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아닌 사물에 높임말
서비스경쟁 점점 치열해지며 과잉친절로 희한한 존대 난무
유통가 "우리말 바르게 쓰자"
"듣기 거북해" 고객 의견 반영…롯데百·현대홈쇼핑 등 자정 나서
[ 김태호 기자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오셨습니다.”
한글날인 9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커피숍. 손님들로 가득 찬 이 매장에서는 직원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커피 등과 같은 사물에 존칭을 붙이는 말들이었다. 인근 신발가게 직원들도 비슷했다. 직원들은 “이 상품은 사이즈가 없으세요”와 같이 손님이 아닌 ‘사이즈’를 존대하는 잘못된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중구 중림동의 한 슈퍼마켓 직원은 “7000원이세요”라며 물건의 가격을 높여 말했다. 직원에게 ‘어법상 틀린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손님에게 무조건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해 버렸네요”라며 멋쩍어했다. 연령대가 40대 이상인 경우는 문제가 없었지만 20대인 경우는 사물 존칭이 입에 붙은 듯했다.
이처럼 잘못된 사물 존칭이 우리 높임말을 망치는 사례는 유통업계뿐 아니라 병원, 식당 등 서비스 업종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유통업계가 뒤늦게 자정 노력에 나섰다. 고객들로부터 직원의 과도한 존칭이 듣기 거북하다는 의견이 자주 들어오고 있어서다.
롯데백화점은 한글날을 맞아 10월 한 달간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현장에서 유의해야 할 높임말 사용법을 직원들이 기억하기 쉽게 네 컷 만화로 제작해 사내 통신망에 올렸다. 만화에서는 “피팅룸은 이쪽이세요” “상품을 찾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실게요” 등이 틀리기 쉬운 사물 존칭 표현으로 예시됐다. 백화점 관계자는 “사물 존칭이 어법에 어긋난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장에서 바쁘다 보니 무심코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에게 말을 건네기 전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현대홈쇼핑도 지난해 자동주문전화에 꼭 필요한 안내 멘트만 제공하고 과도한 존칭, 불필요한 설명 등을 대폭 줄인 ‘스피드 ARS’ 서비스를 도입했다.
국립국어원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포장이세요?’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등은 손님이 아닌 사물을 존대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동사나 형용사에 붙은 선어말어미 ‘-시-’는 주로 사람을 높일 때 쓰인다. 다만 상대방의 신체, 심리, 소유물 등을 통해 주어를 간접적으로 높일 때는 ‘-시’를 써도 무관하다.
예를 들어 ‘눈이 크시다’ ‘걱정이 많으시다’ ‘넥타이가 멋있으시다’ 등의 표현은 상대의 신체, 심리, 소유물이기 때문에 ‘간접 존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이즈’ ‘포장’ ‘품절’은 신체나 심리처럼 사람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존대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 ‘사이즈가 없습니다’ ‘포장해 드릴까요?’ ‘품절입니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유통업계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고객을 존대하는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이처럼 사물에 존칭을 쓰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많아졌다”며 “사물 존대를 하지 않을 경우 불쾌해하는 고객도 있어 잘못된 언어 습관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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