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임원들 배만 불린다?
CEO 연봉 생산성과 무관하다면
주주들이 왜 계속 투자하겠나
소비능력은 계속 커진다
1910년대 최대 사치품 에어컨
이젠 중산층도 보편적으로 사용
[ 김홍열 기자 ]
“피케티는 틀렸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성장을 보라.” 역시 좌장다웠다. 86세의 석학 앨런 멜처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의 목소리는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작심한 듯 40여분 동안 프랑스의 좌파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고율의 부유세 부과로 부(富)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8월31일~9월5일 열린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모임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 홍콩 총회 자리에서였다.
중국의 전·현직 국가주석인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지도 이념과 리더십을 중국의 미래와 연결시켜 스스럼없이 비판한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은 소름이 돋았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정하는 데 활용하는 ‘테일러 준칙’을 개발한 존 테일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통화 정책에 날을 세웠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한국은 물론 인도 과테말라 브라질 짐바브웨 몽골 등 전 세계에서 참석한 340여명의 석학과 지성들의 열기는 총회 기간 내내 식을 줄 몰랐다. 최근의 현안을 토론하면서 자율과 혁신이 성장엔진인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그야말로 지적 향연이었다.
‘2017년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 서울 지역총회’를 유치한 한국경제신문은 홍콩 총회에서 주목받은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을 매주 1회씩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첫 회로 도널드 보드로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발표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재고’를 요약해 싣는다. 그는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제기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외과수술용 칼로 헤집듯 반박하고 비판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에 감동하지 못한 것은 저서 전반에 걸쳐 미시경제학적인 분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개인들의 의사결정 역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대신 국가 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부자들의 비중이나 인구 증가와 같은 거시적인 통계에만 주목했다. 소득과 부는 벌고 생산된다는 시각이 아니라 누구의 것이고, 분배된다는 시각으로만 접근했다.
그는 그런 통계들을 낳게 한 개인의 행동을 관찰하기보다 자본수익률, 국가의 소득과 부의 비중 같은 방대한 통계 자체가 갖는 의미에 관해 대부분 임시방편적이고 설득력이 없는 이론만 제시했다. 그런 총합이 개인의 창의와 창조성, 또는 선택에 영향받지 않고 자체 논리대로 로봇처럼 상호작용한다고 상상했다.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은 생산성과 무관?
최근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피케티의 분석부터 짚어보자. 피케티는 미국 기업 경영자들의 높은 보상 수준이 생산성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경영자들과 이사회 간 친밀한 관계와 관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자와 이사들이 서로 등을 긁어주며 서로 과도한 연봉을 책정해준다고 말이다.
그는 지나치게 높고 낭비적인 보상체계를 최고소득세율 인하와 결부시켜 미국의 느슨한 사회 규준 탓으로 돌렸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경영자가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이사들에게 더 열심히 로비하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했다. 세금 인하가 소득을 더 올리기 위해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유인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피케티는 주주들이 투자한 돈을 흥청망청 써대는 기업에 주주들이 왜 지속적으로 투자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미국의 현행 임원 보상 체계가 그들의 배만 더 불려준다면 그가 부의 불평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믿는 자본의 높은 시장 가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투자한 자금이 기업 임원들에 대한 과도한 보상으로 낭비되는데 어떻게 투자 자본가들은 일반 근로자들에 비해 절대적이고 상대적으로 계속 더 부유해지는가. 왜 미국 다우존스 평균지수는 미국 정부가 최고소득세율을 69%에서 50%로 인하하기 직전 연도인 1981년보다 몇 배나 더 높아졌는가.
피케티는 이런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부가 부를 낳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에서 부는 인간의 창조성, 위험 감수, 노력, 진취성과 대부분 무관하게 자동 증식할 뿐이다. 그러나 부는 현실적으로 자동 증식하지 않는다. 창출된 부는 신중하고 기술적으로 계속 관리해야 증가한다. 임원 보상과 관련한 피케티의 주장대로 기업 이사회가 경영진의 생산성에 무관심하다면 기업의 시장 가치는 폭락하게 될 것이다. 기업에 투자한 자본가들도 대중과 함께 점점 빈곤해질 것이다.
국채 발행은 자본가들의 배만 불린다?
피케티는 또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 정부의 많은 공공 부채는 대부자들과 그 자손의 이익에 봉사했다는 점이 분명하다. 적어도 영국 왕정이 대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재정을 마련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대부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보다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수십년 동안 이자를 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그가 기본적이고 미시적인 공공재정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 재정을 마련하려면 부자들이 상당한 세금을 낼 것이라고 피케티는 가정했다. 정부가 채권 발행으로 부자들에게 돈을 빌리면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오히려 그들의 부만 늘려주는 이자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피케티가 무시한 중요한 질문 하나를 해보자. 정부가 국채 보유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세수를 확보하려면 주로 누구에게 세금을 부과할까. 피케티의 가정대로 세수의 주요 기반은 부자들이다. 오늘 현재 부자들의 부유한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자산 가치에서 내일 내야 할 많은 세금의 현재 가치를 빼야 한다. 피케티는 이런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조정을 하지 않았다.
어제의 사치품은 오늘의 필수품이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각자가 빌 게이츠만큼 부유하지만 주식, 채권, 부동산 소유권, 현금 뭉치만 가진 채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면 얼마나 부유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학생들은 이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의 양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떠한 경제학 원리도 부는 돈이나 금융자산이 아니라 실물 제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보다 본질적이지 않다.
에어컨이 민간 주택에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정확히 1914년이었다. 당시엔 최고의 부자들만 집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통의 부자들도 합류했고, 이어 중산층도 에어컨을 마련할 수 있었다.
피케티는 사람들의 금융 포트폴리오 격차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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