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는 보관안해정보 비대칭·역선택
정보 불균형이 초래한
경제현상들빅 데이터·빅 브러더의 공습
무장해제된 '프라이버시'
■ 카톡 내용 무차별 감청 무리라지만…영장집행 거부는 사법정신 위배
카카오톡 사건 되짚어 보니…
지난9월 13일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기자회견을 했다. 이 대표는 ‘수사당국의 감청 영장 집행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업이 수사당국의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은 폭탄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거부한다? 그것은 초법적인 행위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사법체계상 법원이 절차를 거쳐 발부한 영장을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근대 사법정신은 국가만이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국가가 폭력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근거다. 또 국가의 정당한 폭력 행사를 제어하는 것이 법원이다. 이런 점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는 근대 사법정신의 근간이다.
‘과도한 대통령 모독’이 발단
그럼 다음카카오는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 테이프를 이전으로 빠르게 돌려보자. 지난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한 가지 비판 발언을 내놓는다. ‘대통령을 상대로 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그동안 여성 대통령에 대한 각종 성차별적 묘사와 비하가 넘쳐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의 신체에 해를 끼치겠다는 테러 위협과 욕설도 난무했었다. 당시 언론조차도 남자 대통령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모독적이고 위협적인 발언이 나왔겠느냐며 비판했다.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하자 이틀 뒤 검찰은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주요 인터넷 포털 기업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에 대한 수사와 형사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을 두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시행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도 발표에 포함됐다. 게시물 삭제 방법에 대한 홍보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미국보다 감청 많다’는 괴담
문제는 9월30일 증폭됐다. 이날 한 매체는 ‘검찰의 인터넷 상시 모니터링’에 불안감을 느낀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다른 서비스인 텔레그램으로 갈아타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실시간 모니터링에 놀라 텔레그램으로 옮겨간 사람이 검찰 발표 후 1주일 사이 23만명에 달했다.
이후 불안감을 더 증폭시키는 기사들이 폭주했다. 정부가 불법적으로 네티즌의 카톡 대화방을 모니터링하거나 감청 영장을 남발한다는 보도 일색이었다. 감청 영장의 경우 한국이 미국의 15배, 일본의 730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아닌 괴담도 퍼졌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에 비해 과도하게 감청 영장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데도 괴담은 번졌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작년 감청 영장 건수는 한국 161건, 미국 3576건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이 조금 더 많다는 얘기가 있다. 다만 한국의 감청 영장은 90%가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혐의 수사를 위해서 발부됐다.
정당한 법 집행과 오해
이석우 대표가 침묵을 깨고 나온 이유에 대해 해석이 많다. 검찰 발표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거나, 검찰이 ‘실시간 모니터링 실시’를 잘못 꺼냈기 때문이라거나, 감청과 압수수색의 권한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표의 논리는 현행 감청 영장 집행 실무 관행에 근거하는 것 같다. 기업은 대개 감청 영장을 제시받으면 그 후 2~3일치의 대화 내용을 수집해 검찰에 제공해 왔다. 그런데 감청이란 말은 정보 수집을 실시간으로 진행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통상 수사 당국은 영장을 제시하면서 그날부터 2~3일 전의 대화 내용을 함께 가져간다.
다음카카오 측은 감청 영장이 제시되면 통상 직원들이 며칠분의 카톡 내용을 모아 검찰에 넘겨줬는데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다음카카오 측은 대화내용 보관기간을 6~7일에서 2~3일로 줄이겠다는 대안도 내놨다. 불안을 느낀 이용자들을 잡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검찰은 감청이든 압수수색이든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률적으로 압수수색은 과거에 이미 이뤄진 통신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 감청은 영장 제시 이후에 이뤄진 통신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수사상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엄격한 영장 발부 … 불안 해소
카카오톡 사건은 이제 잠잠해졌다.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도 줄어들었다. 텔레그램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면서 되돌아 오는 이들도 늘었다. 무엇보다 감청이나 압수수색은 범죄나 국가보안법 사건 수사 등에 한해 이뤄진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무차별 감청 괴담’은 사그라들었다. 수사 당국이 일반인의 카톡까지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미국 등 선진국의 인터넷 업체들도 수사당국의 영장 제시에 응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은 테러 위협을 사전에 적발하기 위해 수사 당국에 협조한다.
문제는 영장이나 압수수색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가이다. 수사 당국의 소명이 확실하고, 범죄 혐의가 특정될 때 영장이 발부돼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들의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수사기관은 늘 권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일부 언론이 괴담을 퍼뜨려 불안감을 조성한 측면도 이 사건에서 드러났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카톡대화 보관 2~3일로 축소…문자 메시지는 보관 안해
카카오톡 이용자들은 이동통신사들도 저장하지 않는 문자메시지를 서버에 5~6일 동안 보관한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통화와 문자의 발신 기록만 1년간 서버에 남겨둘 뿐 통화·문자 내용은 저장해 두지 않는다. 통신사는 문자 내용은 앞의 한 글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지도록 했다. 한 글자를 남긴 것은 통신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통신기록을 남기는 것은 요금 오류에 대비하는 차원도 있다. 다만 휴대폰 문자는 암호화돼 있지 않아 중간에 메시지를 가로채는 해킹 등에 노출돼 있다는 게 단점이다.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는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기기 분실, 장기 출장·휴가 등으로 휴대폰을 꺼놓거나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아 일정 기간 카톡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대화 내용을 서버에 저장하지 않는다면 다시 카카오톡을 실행했을 때 그동안의 메시지를 받아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8일부터 카카오톡 메시지의 서버 저장 기간은 기존 3~7일에서 2~3일로 줄었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 발부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서버에 저장된 메시지를 수사기관이 거의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단 3일 이상 휴대폰이 꺼져 있으면 이전 메시지를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임근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igen@hankyung.com
■ 정보 비대칭·역선택…정보 불균형이 초래한 경제현상들
현대는 정보사회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비즈니스에서도 더 큰 기회를 잡는다. 이는 국가, 기업, 개인 모두 마찬가지다. 개인의 경우 정보가 부족하면 합리적인 소비생활이 어려워지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지불한다.
시장에서 각 거래 주체가 보유한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그 불균등한 정보 구조를 정보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이라고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람들이 보유하는 정보의 분포에 편향이 있어, 경제 주체 사이에 정보 격차가 생기는 현상 또는 그러한 성질을 말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다. 그는 ‘의료의 불확실성과 복지 경제학’이라는 논문에서 의사-환자 사이에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의료보험의 효율적 운용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정보 비대칭 원리가 적용된다. 구매자가 결점이 있는 자동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구별하기 어려운 중고차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상품도 저질품과 같은 낮은 평균 가격으로 팔리는 경향이 있다. 주인-대리인 관계에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적용된다.
역선택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는 시장에선 오히려 품질이 낮은 상품이 선택되는 가격 왜곡현상을 말한다.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행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선택(불리한 선택)이다. 정보력을 많이 가진 집단이 정보의 왜곡이나 오류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선택의 여지를 많이 갖도록 하는 행위를 뜻한다. 역선택은 보험시장, 노동시장, 금융시장, 중고자동차시장 등을 설명할 때 주로 이용된다.
■ 빅 데이터·빅 브러더의 공습…무장해제된 프라이버시
만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정보기술(IT)도 마찬가지다. 기술 발달로 세계는 빨라지고, 생산 효율성도 크게 높아졌다. 한때 공상으로만 존재했던 것들을 현실로 끌고 온 것도 IT다. 하지만 IT시대엔 그림자도 있다. IT를 다루는 솜씨에 따라 정보기술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정보가 넘쳐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인간이 기술을 주도할 것인가, 기술에 종속될 것인가는 IT시대가 인간에게 수시로 던지는 질문이다. IT의 빛은 최대로 활용하되, 그림자는 최대한 옅게 하는 것이 과제다.
곳곳서 서성대는 ‘빅 브러더’들
‘빅 브러더(big brother)’는 영국의 풍자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유래된 용어다. 소설 속에서 빅 브러더는 텔레스크린으로 사회의 곳곳을 감시한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텔레스크린을 설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본다. 실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다. 현대적 의미에서 빅 브러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제를 일컫는다. 긍정적 의미로는 선한 목적으로 사회를 보살피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 통제를 뜻한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빅 브러더를 재해석하면 독점권력의 관리자들이 민중을 유혹하고 정보를 왜곡해 권력을 강화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는 일종의 ‘현대판 빅 브러더’다. CCTV는 주차장, 건물, 도로 등 어디에도 설치돼 개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만약 CCTV가 악의적으로 이용된다면 그건 소설 속의 빅 브러더가 되는 셈이다. CCTV는 사회의 범법자를 잡는 데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군데씩 찍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공익을 해치지 않는 사생활은 확실히 보호돼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정보의 홍수 ‘빅 데이터’ 시대
‘빅 데이터(big data)’는 인터넷 시대 이전 방식으로는 수집·저장·검색·분석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방대한 정보를 일컫는다. 빅 데이터 시대를 연 것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의 발달이다. 각종 센서와 인터넷의 발달, 놀랄 정도로 빨라진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은 빅 데이터 시대를 연 주역이다. 기업은 이런 빅 데이터에 바탕한 맞춤형 서비스로 고객을 유혹한다. 국민 건강과 관련한 빅 데이터를 소유한 정부 관련 당국은 이를 활용해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고, 의료 관리체계를 설계한다.
빅 데이터 역시 그림자가 있다. 엄청난 개인의 신용정보가 노출돼 소비자들이 수시로 불안에 떤다.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업체들의 개인정보 수집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이런 개인정보는 본인도 모르게 광고주로 넘어간다. 휴대폰을 들고 남대문에 가면 문자에 재래시장 쇼핑 정보가 뜨는 세상이다. 개인정보가 상품처럼 거래된 결과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바로 돈이다. 그러니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빼내는 것은 남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서비스를 공짜로 쓰고 있다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다”라는 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계에선 엄연한 현실이 돼 가고 있다.
공익 vs 사생활…뭐가 우선일까?
정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소통의 공간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개인의 사생활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CCTV 역시 빠르게 늘어난다. 당연히 ‘빅 데이터’ ‘빅 브러더’ 시대의 이슈는 ‘사생활 보호’다. 사생활 보호는 자주 공익과 충돌한다. 흉악범을 잡으려고 용의자의 통화 내용이나 문자 내용을 들여다보면 범죄와는 관련이 없고 단지 그와 연락을 주고받은 선의의 제3자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경우 제3자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도 논란거리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정보들이 ‘익명’이라는 옷을 입고 온라인에 무수히 떠도는 것도 문제다. “구글은 당신의 어머니보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케빈 뱅크스턴·미국 전자프런티어재단 수석 변호사)는 말은 정보 홍수 시대에 사는 현대인이 프라이버시 방어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신랄히 꼬집는다.
정보나 데이터는 효율을 높이는 약이지만 선의의 통제를 벗어나면 치명적인 사회의 독으로 돌변한다. 따라서 데이터가 급팽창하고, 온라인 공간이 확대될수록 사생활 보호는 필수다. 사생활 보호는 시스템만으로 완벽해지지 못한다. IT가 발달할수록 시민의 격(格) 역시 높아져야 한다. 안전한 정보관리, 사생활 보호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과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