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1兆 땅 부잣집 외동아들이 용산 국내 최대 호텔 인허가 왜 15년이나 매달렸냐고요?

입력 2014-09-11 21:22   수정 2014-09-12 17:47

"무·배추도 그냥 파는 것보다 김치 담가야 값 더 나가잖아요"

뭐든 잘 알아야 공포심 사라져
옛 도시계획법 사시 공부하듯 독파
꼬이고 꼬인 인허가 실타래 직접 풀어

지었다하면 국내 최대
용산엔 호텔·인천엔 코엑스보다 큰 쇼핑몰
양천구 서부터미널도 초대형 개발 검토



[ ?문혜정/김진수 기자 ]
지난 4월 서울 한강로 용산관광버스터미널 부지에 호텔을 세우는 사업계획이 공개되자 건설사 간에 수주 경쟁이 불붙었다. 총 사업비 1조원 규모의 대형 사업인 데다 국내 최대 호텔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7월 시공사(대우건설) 선정과 함께 공사에 들어간 3개동(33층 2개·39층 1개), 1729개 객실의 ‘용산호텔’(가칭) 사업이다. 국내에서 현재 객실 수 최다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1156실)의 1.5배에 달한다. 싱가포르의 명물로 떠오른 ‘마리나 베이 샌즈’처럼 33층 두 개 빌딩 옥상을 연결한, 한강과 서울 도심 조망이 가능한 수영장도 들어선다.

이 사업을 이끌고 있는 디벨로퍼(개발 시행자)는 불문학도 출신인 ‘터미널 큰손’ 승만호 서부티엔디(T&D) 대표(57)다. 승 대표는 선친인 승항배 회장이 일군 전국 30여개 터미널 사업 부지를 쇼핑몰 호텔 등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부티엔디가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지은 국내 최대 쇼핑몰 스퀘어원 내 소고기 식당 마이스톤에서 승 대표를 만났다.

○화물터미널 운영하는 땅 부잣집 외동아들

마이스톤은 2개월 전에 문을 연 새 식당이다. 승 대표가 신장개업에 가까운 음식점을 단골집으로 추천한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2년 전 스퀘어원 오픈과 함께 입점해 다른 음식점을 운영하던 사장이 새 식당 창업을 고민하길래 아이디어를 보탰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소고기를 ‘회전 초밥’처럼 먹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레일 위를 움직이는 소고기 접시를 직접 고른 뒤 한 점씩 직접 구워 먹는 맛이 일품이에요.”

자리에 앉자마자 안창살과 안심 접시를 건넸다. “자, 드셔보세요. 일단 먹으면서 시작합시다.” 소고기의 어떤 부위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썰렁 개그’에 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맛있는 부위를 좋아하죠. 하하하~.”

서부티엔디는 2010년 서부트럭터미널에서 회사 이름을 바꾼 상장사다. 화물자동차정류장업과 유류판매업, 복합 쇼핑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보유 부동산 자산만 장부가로 8000억원, 시가로는 1조원을 웃돌아 코스닥시장 내 대표적 자산주로 꼽힌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광복 직전인 1944년 서울에 내려와 용산관광버스터미널과 서초동 화물터미널(남부시외버스터미널) 등을 운영했다. 1남 3녀 중 셋째인 승 대표는 청소년 시절 만화책과 역사, 문학 등을 좋아했다. 경복고 2학년 때 원서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불문과(서울대) 진학을 결심했다. (어린왕자는 대학교 2학년 때 교재였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경영·경제학을 공부한 뒤 1986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 터미널 경영을 배웠다.

승 대표는 1990년대 후반 화물운송업이 사양산업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휴대폰이 대중화하고 첨단 화물운송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화물운송업계와 운전자(차량)가 직접 연결됐어요. 택배산업까지 크게 발달하면서 화물터미널 수요는 급격히 줄었죠.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는 터미널 부지를 파는 대신, 부가가치를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체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쌀이나 무, 배추를 그냥 파는 것보다 밥 짓고 김치 담가 파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나요.”(웃음)

○용산 토박이, 국내 최대 ‘용산호텔’ 세운다

마이스톤의 특징은 소고기 여러 부위를 구미에 따라 골라 1인용 불판에 구워 먹는 것이다. 고기 육즙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채소와 함께 승 대표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먹으면 고기가 더 맛있고 먹는 양은 줄어듭니다. 특별 메뉴인 육회와 육전도 드셔보세요.” 술 대신 식당에서 직접 만든 자몽주스와 우거지장국을 간간이 곁들였다.

용산구에서 태어난 그는 52년 동안 청파동 이태원동 동부이촌동 한남동 등 용산 지역에서 살았다. 이런 이유로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 회장을 15년째 맡고 있다. 용산관광버스터미널 부지 개발에 직접 나선 것도 용산 토박이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땅을 개발하기 위해 300여명의 입점 상인을 일일이 만나 합의를 이끌어냈다. 용도변경 등 인허가를 위해 서울시와 협의한 기간은 15년에 달한다. 완공 뒤 호텔 운영은 세계적 호텔 체인인 아르코와 앰배서더 합작법인(아르코앰배서더코리아)에 맡기기로 했다. “호텔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합니다. 시의적절한 마케팅과 경쟁력 있는 가격 책정이 운영의 핵심이죠.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권 명물 호텔로 만들 겁니다.”

그의 용산 개발 꿈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이 중단된 채 토지주 코레일과 민간 투자사 간 소송전으로 비화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승 대표는 여러 차례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참여를 고심했다고 털어놨다. “용산지구 같은 대형 사업은 잘 짜인 조직을 가동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개발을 진행해야 합니다. 디벨로퍼로서 용산지구 부지는 탐나는 땅입니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공부”…도시계획법 다섯 번 독파

30g짜리 소고기가 올려진 접시 5개를 처리한 승 대표는 식사로 된장죽을 주문했다. 토속적인 맛의 죽을 김치·무채와 함께 말끔히 비웠다. 구수한 향에 소화가 잘 되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승 대표는 부동산개발업에서 중요한 것은 타고난 감각이나 창의성이 아니라 ‘성실과 근면’이라고 했다. 그는 도심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옛 도시계획법(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다섯 차례 독파했다고 말했다. “뭐든지 잘 알면 공포심이 사라집니다. ‘도시계획시설’이 뭔지 제대로 모르면 용역업자나 인허가를 내주는 공무원과 대화도 안 되고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막연하게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직원이나 전문가에게 맨날 묻고 공부합니다.”(지난 7월 방문한 서부티엔디 서대문 사옥의 사장실이 마치 교수 연구실처럼 책으로 빼곡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승 대표는 미국 월드키친의 코렐 등 주방용품과 휴렛팩커드(HP)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개인 회사인 오진상사(작년 매출 1000억여원)도 운영 중이다. 유통과 개발업의 장단점에 대해 물었다. “가게를 깔끔하게 꾸미고 잘 기획하고 마케팅한 물건을 수요자가 찾았을 땐 ‘바로 이거야’ 하면서 무릎을 치죠. 그런데 개발업은 법과 현실,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야 하니 훨씬 까다롭습니다. 10년 이상 기다리면서 일을 끌고 가는 인내력이 필수입니다.”

○“디벨로퍼의 주요 덕목은 10년을 기다리는 인내”

승 대표는 디벨로퍼의 중요한 덕목으로 인내를 꼽았다. 용산호텔 착공까지 인허가와 입점 상인 설득에 15년이 걸렸고 2012년 문을 연 스퀘어원 인허가 작업도 12년가량 소요됐다. 그는 기다림 속에서 얻는 사업 결실의 짜릿함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다고 했다. “스퀘어원을 개발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기부채납(공공기여)이나 용도변경 등의 문제로 하루 종일 회의만 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명과 불면증에도 시달렸어요. 그래도 복합하게 꼬인 사업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갈 때의 재미가 결국 다시 회의 테이블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1.5배에 달하는 스퀘어원은 현재 자라 버쉬카 등 150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와 영화관, 대형마트, 유아 테마파크 등이 들어서 있다. “지난해 입점 업체 매출이 15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2000억원에 달할 겁니다. 수도권 서남부 대표 쇼핑몰로 자리를 잡았고 유동인구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는 국내 쇼핑몰 트렌드 전망과 관련, 일본이나 홍콩처럼 백화점이 점점 쇠퇴하고 스트리트(가로형) 쇼핑몰 등이 대안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양천구에 있는 초대형 서부트럭터미널도 새 물류시설로 개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맛있는 만남을 마쳤다.

■ 초밥 고르듯 소고기 골라 1인용 불판에 구워먹는 맛 일품

마이스톤은 인천 동춘동 스퀘어원 4층에 있는 회전 레일 소고기 전문식당이다. 구미에 맞는 초밥을 골라 먹듯이 식탁 옆을 지나는 레일 위에서 다양한 원산지의 소고기 부위를 선택해 1인용 불판에 구워 먹는다. 승 대표는 문대성 마이스톤 사장과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내가 167㎝에 92㎏이고 문 사장이 173㎝에 108㎏입니다. 둘 다 초고도 비만입니다.”(웃음)

한우, 미국·호주산 소고기가 갈빗살, 꽃등심, 차돌박이, 안창살, 채끝, 토시살 등 부위별로 나온다. 모둠버섯과 채소 샐러드 접시도 놓여 있다. 회전 접시는 개당 1000원(모둠버섯)~7000원(한우 토시·안창살 30g)이다. 접시 4~5개가 일반 고깃집의 1인분이다. 1인분씩 주문할 경우 한우 1인분(150g)은 2만5000원, 한우 특수부위 1인분(150g)은 3만원이다.

1인용 개인 불판은 섭씨 280도 안팎에서 고기가 구워진다. 고기 한 점을 불판에 올린 뒤 10초간 굽고 다시 뒤집어 7초가량 익혀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한다.

기본 반찬으로 간장 소스에 절인 양파채, 된장, 김치, 우거지장국 등이 나온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032)456-4459

■ 52년 용산 토박이…15년째 용산구상공회장

‘용산 토박이’ 승만호 대표는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 회장을 1999년 이후 15년간 맡고 있다. 용산을 잘 아는 만큼, 국내 디벨로퍼 중 용산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승 대표는 업무에선 국제적인 감각을 중시한다. 순수 국내파지만 영어와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해외 사업 파트너와 대화하며 해외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외국어 공부를 한 덕분이란다.

■ 승만호 대표

▷1957년 서울 용산 출생 ▷1976년 경복고 졸업(51회) ▷1980년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83년 오진개발 상무 ▷1985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1987년 한국트럭터미날 부사장 ▷1988년 오진상사 대표(현) ▷1998년 MYH 대표(현) ▷1999년 서울상공회의소 용산구상공회 회장(현) ▷2010년 서부티엔디 대표

문혜정/김진수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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