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정치'가 초래한 무상복지 대란

입력 2014-11-07 21:42   수정 2014-11-08 03:50

재정악화 경고 무시하고 票만 노렸던 與野
'복지 디폴트' 해결은 뒷전 '네 탓' 공방만

곽 '무상급식'이 재정파탄 시발점…票 집착한 與도 '퍼주기' 경쟁
박원순 서울시장도 '무상급식' 내걸고 당선
누리과정·기초연금…여당도 복지공약 쏟아내
22조원 넘는 재정 부담 결국 국민에게 전가



[ 강경민 / 임원기 기자 ] 2010년 3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후보 등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 17명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는 내용의 정책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학교에선 눈칫밥 먹는 아이가 없도록 보편적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며 “홍보비와 선심성 예산을 줄이면 충분히 무상급식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재정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무상복지 대란’의 시발점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면 무상급식 시행을 약속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곳은 서울 경기 강원 전북 전남 광주 등 여섯 곳이다. 당시 민주통합당 광역·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도 전면 무상급식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며 진보 교육감과 행동을 함께했다. 16개 광역지자체장 중 7명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전면 무상급식 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이들 지자체의 무상급식 추진 움직임에 제동을 건 곳은 서울시였다. 당시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와 곽노현 서울교육감에 맞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2010년 8월 오 시장은 소득과 무관하게 같은 혜택을 주는 현금 살포성 복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복지 포퓰리즘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나름의 결기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같은달 24일 치러진 무상급식 찬반 투표에서 최종 투표율(25.7%)이 개표 기준(33.3%)에 미달해 투표함을 열지 못했고, 이틀 후 오 시장은 전격 사퇴했다.

두 달 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당시 여당 후보였던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보궐선거가 치러진 지 40여일 뒤 오세훈 전 시장을 적극 지지했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현 경남지사)도 사퇴하면서 복지 논쟁은 ‘보편적 복지’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까지 보편적 복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출범 후 정책을 180도 전환해 무상복지 정책을 적극 끌어안기 시작했다. 당시 여권은 0~2세 영유아에 대해 보육료를 전액 지원키로 하고 3698억원의 예산을 증액 편성했다. 그동안 소득 하위 70% 가구에만 지원되던 보육료를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전액 지원하는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이와 함께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유치원·어린이집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누리과정도 시행됐다. 2012년 4월과 12월로 각각 예정돼 있던 19대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여당의 포퓰리즘적 결정이었다. 정부는 보편적 복지 확대가 야기할 재정적 부담을 들어 반대했지만 야당과 합세해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4·11 총선은 여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야당은 기습을 당했다며 분개했다. 자신들의 ‘선거 아젠다’인 무상복지를 여당이 발빠르게 선점한 데 대한 ‘자기 반성’까지 뒤따랐다. 선거와 포퓰리즘적 무상복지의 결합은 정치권의 대세였다. 반값 등록금, 고교 무상교육 공약도 마찬가지였다.

여야가 앞다퉈 내놓은 무상복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모임인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4·11 총선을 2주가량 앞둔 3월29일 정치권의 무차별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민주당 소속인 송영길 인천시장조차 “정치권이 복지 정책을 내놓을 때는 재원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해야 한다”며 “이렇게 무책임한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이 같은 목소리를 끝내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만 3~5세 누리과정 확대, 65세 이상 기초연금 지급 등 무상복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당초 ‘증세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던 공언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확대도 끝없이 가라앉는 경기에 공염불이 돼버렸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선거용으로 급조한 무상급식·무상보육(누리과정 포함)·기초연금 등 3개 무상복지 공약은 연간 22조원이 넘는 재정적 부담을 국민에 떠안기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지난 4일 홍준표 경남지사가 “현행 무상급식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경남만의 독자적 교육복지로 쓰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이 경고했던 파국적 재앙을 수습하는 출발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함부로 쏟아낸 무상복지를 대폭 축소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올해도, 내년에도 복지재정의 파행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여야는 복지 구조조정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여당은 무상보육, 야당은 무상급식 등 자신들의 주도로 만든 복지정책의 우순선위를 강조하며 상대방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진영 대결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 눈에는 동일한 무상복지일 뿐인데도 서로 내 것은 다르다며 맞서는 모양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 간 오랜 소모전 끝에 7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복지디폴트’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네 탓 공방’만 있을 뿐이다. 또 하나의 지리한 정쟁거리가 출현한 것이다.

강경민/임원기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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