정도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건설업체 등 발주사가 공사비 절감을 위해 저가의 소방 제품을 요구하고, 생산업체 간 저가경쟁이 격화되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높은 품질의 제품 생산은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저품질의 소방용품이 건설현장에 만연하게 될 경우 작은 화재가 큰 재앙으로 번질 우려가 적지 않다.

민간에만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소방관련 용품과 시설 관리에 적극 개입해 품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격 덤핑 입찰이 만연하면 영세업체는 결국 문을 닫게 되고, 납품한 제품에 대한 사후관리도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국가가 소방산업을 더 지원해 기술력을 높이는 게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소방업체들도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K사는 매출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업체인 점을 감안하면 영세성보다는 윤리 의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소방산업기술원도 필요하다면 인력을 늘려 생산단계에서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호/오형주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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