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불균형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면 판매자는 가격을 높여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 하는 반면, 가격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판매자는 다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결국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생산이 증가하면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고, 이는 공급하는 재화 혹은 서비스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켜 생산성 혹은 효율성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이는 한계비용(재화 한 단위를 더 생산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투입되는 비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경제학에서는 가격과 한계비용이 일치할 때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된 상태라고 설명한다.(P=MC) 따라서 시장에서의 기업들은 한계비용의 감소를 통한 재화와 서비스 가격 인하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을 하게 된다.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ikin)은 바로 여기에 자본주의의 한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생산성을 높여 가격을 낮추려는 경쟁이 극대화되면 한계비용이 제로(0) 수준에 가깝게 하락하고,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성을 높일 유인이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계비용이 제로 수준이라면 가격 역시 거의 무료라는 의미가 되기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등장해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3D 프린팅 기술 全 분야로 확산
아주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다. 세계적인 학자의 주장이어서가 아니라 실제 우리 생활 전반에 한계비용 제로 수준의 재화와 서비스 공급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최근 눈에 띄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분야가 ‘3D 프린팅’이다. 3D 프린팅은 물건을 인쇄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3차원의 입체적인 사물을 만들어 내는 프린트 과정이다. 실제 3D 프린팅 기술은 모든 제조업 분야에 적용되어 새로운 혁신을 유도할 수 있어 각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래 유망 직업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3D 프린팅 전문가’다.
3D 프린팅 기술이 발명된 것은 이미 30년 전의 일이다. 1984년 미국의 ‘3D 시스템즈’에서 발명한 기술로서 이미 산업용 시제품 제작용도로 활발히 사용되어 왔다. 이 기술이 최근에 와서 제조업의 혁신을 이끌 주인공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가 2014년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간 산업용 3D 프린터로 활용되며 기술이 축적되어 그 성능이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허 만료로 인해 저렴한 개인용 3D 프린터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일부 분야에만 한정되었던 3D 프린터의 사용이 제조업 전(全) 분야로 확장되면서 3D 프린팅 전문가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가정에서도 다양한 상품 제조 가능
이들은 3D 프린팅이 활용될 수 있는 산업이라면 어디서든 필수 전문 인력으로 대우받게 된다. 3D 프린팅 작업을 위해서는 단일 직업군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지식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산업, 건축, 의료 등 분야를 망라하는 디자인적인 지식과 함께 CAD 모델링을 비롯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지식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법률적 지식도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3D 프린팅 전문가의 주된 업무, 즉 3D 프린팅이 갖는 경제적 의미는 결국 한계비용 감소에 의한 효율성 증가에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주장한 바와 같이 한계비용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질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한계비용을 낮춰 제조업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기술임은 분명해 보인다. 3D 프린팅 방식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단서들을 확인할 수 있다.
3D 프린팅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다. 실제 3D 프린팅은 제조를 뜻하는 영단어 ‘menufacture’와 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이 결합된 ‘infofacture’라고 부를 만큼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사람의 노동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인쇄 프로그래밍을 통해 프린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3D 프린팅에서는 이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로 남기는 관행이 정착되어 있다. 누군가 처음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지적재산권 없이 공개하여, 여기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지식을 얻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따라서 무수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기존 생산방식과는 현격한 생산비용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3D 프린팅은 인력상의 제약도 극복할 수 있다. 많은 인력을 바탕으로 생산이 이루어지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만 있다면 개인이 집에서도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 줄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3D 프린터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갖출 때 필요한 초기 비용을 제외한다면, 제품 생산에 있어 거의 추가적인 비용 없이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밖에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제작할 수도 있어 기존 생산방식과는 달리 투입재료에 대한 비용부담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태풍의 길목에서 돼지도 날 수 있다’
이러한 발전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의 3D 프린팅 산업의 발전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보다 정교한 3D 프린팅을 위해서는 현재 특허권이 풀린 기술 외에도 다양한 기술들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특허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기술 개발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 활용성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3D 프린팅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재는 비교적 낮은 경도의 재료만이 소재로 활용 가능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점들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3D 프린팅 시장은 뚜렷한 선도 기업이나 브랜드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 많은 산업에서 그랬듯,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현재의 한계들을 빠른 시간에 극복하고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커다란 실패를 극복하고 중국의 스마트폰 시장을 단숨에 휘어잡은 샤오미(Xiomi)의 창립자 레이쥔은 성공 전략을 묻는 질문에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고 답했다. 장점과 한계점이 공존하는 현재의 3D 프린팅 시장은 아직까지는 향방을 알 수 없는 시장일지 모르지만 3D 프린팅 전문가로서 그 발전의 길목에 서있다면 3D 프린팅 시장과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융합 직종의 하나인 3D 프린팅 전문가가 머잖은 미래에 유망 전문직으로 부상할 날을 기대해본다.
● 한계비용과 가격
생산을 한 단위 늘리는데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한편 가격은 개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을 의미한다. 재화를 한 단위 추가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얻게 되는 비용과 추가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얻는 만족이 일치하는 경우 사회 전체의 후생이 극대화된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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