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정치부 기자)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는 여야 의원 간 입씨름으로 1시간 넘게 파행했다. 여당 의원들이 전날 포스트잇으로 주고받은 ‘메모’ 한 장이 발단이 됐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상대 진영의 파트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국회가 협상보다는 툭하면 파국으로 치닫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7일 국방위원회 국감장에서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전매특허인 ‘까칠’한 질문으로 피감기관을 몰아부쳤다. 진 의원은 “한반도에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국내 도입 논란이 사실상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하면서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이때 정미경·송영근 새누리당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주고받은 메모가 한 매체의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혔다. TV 카메라는 두 의원이 포스트잇으로 주고받은 과정과 메모 내용을 ‘줌인’으로 내보냈다.
‘쟤(진성준 의원)는 뭐든지 빼딱! 이상하게 저기 애들은 다 그래요!’라는 글귀가 생생하게 방송을 탄 것이다. 송 의원은 포스트잇 뒷면에 ‘한명숙 의원이 19대 선거에 청년 비례대표 몫으로 김광진, 장하나 의원을 추천, 이들은 운동권, 좌파적 정체성이 주인 ‘나가수식 선발’라고 적기도 했다.
8일 국감은 당초 국군 기무사령부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진 의원이 전날 메모 논란과 관련해 의사 진행발언을 신청하면서 여야간 거친 공방이 시작됐다.
국방위 야당 간사인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어제 열심히 국감 진행하는 가운데,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동료 의원의 노력을 폄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진성준 의원은 “제가 ‘쟤’ 취급을 받아야 하나? 정미경 의원(새)이 사과를 하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몰래 촬영해서 언론에 공개가 됐지만 육안으로 봐도 두 문장의 글씨체가 틀리다. 사적 대화였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해명했지만, 송영근 의원은 “포스트잇으로 개인적 대화를 나눈 게 사과의 대상인가? 이런 것에 언론이 집중할진 몰랐다. 그런 점에 대해선 조금 아쉽게 생각한다”며 사과를 사실상 거부했다.
쪽지 논란의 또 다른 당사자인 김광진 의원(민)은 “(의원들이) 의사 진행하면서 휴대폰을 본 것(화면)도 모두 보도되는데, 국감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공적 활동”이라며 “특정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정체성을 규정하셨다. 사과하지 않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받아쳤다.
권은희 새정치연합 의원도 “오히려 (이런 일이) 국감장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감장에선 피감기관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건전한 견제활동을 해야 함에도 (해당 의원을 ’좌파‘라고 규정한다면) 이들이 삐딱하고 단정적 국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을 보탰다.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이 ”잠깐 정회해 사과 수위를 조절하자“고 했지만 안규백 새정치연합의원은 “사적 장소면 모르겠는데, 국감장이라는 시간과 장소, 무게감이 중요하다”고 받아쳤다.
송 의원이 “악질적 의도로 했다면 사과해야겠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과를 하라는 게”라고 하자, 진 의원은 “메모를 한 당사자가 (정미경 의원인 줄 알았는데) 송 의원이라니 정말 충격스럽다. 국방위를 2년간 같이 하면서 제 의견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평소 송 의원은 (진 의원 본인에게) ’국방위에서 잘 한다‘고 격려 말씀을 하시며 제 의정활동을 높게 평가해왔다. 그게 다 빈말이라고 생각하니 실망스럽고 의정활동 전체가 매도된 상황에서 국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감이 시작되고 40여분간 이어진 공방끝에 황진하 위원장은 정회를 선언했다.
11시가 돼서야 재개된 국감에서 송영근 의원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눈 얘기가 본의 아니게 언론에 포착됐고, 이것이 문제화 되는 것에 진성준 의원과 김광진 의원께서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어 유감이다. 어제 당시에 마음을 덜 다스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사과 표명을 하면서 국감이 재개됐다.
황진하 위원장은 “생각을 달리하는 의원이 있겠지만 우리가 똑같이 국방위 소속 팀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 위원장은 기무사령부 업무보고가 시작된지 2분여만에 “시간이 많이 경과됐으니 기관보고는 서면으로 하시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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