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는 국회 밖 정치에 멍들어
민생법 통과, 규제혁파 서둘러야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미국 경제가 매우 나쁠 때 유권자의 폐부를 찌르는 슬로건을 내세워 승리한 것이다. 한국에도 이처럼 핵심과 급소를 찌르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한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국민이 보기에는 정작 정치인 자신이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수개월간 한국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이렇게 국민의 고민과 염원을 외면할 수 있을까. 다만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따지고 보면 일본 정치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일본을 닮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왜 이렇게 일본의 잘못된 점만 답습하는지 모르겠다. 정치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데 정말 문제는 경제 상황도 일본과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 저출산 추세가 똑같다. 디플레이션 상황도 그렇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발빠른 추진력이었다. 그게 일본이 따라 할 수 없는 핵심 덕목이었다. 일본의 내각제는 의사결정의 효율 측면에서 훨씬 떨어진다. 일본인의 성품 자체가 치밀하고 신중하며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다 보니 항상 의사결정 속도가 늦는 것이 문제다. 반면 우리는 집행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이제는 속도 있는 집행력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저성장, 저생산성, 디플레의 깊은 구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우리만 모든 이해당사자의 합의를 기다리며 마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며칠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를 보면 제조업 업황BSI는 지난 5월 이후 네 달 연속 하락했다. 기업들은 앞으로의 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내수 부진을 가장 큰 경제 문제로 꼽았다. 우선 내수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도 필수다. 아직은 비중이 미미한 서비스업도 규제를 풀어 육성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오래전 대규모 호텔, 쇼핑몰, 컨벤션센터가 결합된 복합콤플렉스를 건설해 서비스산업 육성에 성공했다. 독일도 자동차 테마파크를 만들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교차상승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모든 면에서 너무 늦다. 고유의 장점은 사라지고 약점만 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민은 행복한 생활을 염원한다. 행복한 생활은 경제 문제가 해결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먹고살 걱정부터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팀이 여러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치인들은 시대착오적인 발목잡기 ‘광장정치’에 매몰돼 있다. 정치인이라면 국회로 들어가는 게 맞다. 국회에서 민생법은 빨리 채택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보완하는 게 정도다. 세금으로 세비(歲費)를 주는 이유는 하나다. 국회 안에서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분석해 입법하라는 것이다. 길거리는 시민들에게 넘겨라. 왜 국회의원들이 거리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가. 정치라는 꽃은 타협의 예술 속에서 만개한다. 기회를 놓치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수많은 국민이 생활고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에서 나온 참사다. 국회는 경제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다. 위기의식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경제 문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국민은 얼마나 그 해법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대한민국 경제호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기 전에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 안전불감증에 빠진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지는 않을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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