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은 29일(현지시간) 양적 완화(QE) 프로그램의 종료를 선언하고 다음달부터 국채 및 모기지(주택담보부) 채권을 더는 사들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제로 수준(0~0.25%)인 기준금리는 ‘상당 기간’ 이어가기로 했다. Fed는 28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 10월30일 한국경제신문
☞ 미국 중앙은행(Fed·Federal Reserve Bank)이 드디어 양적 완화 정책의 종료를 선언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 당시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처음 양적 완화라는 창을 빼든 이후 거의 6년 만이다. 양적 완화란 무엇이고 왜 시행됐으며, 미국이 양적 완화를 중단하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양적 완화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QE) 정책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 돈을 무제한적으로 찍어내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뜻한다.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근접해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면 소비나 투자를 부추겨 경기를 살릴 수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의 국채나 채권을 사주는 방식으로 돈을 푼다.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 공급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빚(부채)을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QE 정책을 ‘대차대조표 정책’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부채를 늘림에 따라 현재 Fed의 자산(자본+부채)은 미 국내총생산(GDP)의 25%에 상당하는 4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도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런 양적 완화 정책에서 빠져나오는 정책이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다. 출구전략은 △돈 풀기 중단 △푼 돈 거둬들이기 △기준금리 인상의 수순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 가운데 중앙은행이 돈 푸는 정책을 중단하는 것을 ‘테이퍼링(tapering·자산매입 축소)’이라고 한다. 테이퍼링은 ‘점점 가늘어지다’ ‘끝이 뾰족해지다’라는 뜻이다.
미국이 QE를 끝낸 이유
Fed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 차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1차는 2008년 12월 시행돼 1조7500억달러를 풀었다. 이어 2010년 11월 2차 QE를 실시해 6000억달러를, 20012년 9월 3차 QE를 통해 지금까지 1조7000억달러를 공급했다. 6년 가까이 동안 4조달러 이상을 푼 것이다.
Fed는 지난달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QE 정책의 종료를 선언했다. 더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동원했던 ‘비상처방’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FOMC는 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에 해당한다.
Fed는 왜 QE 정책을 끝낸 것일까. 미국 경제가 이제 비상처방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괜찮아졌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 천문학적으로 돈을 푸는 정책을 지속하면 자칫 경기가 과열돼 한순간에 물가가 치솟을 우려가 있다.
3차 QE 정책 개시 직전 1%대였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분기 한파와 폭설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다시 반등해 2분기 4.6%를 기록했다. 한때 10%대를 넘었고 3차 QE 시작 당시 7.8%였던 실업률은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려 지난 9월 5.9%까지 내려왔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의 복귀 기준으로 삼은 6.5%보다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물가도 Fed의 목표치인 2%를 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제지표가 QE 종료의 배경이 되고 있다.
FOMC는 회의가 끝나면 성명서를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한 성명에는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 “최근 경제활동은 ‘완만한(moderate)’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며 지난번 회의 때와 똑같이 평가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 대해선 “약간 개선됐고, 노동 자원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전 성명에서 노동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점과 비교하면 고용 상황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Fed는 지난 6월 FOMC 회의 때 QE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힌 이후 단계적으로 푸는 돈의 규모를 줄여왔다. 매달 850억달러씩 공급하던 것을 지난해 12월 750억달러로 줄이고, 올 들어 앞서 연 여섯 차례 회의에서 매번 100억달러씩 추가로 축소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서 남은 150억달러의 QE 프로그램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Fed가 이처럼 단계적으로 돈 공급을 줄인 것은 급격한 감축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Fed는 기준금리는 상당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현재의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신 “경제지표가 Fed가 현재 예상하는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에 더 빨리 접근한다면 금리 인상 또한 현행 예측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Fed가 QE를 중단하면서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건 경제가 살아나고 있긴 하지만 회복 강도가 기대만큼 세진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시행하고 현 재닛 옐런 의장이 계승한 QE 정책에 대해 대체로 ‘합격점’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세계와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
QE의 중단은 다른 나라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이날 Fed의 출구전략이 고통 없이 이뤄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린스펀은 시장의 실질금리 상승 수요가 본격화될 때 Fed가 “진짜 압박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QE가 종료되면 세계 돈의 흐름(유동성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 투자됐던 달러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 이렇게 외화자금이 급격히 유출되면 신흥국으로선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경상수지가 오랫동안 적자이거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한 나라 경제를 외환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미국이 기준금리를 갑작스럽게 올리자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당한 적이 있다. 한국도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금융사들이 일제히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달러 고갈 현상이 벌어졌었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남아공 등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취약 5개국(Fragile 5)으로 꼽힌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29일 기준금리를 연 11%에서 11.25%로 올린 것은 물가상승 압력 때문이지만 달러화 유출을 막기 위한 뜻도 포함돼 있다. 금리가 높으면 브라질에 투자하려면 달러 자금이 늘어날 수 있다.
출구전략의 가공할 위력은 지난해 5월 버냉키 당시 의장이 QE 종료를 처음 시사한 이후 신흥국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버냉키의 발언 이후 한 달간 한국 주가는 8.6% 하락했다. 브라질(-16.7%), 필리핀(-16.3%), 러시아(-14.5%) 등은 낙폭이 훨씬 컸다. 신흥국의 통화가치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한국 경제는 (브라질 등)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됐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3644억달러인 외환보유액, 31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온 경상수지 등을 근거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자본 유출에 따른 시장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신흥국이 자본유출(달러유출) 등으로 경제가 침체되면 우리 수출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은행은 “Fed의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인상되거나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기대가 크게 바뀌면 시장금리가 급속하게 상승하면서 세계 금융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시차는 있더라도 한국의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1000조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게 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