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빠진 새정치연합
초·재선까지 퇴진 압박…'友軍' 강경파 등돌려 충격
'진보+중도' 정치실험 실패…일각 "정치력 없어 놀랐다"
[ 손성태 기자 ]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사진)가 지난 8월4일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떠맡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박다르크(박영선+잔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독배’ 발언은 현실이 됐다.
박 위원장은 지난 14일 측근들에게 탈당까지 언급하면서 잠적했다. 그는 조만간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40여일의 짧은 기간 동안 박 위원장은 가장 촉망받던 여성 정치인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당내 거센 퇴진 압박에 직면했다. 두 번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에 이어 비대위원장 ‘외부인사 영입 카드’는 결국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안기는 악수(惡手)가 됐다.
무엇보다 ‘우군’ 역할을 한 강경파 의원들이 반기를 든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는 측근들에게 “초·재선 의원들까지 저렇게 물러가라고 하고, 아예 당을 떠나가라 하는 것 같고 나를 죽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가 탈당까지 언급한 것은 진정성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고립무원 처지에 빠진 그의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2004년 정동영 상임고문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박 위원장은 대변인과 정책위원회 의장을 거쳐 비(非)법조인 출신 법제사법위원회 첫 상임위원장이 되는 등 여성 정치인의 지평을 넓혀가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10여년간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한꺼번에 날릴 위기에 빠졌다. ‘박남매’로 불리며 찰떡 궁합을 보여온 박지원 의원만이 그의 원내대표직 유지를 주장하고 있을 뿐 ‘우군’이었던 정 상임고문조차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원조 강경파’ ‘저격수’로 불렸던 그는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계파 청산과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야권의 외연 확장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외연 확장을 통한 차기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그의 이런 전략은 친노무현계를 비롯한 강경파들의 반발을 부르는 요인이 됐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박 위원장은 사석에서 당내 계파 간 이해 갈등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경환(서울대)-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만큼 정당과 정치 개혁에 대한 식견과 소신을 갖고 있는 분이 없는데 그런 분들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새정치연합이 얼마나 폐쇄적이냐”며 “지도부 흔들기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 하는 현재의 야당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 정치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을 지지했던 강경파 의원들은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180도 변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는 소통 과정도 생략한 독선적 행태를 보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는 당내에서 특정 계파로 분류하기 힘들다. 주주(계파 수장)가 아니어서 애초 당을 이끄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초·재선까지 퇴진 압박…'友軍' 강경파 등돌려 충격
'진보+중도' 정치실험 실패…일각 "정치력 없어 놀랐다"
[ 손성태 기자 ]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사진)가 지난 8월4일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떠맡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박다르크(박영선+잔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독배’ 발언은 현실이 됐다.
박 위원장은 지난 14일 측근들에게 탈당까지 언급하면서 잠적했다. 그는 조만간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40여일의 짧은 기간 동안 박 위원장은 가장 촉망받던 여성 정치인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당내 거센 퇴진 압박에 직면했다. 두 번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에 이어 비대위원장 ‘외부인사 영입 카드’는 결국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안기는 악수(惡手)가 됐다.
무엇보다 ‘우군’ 역할을 한 강경파 의원들이 반기를 든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는 측근들에게 “초·재선 의원들까지 저렇게 물러가라고 하고, 아예 당을 떠나가라 하는 것 같고 나를 죽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가 탈당까지 언급한 것은 진정성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고립무원 처지에 빠진 그의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2004년 정동영 상임고문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박 위원장은 대변인과 정책위원회 의장을 거쳐 비(非)법조인 출신 법제사법위원회 첫 상임위원장이 되는 등 여성 정치인의 지평을 넓혀가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10여년간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한꺼번에 날릴 위기에 빠졌다. ‘박남매’로 불리며 찰떡 궁합을 보여온 박지원 의원만이 그의 원내대표직 유지를 주장하고 있을 뿐 ‘우군’이었던 정 상임고문조차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원조 강경파’ ‘저격수’로 불렸던 그는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계파 청산과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야권의 외연 확장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외연 확장을 통한 차기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그의 이런 전략은 친노무현계를 비롯한 강경파들의 반발을 부르는 요인이 됐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박 위원장은 사석에서 당내 계파 간 이해 갈등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경환(서울대)-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만큼 정당과 정치 개혁에 대한 식견과 소신을 갖고 있는 분이 없는데 그런 분들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새정치연합이 얼마나 폐쇄적이냐”며 “지도부 흔들기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 하는 현재의 야당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 정치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없어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을 지지했던 강경파 의원들은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뒤 180도 변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는 소통 과정도 생략한 독선적 행태를 보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는 당내에서 특정 계파로 분류하기 힘들다. 주주(계파 수장)가 아니어서 애초 당을 이끄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