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없는 보은인사…금융사 발전 저해 우려"
[ 백광엽/박한신 기자 ]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퇴직 관료들의 금융사 진출이 주춤하는 사이 정치권 출신 비전문가인 ‘정피아(정치권+마피아의 합성어)’가 대거 입성하고 있다. 관피아는 관료집단 내부 조정을 거쳐 금융공기업에 내려왔지만, 정피아들은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개약진하고 있어 혼란이 더 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피아 빠지자 난맥상 더 커져
기업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데이터는 지난달 초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임기 만료된 이희수 사장 후임으로 김정인 KCB연구소장을 내정했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잘 모르는 업무인 데다 맡고 싶은 생각도 없다’며 사양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코미디 같은 이 상황은 낙하산으로 인한 금융가의 인사 난맥상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내막을 전한 한 인사는 “청와대 쪽에서 사인이 전달돼 뽑았는데 역량 검증과 당사자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권 인사는 난맥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던 관피아들의 민간 진출과 달리 요즘 낙하산 인사는 갑작스레 이뤄지고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다양한 정치권의 네트워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증권금융이 17일 주주총회를 속개해 부사장으로 선임할 예정인 정효경 매버릭파트너 대표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로 교육 관련 사업을 해왔다. 증권금융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이력이다. 한 관계자는 “10여년 전부터 창조경제와 관련한 일을 했다고 들었을 뿐 어떻게 내정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관피아’ 자리 꿰찬 ‘정피아’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들의 발이 묶였다. 이 틈을 정피아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일 정수경 변호사를 감사로 선임했다. 정 감사는 2008년 친박연대 대변인을 맡았다.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를 지냈다.
지난달 수출입은행에 입성한 공명재 감사는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힘찬경제추진단’ 위원을 지낸 경력이 있다.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농림해양수산분과위원장 출신인 권영상 씨도 7월 한국거래소 감사위원이 됐다. 연봉이 억대에 달하는 알짜 자리다. 금융권에서 이 같은 정피아의 약진은 지난 4월 세월호 사태 이후 두드러졌다. 사태 직후 관피아 논란이 달아오른 5월 한 달에만 기술보증기금 강석진 감사(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비서실장 ), 조동회 SGI서울보증 감사(사단법인 국민통합 이사장) 등이 금융권에 자리를 잡았다.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캠프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 올해 자리를 찾아야 3년 임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며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 금융공기업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관료들의 자리였던 각종 금융협회 부회장을 선출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금융공기업 인사시스템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며 “관료들을 관피아로 낙인찍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백광엽/박한신 기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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