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기부양보다 경제개혁이 더 시급
성장 잠재력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제 철폐
韓, 경쟁력 지키려면 삼성·현대車 같은 기업들 더 나와야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부 규제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장웨이잉(張維迎)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55)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규제 완화’를 꼽았다. 지난 10일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센터에서 이뤄진 한국경제신문 창간 50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다. 장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중국 경제에 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도 ‘자유로운 시장’과 ‘기업가 정신’이었다. 그는 중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국유기업 민영화 같은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경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올 들어 중국 경제가 2008년 미국과 같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비교적 큰 난관에 부딪힌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중국 경제의 성장동력이던 ‘후발자의 이점’이 사라졌어요. 인건비 같은 생산 요소 가격은 높아졌는데, 중국 기업의 혁신 역량은 글로벌 기업보다 여전히 낮습니다. 두 번째 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국 정부가 실시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입니다. 당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생산능력 과잉 상태가 됐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거죠.”
▷부동산 가격 급락이 중국 경제의 경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많은데요.
“중국의 소득 수준과 부동산 가격을 놓고 비교해 보면 현재 중국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맞습니다. 부동산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경우 전체 금융시장에서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입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쓸 의사가 없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리 총리의 생각이 맞습니다. 중국은 지금 경기부양보다는 경제 개혁이 더 중요합니다.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와 정치는 긴밀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경기가 계속 둔화하면 정부도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부양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부양책에 반대합니다.”
▷중국 정부는 작년 11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경제 운용에서 시장원리를 더 확대하겠다는 개혁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3중전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시행하느냐의 문제예요. 현재 중국 정부는 리 총리 주도로 각종 산업에 대한 규제(심사제)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해왔고, 일부 성과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합니다. 규제를 얼마나 줄이는지에 따라 시진핑 정부 경제정책의 성패가 결정될 것입니다.”
▷평소 정부가 주도하는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중국 모델’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자유로운 시장과 기업가 정신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죠. 중국 정부가 잘한 것은 1978년부터 시장원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과거 중국 정부에서 시행한 산업정책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올 들어 중국 경제의 ‘뉴노멀(new normal)’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과거처럼 고속 성장하기 힘드니 새로운 성장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인데요.
“시 주석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앞으로 중국은 7% 전후의 중·고속 성장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경제 개혁입니다.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최대한 줄여야 해요. 민간의 지식재산권과 사유재산권도 적극 보호해야 합니다.”
▷시장경제 원리를 확대하려면 국유기업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국유기업 개혁은 반드시 진행돼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쟁이 가능해져요. 현재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 지분 일부는 정부가 소유하고, 일부는 민간이 소유하는 ‘혼합소유제’ 개혁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전면적인 민영화로 가는 게 맞습니다. 국유기업 개혁은 어렵지 않아요. 정치 지도자가 결단을 내리면 됩니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정치 부문의 개혁은 거의 없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경제 자유화가 정치 민주화보다 먼저 진행돼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 30년간 중국은 옳은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치 개혁이 진행돼야 경제 개혁도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개혁입니다. 그 핵심은 ‘법치국가’ 확립이에요. 법으로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하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으므로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시 주석의 반(反)부패 캠페인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중국의 부정부패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부패는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므로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큰 부패범은 엄벌하되 작은 부패범에 대해서는 유연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중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가 외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는 비판을 어떻게 보는지요.
“해외 기업만 겨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반독점 조사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시장 독점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보호막’을 쳐줘서 생기는 것입니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독점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최근 한국에선 급성장한 중국 기업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진일보한 면은 있지만 중국인들에게 한국 기업은 여전히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한국은 경제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기업들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이 중국에 대한 비교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새롭게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가 저성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업가 정신이 쇠퇴해서입니다. 핵심적인 이유는 대기업의 관료화예요. 미국 경제가 잘 나가는 이유는 젊은 기업가의 혁신이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가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비롯해 경기부양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결국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중국 경제가 현재 안고 있는 여러 문제도 2008년 이후의 부양책에서 발생했습니다.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제 철폐뿐입니다.”
■ 장웨이잉 교수는
대표적 자유주의 학자…中경제정책 ‘쓴소리’ 유명
‘몽펠르랭’ 초청 강연도
장웨이잉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중국 경제학계의 양대 원로인 우징롄과 리이닝 교수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주자로 꼽힌다.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 판강 중국국민경제연구소 소장, 저우샤오찬 인민은행장과 더불어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경제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장 교수는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쓴소리’로 유명하다.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으로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지칭하는 ‘중국모델’이 서구 학자들로부터 주목받자 그는 “중국의 경제적 성공이 ‘중국모델’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은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지난달 초 홍콩에서 열린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총회(자유주의 경제학자 총회)에서는 주제발표를 통해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공산당을 비판했다.
△1959년 중국 산시(陝西)성 출생 △1984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근무 △1994년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1994년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 임용 △2006년 베이징대 광화경영대학원장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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