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도약] 18개월 짜리 금융지주 수장…"능력 있는 장수 CEO 나와야"

입력 2014-10-30 21:15   수정 2014-10-31 03:49

한경 창간 50주년 - 5만달러 시대 열자
경제혈맥, 금융산업부터 살려라 (5) 견고한 지배구조 정착시켜라

잦은 CEO 교체는 毒
외풍 휘둘려 툭하면 낙마…장기적 안목서 경영 못해
JP모간·웰스파고 등 10년 넘은 CEO 수두룩

무조건 '내부출신'만?
출신보다는 능력이 우선…낙하산 트라우마도 벗어야



[ 박신영 기자 ] 윤종규 내정자가 다음달 21일 임시 주주총회 후 취임하면 KB금융그룹은 2008년 9월 지주 설립 이후 5번째 회장을 맞이하게 된다. 윤 내정자 전까지 KB금융 회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6개월에 불과하다. 최고경영자의 이 같은 잦은 교체가 KB금융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장기 경영전략을 세우고 준비 단계를 차근히 밟아가야 하는데, 수장이 자주 바뀌면 목표점이 계속 변경되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회장이 명백한 경영상의 잘못이 없는데도 자주 바뀌는 것은 조직이 정치, 관치와 같은 외풍에 쉽게 휘둘린다는 뜻”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리는 금융그룹들은 ‘황제경영’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최고경영자(CEO)가 장기간 조직을 이끈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수 CEO’ 리더십 주목

‘제이미 다이먼(JP모간체이스), 존 스텀프(웰스파고), 에밀리오 보틴(산탄데르), 네드 에드워드 존슨 3세(피델리티)….’ 글로벌 금융위기의 격랑을 거치면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로 주목받은 대형 금융회사에서 족적을 남긴 CEO들의 이름이다. 이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여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CEO로 장수한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장수 CEO의 존재 여부는 대부분 해당 금융회사의 성적과 비례한다. 성공한 금융회사 뒤에는 장수 CEO의 스토리가 자리 잡고 있다. 산탄데르은행은 스페인의 작은 지방은행으로 출발했지만 1986년 에밀리오 보틴 회장이 취임한 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급성장했다. 그가 회사를 지휘한 20여년 동안 산탄데르는 세계적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신화를 써 지금은 세계 금융회사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목격된다. 최고경영자에게 상대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부여했던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의 약진에서 잘 드러난다. 2000년대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이후 10여년 동안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에서 최고경영자(회장) 교체는 한 번씩에 불과하다. 라응찬 회장-한동우 회장으로 이어진 신한금융의 리더십은 조흥은행과 LG카드의 인수를 성공시키며 글로벌 금융그룹의 토대를 다지는 기반이 되고 있다. 김승유 회장-김정태 회장 라인이 이끈 하나금융 역시 외환은행 인수 등의 일관된 성장전략으로 가장 주목받는 금융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 중이다.

전문가들은 날로 복잡해지고 위험이 도사린 금융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견고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반대 세력을 설득해가며 일관된 전략을 수행하는 게 필수라고 말한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낙하산 인사와 외부의 입김에 휘둘리다 보면 내부 권력 다툼은 필연적이고 거대한 금융그룹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금융지주의 회장이 행장을 비롯한 자회사 대표에 대한 실질적인 임명권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 출신이 만능’ 편견 버려야

‘관치’와 ‘정치 낙하산’의 트라우마 때문에 무조건 ‘내부 출신’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확산되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이번에 KB금융뿐 아니라 각 금융회사 CEO들의 선임 과정을 보면 ‘관료·정치인 출신은 무조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이런 편견으로 오히려 좋은 인재를 놓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권력으로 부상한 사외이사들에 대한 비판도 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이사회 권한이 강화되고 사외이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진 반면 전문성은 그만큼 강화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학계 및 관료 출신들로 사외이사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경영진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다양한 의견 제시 모두 힘들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 중 절반 가까이가 대학교수와 연구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회장이 사외이사추천위원회의 멤버로 들어가면서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자신의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의사 결정 과정에 자유로운 발언을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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