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50년] 미싱 돌리던 '구로공단', ICT·로봇 융합제품 쏟아내는 'G밸리'로

입력 2014-09-04 21:09   수정 2014-09-09 21:45

100년 향해 뛴다

입주기업·대학·연구소, 다양한 클러스터 결성…미래 먹거리 개발 나서
문화·편의시설 확충 등 '제2의 변신' 서둘러야



[ 김낙훈 기자 ]
지난 7월 말 서울 구로동 서울디지털단지(G밸리·옛 구로공단)에서는 한 호텔 개관식이 열렸다. 20층 규모에 283개 객실과 컨벤션센터를 갖춘 롯데시티호텔구로다. 국내에 있는 산업단지 안에 들어선 첫 호텔이다.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들만 있던 산업단지가 문화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달 14일 ‘조성 50주년’을 맞는 G밸리는 107개 지식산업센터에 1만1911개사, 16만2032명(작년 말 기준)이 일하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다. 섬유와 완구 피혁 등을 만들던 곳이 정보기술(IT) 게임 소프트웨어 로봇 메커트로닉스 등 첨단업종 기업들이 가득한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클러스터로 변신하는 G밸리

G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대학, 연구소들과 함께 산·학·연 클러스터(집적지)를 만들어 기술융합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콘텐츠, 그린IT, IT융합메디컬 등 4개 미니클러스터에 가입해 활동하는 기업 및 대학, 연구기관은 482개에 이른다. 대학은 서울대, 광운대, 숭실대, 서울과학기술대 등 20여곳이 참여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미니클러스터’에는 정보소프트웨어 보안시스템 등의 기업과 대학 지원기관 등 145개가 모여 기술융합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콘텐츠 미니클러스터’에는 게임, 애니메이션, 영상, 모바일콘텐츠 등의 기업 등 173개, ‘그린IT 미니클러스터’에서는 LED(발광다이오드) 전력 에너지 계측 등 129개 업체가 힘을 합쳐 미래형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7월 출범한 ‘IT융합메디컬 미니클러스터’에도 35개 업체 및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기업들은 융합제품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다. 예컨대 자인테크놀로지는 에이엔티이십일, 신호시스템과 함께 ‘온도 보정기능을 가진 초음파식 가스 유량계’를 개발 중이다. 지멘스 GE 등 세계적인 기업만 생산해온 까다로운 기술 제품이다. 신민철 자인테크놀로지 사장(51)은 “단지 내 기업들과 미니클러스터를 결성해 연내 제품개발을 마치고 내년부터 국내외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핀 등 첨단소재를 개발 중인 김형태 아프로R&D 사장은 “요즘은 기술융합 없이는 신제품 개발이 어렵다”며 “앞으로는 ICT와 메커트로닉스 및 소재 분야의 기술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글로벌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혁신하는 기업들

개별 기업 차원의 ‘새로운 먹거리 찾기’도 분주하다. 지난해 7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은 고광일 고영테크놀로지 사장은 “전자부품 검사장비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반도체 검사장비와 수술용 의료로봇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로봇장비를 만들어 도요타자동차 등에 수출해온 주상완 씨앤엠로보틱스 사장은 “기존의 발상을 뒤집는 생산자동화 장비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새 먹거리 개발에는 20여개 대학의 공대 교수들도 가세하고 있다. 특히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산학협력 형태로 적극 협조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복지·편의 시설 필요

G밸리는 첨단산업 위주로 변했지만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와 복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사람들이 일하고 즐기고 배우는 종합공간으로 만드는 ‘제2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종 산단공 서울본부 구조고도화추진단 센터장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극장과 공연장 등 문화예술 공간과 도서관 등이 속속 들어선다”고 설명했다.

도로 확장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빌딩이 이미 가득 들어선 데다 경부선 지상 철도로 단지가 양분돼 있다. 입주 기업인들은 “경부철도의 지하화가 근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산·학 협력으로 기술을 많이 축적한 독일의 프라운호퍼연구소와 같은 ‘응용기술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는 “중소 ·벤처기업들은 세계 기술과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로드맵을 제시하고 여러 기업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서울디지털단지는

1964년 ‘산업단지조성법’이 제정되고 그해 9월 첫 삽을 뜬 구로공단은 1967년 서울 구로동에 1단지가 준공된 데 이어 인근에 2단지와 3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제 모습을 갖췄다. 국내 산업단지의 효시다.

서울디지털단지로 바꾸는 첨단화 계획을 마련한 때는 1999년이다. 낡은 단층 공장을 허문 자리에 20층 안팎의 현대식 지식산업센터 107개가 들어섰다. 첨단화 계획 직전인 1997년 442개였던 업체 수는 작년 말 1만1911개로 16년간 27배 늘었다. 상장기업 66개사, ‘월드클래스 300’기업 3개사, 벤처기업 1125개사가 입주해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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