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청림출판
1970년대 어느 날 케네디예술센터가 운영하는 선물 매장에 도둑이 들었다. 연 매출액 40만달러의 절반에 이르는 15만달러를 훔친 도둑은 알고 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한두 명이 아닌 자원봉사를 하던 수십 명의 선한 노인들이 매일 조금씩 돈과 물건을 훔쳤던 것이다.
거의 50년 전 사건이라 CCTV는 언감생심, 이 매장은 금전등록기 대신 물건을 팔고 받은 돈을 보관하는 현금 상자들만 있어 관리도 소홀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예술을 사랑해 자원봉사를 청한 수십 명의 선한 노인들이 호프집 공짜 새우깡 먹듯 돈을 훔쳤다는 사실이 아연질색하게 한다. 그들은 자원봉사자를 자청한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던가?
책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청림출판)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아주 사소한 부정행위에 주목했다. 저명한 행동경제학자이자 <상식 밖의 경제학>, <경제 심리학>을 통해 유쾌하고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줬던 댄 애리얼리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행위에 대한 편견을 낱낱이 파헤쳤다. 부정행위가 소수의 악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문제이므로 부정행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고,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인 부정행위를 통제할 방법도 모색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어쩌면 오늘 출근길에도 무단횡단을 하고,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엄밀히 따져보면 부정행위지만, 사실 이런 부정행위는 너무나 횡횡해서 내가 그런 일을 했는지조차 모를 만큼 무감각할 정도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 아들이 같은 반 친구의 연필 한 자루를 훔쳤다면 나쁜 짓이다. 그렇다면 회사 사무실에 있는 연필 세 자루를 집으로 가져왔다면? 들키면 나쁜 짓이고, 안 들키면 괜찮은 짓일까?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반적인 삶을 돌아볼 때 스스로가 꽤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르는 사소한 부정행위는 너그럽게 허용하고 만다. 반면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한 번 깨고 나면 더 이상 자기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후부터 부정행위의 유혹에 이전보다 훨씬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품 프라다 가방을 들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나는 부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만약 짝퉁 명품 가방을 들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저자는 짝퉁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도덕적인 자제력이 해이해지고, 따라서 사람들은 부정행위의 어두운 길로 더 많이 접어든다는 것을 다양한 실험으로 밝혀낸다.
짝퉁 천국 중국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본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중국 사회에서 짝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아예 비즈니스의 한 장르로 놓고 전 세계를 상대로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제는 중국 사회 내에서 사용하는 생필품마저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육가공 고기를 비롯해 달걀을 가짜로 만들더니 이제는 아예 아기들이 먹는 분유까지도 짝퉁을 만들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저자는 짝퉁 사용이라는 부정행위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명품 회사들뿐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차례의 부정행위는 자기신호화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효과로 인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그 시점부터 그 사람의 행동을 영속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부정행위는 우리의 행동을 바꾸고, 우리의 자아 이미지를 바꾸며, 나아가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을 바꾼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동안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학위와 이력서 조작 등이 바로 그런 역효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정행위를 저지하는 방법은 뭘까? 미국 법정에서는 재판에서 증인을 설 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한 치의 거짓이 없도록 진술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처벌을 받겠다고 선서한다. 우리 역시 평소 십계명과 같은 도덕률을 기억하고 인식하면 나쁜 행위의 싹을 자르는 한 방법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처음에 언급했던 케네디예술센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선물 매장을 총괄하던 책임자 바이스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재고관리 시스템을 개선했다. 물품에 가격표를 붙이고, 매장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물건을 팔 때마다 판매대장에 기록하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현금과 물품의 좀도둑질이 사라졌다.
욕망이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며 따라서 부정행위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부정행위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이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을 어떻게 정하고 지키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김은섭 북칼럼니스트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좋은책 선정위원회 경제경영분과위원이다. 교보문고가 선정한 ‘북모닝 CEO’ 북멘토이며 기업 사보 등에 다양한 책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다. ‘책으로 만나는 세상’ 등 방송에서도 재미있는 책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2012)>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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