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機 상용화 '꿈틀'…KAI·대한항공, 無人틸트로터 띄운다

입력 2014-09-11 21:29   수정 2014-09-13 03:33

'게임 체인저'가 되자 (2) 무인항공기

수직이착륙 가능해 민간 활용 '무궁무진'
美·유럽 등 선진국선 인프라 구축 '잰걸음'



[ 이미아 기자 ]
세계 최대 오픈마켓인 아마존은 사람 대신 ‘무인항공기(드론)’가 물건을 배송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30분 안에 배송을 마친다는 이른바 ‘총알 택배 서비스’다. 4~5년 내 전체 주문량의 86%를 무인항공기가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지요다화공건설은 무인항공기로 자재를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건설 현장에 있는 수만 가지 자재에 전자식 태그를 붙인 뒤 무인기가 무선통신으로 위치를 확인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자재 관리에 드는 인건비를 60%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군용으로 쓰이던 무인항공기의 상용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다. 나라별로 무인항공기에 대한 법과 규제가 갖춰지면 시장이 급팽창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무인기 기술

대전 어은동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본부를 찾으면 한국의 무인항공 산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무인 틸트로터(수직 이·착륙 헬기) ‘TR-100’이다. TR-100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무인 틸트로터다. 동체 길이 5m, 중량 1t, 최대 비행속도 시속 500㎞, 체공 시간 5시간, 이동 반경은 약 200㎞다. 서울에서 강원 속초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원천 기술은 KARI가 갖고 있다. KAI와 LIG넥스원, 한화, 퍼스텍 등 20여개 기업이 참여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총 872억원을 들여 개발·제작한 뒤 2011년 11월 첫 비행에 성공했다. KARI 관계자는 “군용 시장에선 일반 비행기 형태를 써도 무방하지만 민간 분야에선 별도 활주로가 필요 없는 헬기형 무인항공기가 더 각광받는다”며 “특히 틸트로터는 이·착륙 때는 헬기처럼 활주로가 필요 없고, 비행할 땐 엔진과 프로펠러 각도를 수평으로 기울여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틸트로터의 무인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난관이 적지 않았다. 스마트무인기사업단장으로 국내 무인항공기 기술 개발을 총지휘했던 김재무 KARI 미래비행체계실 책임연구원은 “미국이 수십년 동안 개발해오다 2006년 사업을 접을 정도로 무인 틸트로터 개발은 어렵다”고 말했다. 엔진과 프로펠러 각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 데 각도를 1도씩 꺾을 때마다 추락하곤 했다는 것이다. TR-100의 개발 성공 이후 한국의 무인항공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민간 기업 중에선 대한항공이 무인항공기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공군의 근접감시용 무인항공기 개발 사업을 시작, 2007년 8월에 감시정찰용 무인기 ‘KUS-7’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은 2011년 약 10억원에 KARI로부터 틸트로터 원천기술을 이전받고, 신형 민간 보급용 틸트로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KARI와 공동 제작 중인 ‘KUS-TR’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동체 길이는 TR-100의 약 60%인 3.5m다. 중량은 5분의 1 수준인 200㎏이며 체공 시간은 6~8시간이다.

재난 구호와 어선 감시로 확대

항공군사 전문 컨설팅사 틸그룹은 세계 무인항공기 시장 규모가 지난해 118억달러에서 2023년엔 890억달러로 약 8배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현재 10%인 민간 수요 비중이 60~70%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군용으로 쓰이던 무인항공기가 민간 부문으로 확대되면 여러 산업에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군 탐지와 불법조업 어선 감시뿐 아니라 교통상황 실시간 촬영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미 무인항공기 관련법 제정과 인프라 구축 준비에 한창이다. 아마존과 구글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무인항공기 개발과 시험 비행 허가 요구가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2년 2월 미 의회가 제출한 무인항공기 민간 운용 관련 법안을 승인했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로봇처럼 무인항공기 시장이 커질수록 사람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무인항공기가 개인의 사생활까지 엿볼 수 있다는 인권 침해 논란도 있다.

비행 한번에 서류 10개 제출…시대 뒤처진 법·제도 재정비해야

“프로젝트 하나 추진할 때마다 똑같은 서류를 네 개 만든다. 시험 비행을 한 번 하려면 서류 10개 이상이 필요하다.”

무인항공기 업계에 종사하는 연구원들이 한결같이 쏟아내는 불만이다. 시장은 꿈틀대고 있는데 관련 법과 제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무인항공기를 전담하는 주무 부처도 확실치 않다. 미국 영공을 모든 무인항공기가 날 수 있도록 연방항공청(FAA) 관련 규정을 도입하는 미국과 판이하다.

현재 국내 무인항공기와 관련있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국토교통부 네 곳이다. 산업부와 미래부는 무인항공기 개발사업 지원을 담당하고 국토부는 무인항공기 관리 체계를 마련한다. 기재부는 무인항공기 개발사업의 예산 예비타당성 조사를 맡는다.

문제는 네 개 부처가 따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우선 무인항공기를 둘러싸고 산업부와 미래부가 보이지 않는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는 작년 12월 ‘13대 창조경제 산업엔진’에 고속ㆍ수직이착륙 무인항공기를 포함했다. 그런데 미래부에서도 지난 4월 “내년부터 무인기 통합 관제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겠다”고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관계자는 “두 부처 중 어느 곳의 결정을 따라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무인항공기 전용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국토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국토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무인비행장치 궁금증 해소’ 코너가 현재로선 가장 자세한 규정이다. 국내 항공법에선 연료를 제외하고 중량이 150㎏ 이하이면 ‘무인비행장치’, 150㎏을 초과하면 ‘무인항공기’로 분류한다.

12㎏을 초과하면 단순 취미든 사업용이든 상관없이 지방항공청과 국방부, 교통안전공단 3개 부처의 별도 승인을 거쳐야 한다.

무인항공기 행정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점도 문제다. 민간 기업들이 상용화 모델 개발에 착수해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 등록된 150㎏ 이하의 무인항공기 240대 중 85%가 농약 살포용으로만 쓰인다. 비효율적인 행정과 규정 미비로 무인항공기 개발이 늦어지고 활용마저 떨어지고 있다.

방효충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무인항공기 시범비행 구역 설정을 비롯한 실질적 규정을 마련해야 관련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인항공기 drone

사람이 타지 않는 비행체로 ‘드론(drone)’으로 주로 불린다. 지상 컴퓨터와 위성통신의 원격 조종으로 움직인다.

1㎏ 이하 초소형부터 7t급 대형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1910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으며 최근 아마존에서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하는 등 상용화가 추진 중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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