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 탈퇴 제동걸려 안정성↑
한국도 유럽수출 리스크 덜어"
고상두 <연세대 교수·유럽정치학 >
국가가 분리 독립하는 경우는 많다. 유럽에서 연합왕국이 분리된 사례로는 스페인-포르투갈, 덴마크-노르웨이가 있다. 옛 소련의 붕괴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국가연합 분리 사태였다. 오늘날 국가분리의 수단으로 혁명이나 전쟁이 아닌 주민투표가 이용되고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인들은 주민투표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했다. 주민투표에 의한 독립이 극적으로 무산된 사례는 1995년의 퀘벡이다. 50.6% 대(對) 49.4%로 퀘벡은 캐나다에 잔류하게 됐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반드시 자유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자유의 대가로 치르게 될 불확실성과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유를 꺼리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었지만, 독립 이후의 혼란과 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지도자들은 이런 대중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에 실패했다.
스코틀랜드 주민의 가장 큰 두려움은 화폐 문제였다. 영국 화폐인 파운드에는 두 종류가 있어서, 영국 지폐는 스코틀랜드에서 받지만, 스코틀랜드 지폐는 영국 내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받지 않아 종종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화폐란 정부가 보증하는 어음과 같은 것이다. 영국 화폐에는 ‘영국 왕립은행은 이 화폐의 소지자에게 아래 금액을 보증한다’고 쓰여 있다. 스코틀랜드 화폐에는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이 화폐의 소지자에게 아래 금액을 보증한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영국중앙은행이 두 화폐를 모두 보증하는 화폐동맹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면 화폐에 대한 중앙은행의 보증이 사라지고, 유로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 가입이 선결돼야 하는 것이다.
영국은 EU에서 탈퇴하려 하고, 스코틀랜드는 EU에 잔류하려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보수당 내부의 EU 회의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2005년 조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2017년까지 EU 탈퇴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생한 내부적 탈퇴위기로 인해 영국의 EU 탈퇴 동력은 줄어들 것이고, 유럽통합의 정치적 안정성은 높아질 전망이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에 실패했지만 2년에 걸친 주민투표 운동과정에서 많은 자치권을 약속받았다. 자유를 얻지 못하는 대신 실익을 챙겼다. 영국정부도 파운드화와 주식의 가치하락 등으로 인한 금융 및 재정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주민투표는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미국은 가장 든든한 동맹국인 영국이 약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지역 분리주의가 강한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영국의 사태가 남유럽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 유럽에는 미니국가들이 많지만, EU 회원국이 되면 국가로 생존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따라서 하나의 유럽으로 통합되는 과정 속에서 중앙정부로부터 완전독립하려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세시대처럼 국왕의 통치 아래 자신의 영지를 독립적으로 실효 지배하는 영주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실패는 신(新)중세주의에 제동을 걸었고, 아직은 허약한 브뤼셀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스코틀랜드의 잔류는 한국기업에도 다행스럽다. 한국은 2011년에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나 그동안 유럽의 경제위기 때문에 기대했던 교역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이번 투표결과 대(對)유럽수출 리스크를 피할 수 있게 됐고, 영국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스코틀랜드에 대한 현지 투자환경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유럽정치학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